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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

일본 5음계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가 발생한 그 해에, 나는 필립스에서 발매된 <클래식기타의 세계>라는 음반(사실은 테이프)에 푹 빠져 있었다. 그 음반에 수록된 Vitallita라는 곡을 통해 로메로 형제가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아했던 곡은 알렉산드로 라고야(Alexandre Lagoya)와 이다 프레스티(Ida Presti) 부부가 듀엣으로 연주한 엔리케 그라나도스(E.Granados) 작곡의 <스페인 무곡 제 2번 Oriental>이었다. 당시의 감흥을 슬픔이나 애수 같은 말로 설명하기에는 어렵다(솔직히 그리 슬프지는 않았으니까). 구태여 표현하자면 과거지향성의 노스텔지어 같은 것을 느꼈다고나 할까.

 

 

 

 


예전에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어느 한적한 마을에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집이 한 채 있다. 눈에 익숙하다. 집 안에 들어가 보니 방의 구조나 가구들과 그것들의 배치가 낯설지가 않다. 꿈속에서 생각한다. '맞아, 여기는 예전에 언젠가 내가 살았던 집이었지.' 꿈에서 깨고 생각해 보니 그 하얀 집에서 살았던 기억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왠지 그 집이 낯설지만은 않다. 왠지 언젠가 한 번 정도는 그곳에서 살았던 기분이 드는 거다(희한한 건 그 꿈을 세 번 정도 반복해서 꾸었다는 거다).

각설하고, 하고픈 얘기는 <오리엔탈>을 들었을 때 마치 그런 감흥이 일어났다는 거다. 마치 알 수 없는 과거 어딘가로 회귀한 듯한, 어슴푸레하지만 완전한 타관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그런 장소로 돌아가는 듯한 기이한 착각. 당시엔 어쩌면 이런 망상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생의 나는 스페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며칠 전에 페이스북의 게시물 <당신의 잠재의식 속 국적은 무엇인가요?>를 통해 테스트를 해보았다. 결과는 스페인이 아니라 일본. うざい(왕짜증)! 그러고 보니 언젠가 어떤 법사가 모 신문에 기고했던 내용의 칼럼이 생각난다. 그 법사의 말에 의하면 일본과 한국은 이런저런 과거의 인연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전생에 일본인이었던 이가 현생의 한국인이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그렇다면 혹시 전생의 나는.....やはり(역시)!
ㅆㅂ....

 

 

 

어제 <오리엔탈>의 편곡을 다 끝냈다(다행히 3도 병진행의 선율과 반주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비교적’ 연주하기에도 쉽다. 존 다울랜드(John Dowland)의 곡이 힌트가 되었다). 이제 깨끗이 옮겨 적는, 아주 귀찮은 일만 남았다. 새벽까지 작업을 한 탓인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맨 처음에 나오는 아르페지오 반주가 입가에 맴돈다. 세수를 하면서도 흥얼거린다. “따라라라라라(미파#솔시솔파#)~” 몇 번 읊조렸더니 기묘한 느낌이 든다. 뭐지? 이 익숙한 정서는? 몇 번을 흥얼거리다가 문득 깨닫는다. 뭐야, 이건 뽕짝 아냐?

맨 처음 부분에 나오는 아르페지오(미파#솔시솔파#)는 일견 9음(파#)이 추가된 Em코드(미솔시)로 보인다. 그러니까 코드 네임은 Em(add9). 여태껏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왔다. 미련하게도 오늘 아침에서야 깨달은 건데,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아르페지오가 아니라 일종의 대선율로 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Leon Dallin 著 <20 century composition>에 의하면, <일본 5음계>는 다음과 같다.

 

도-레-미b-솔-라b

 

‘도-레-미b-솔-라b-도’를 악기로 연주해 보면, 소위 ‘왜색’이라는 게 나온다. 혹자가 ‘전통가요’라고 우기는 그 ‘뽕필.’ 이 음계를 고스란히 E단조로 옮기면 이렇게 된다.

 

미-파#-솔-시-도

 

‘도’음만 빼면 완전히 <오리엔탈>의 전반부 아르페지오와 똑같다. ‘솔’과 ‘시’음의 장3도 음간 거리에서 모락모락 풍겨오는 그 뽕필! 게다가 중간 부분의 선율, 그러니까 아래 사진의 악보에서 C.7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의 선율은 ‘파#~파#솔파#솔/미~미도시~’가 되는데, 정말이지 뽕필이 그윽하다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문득 한 페친 분의 예리한 지적이 생각난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특히 맨 마지막에 나오는 ‘독도는 우~리~땅’ 부분의 멜로디)는 왜색이 느껴진다는. 우리 땅이라면서 일본의 음계를 쓰다니, 기묘한 아이러니다. 어쨌거나 그라나도스의 의도가 이런 것이라면 맨 처음의 아르페지오는 사실상 아르페지오가 아닌 대선율로 보는 것이 옳다. 아마도 그라나도스는 이 점을 노렸을 것이다. 분산 화음(아르페지오)처럼 느끼게 유도하지만, 사실상은 일본 5음계를 차용해서 대선율로 쓴 거라는. 그렇다면 나는 제대로 한 방 먹은 거다.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대‘선율’이라고 하기에는 음의 처리 방식이 지나치게 화성적이 아닌가? 이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선율을 처리하는 방식에는 ‘화성적 선율법’도 있다. 예컨대 바흐의 류트 조곡 2번 프렐루드에서 스케일의 음들을 아르페지오처럼 섞이게 하는 것.
물론 확정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후에 계속하여 이어지는 반주의 패턴을 보면 대선율과 아르페지오가 교묘하게 뒤섞인 형식이다. 마치 F.Sor의 <l`encouragement op.34>의 Cantabile 중반의 E단조 부분의 대선율처럼.

 

어쨌거나 겨우 이 정도 가지고 그라나도스에게 친일 혐의(?)를 씌우는 건 지나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오리엔탈>이 오로지 일본5음계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위의 정서적 환기가 느껴지는 한은 ‘왜색’이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할 것 같다. 헤비메틀 밴드 <Megadeath>의 기타리스트인 마티 프리드먼(Marty Friedman)의 연주곡, <Dragon mistress> 역시 오로지 일본5음계만 쓴 건 아님에도, 뽕필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일청을 권한다. 우리로서는 왠지 웃음이 나온다.

 

 

 

 

어디서 읽은 것인데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스페인 무곡 제 2번 오리엔탈>의 자필 악보에 작곡가인 그라나도스는 <동양 풍으로>라는 부제를 붙여 놓았다고 한다. 이런 부제를 달아놓았지만, 사실상 그는 제유법적으로 일본을 ‘동양’의 대표로 본 것 같다. 이는 가능한 추론이다. 그는 1867년 생이었고, 19세기 말은 한창 일본 문화가 유럽에 유입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반 고흐의 색채감은 일본 화풍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일본화 모작도 있을 정도로. 그러니 당시의, ‘동양=일본’이라는 발상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마치 우리가 어느 흑인이 시에라리온 출신이라고 밝혀도 단지 ‘아프리카’출신으로만 기억하는 것처럼.

 

 

존 윌리암스(John Williams)가 연주하는 <사쿠라 주제에 의한 변주곡>

 

 

이처럼 엔카(えんか演歌)가 미친 지대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부디 일본5음계를 사용한 트로트에 대해서 ‘전통가요’라는 이름으로 얼버무리려 하지 않으면 안 될까? 쿠데타도 혁명이 되고, 3.1운동 마저 ‘폭력적’이었다고 교과서에서 명시하는 나라라지만, 그리고 서울 한복판에서 일본 왕의 생일 축하 파티까지 하는 도착적인 나라라지만,  음악까지 이렇게 정체성을 왜곡해서야.
일본5음계를 쓰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고 써서는 안 될 이유도 없다. 다만 ‘전통’이라는 레벨을 엄한 데에다 갖다 붙이는 건 일본5음계를 사용하여 작곡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처럼 아주 ‘웃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