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메모

결혼 가능 점수

Snufkin 2014. 1. 15. 20:21

 

 

 

 

컴퓨터를 켰더니 부팅되자마자 이런 광고가 뜬다.
뭐, 사실 결혼이라는 것을 냉정한 법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계약이기는 하다. 파경으로 인한 사랑의 빈 자리에는 결국 피 튀기는 법정 싸움을 예고하는 손익계산서가 대신할 테니.

결혼 가능 점수는 다음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근거로 산출된다.

 

1. 현재 자신의 연봉을 선택해 주세요.
 ㄱ. 3천만 원
 ㄴ. 3~5천만 원
 ㄷ. 5~8천만 원
 ㄹ. 8천만 원 이상

 

2. 현재 자신의 최종 학력은?
 ㄱ. 박사 이상

 ㄴ. 대학원 졸업
 ㄷ. 대학교 졸업

 ㄹ. 대학원 졸업

 ㅁ. 고등학교 졸업

 

3. 1주일에 가장 많이 할애하는 여가 종목은?
 ㄱ. 골프

 ㄴ. 구기종목

 ㄷ. 헬스/요가/수영

 ㄹ. 걷기

 ㅁ. 기타

 

4. 영화나 뮤지컬 등의 문화공연 관람 횟수는?
 ㄱ. 월 1회

 ㄴ. 월 2회
 ㄷ. 월 3회

 ㄹ. 잘 안 본다

5. 월평균 독서량은?
 ㄱ. 월 1~2 권
 ㄴ. 월 3~4 권
 ㄷ. 월 5 권 이상
 ㄹ. 잘 안 본다

 

6. 자신의 키를 선택해 주세요.

 ㄱ. 160cm 이하
 ㄴ. 161~170cm
 ㄷ. 171~180cm

 ㄹ. 180cm 이상

 

7. 한 달 평균 품위 유지비는?

 ㄱ. 30만 원 이하

 ㄴ. 30~50만 원
 ㄷ. 50~80만 원
 ㄹ. 80만 원 이상


 

재미있는 점은 이 설문을 작성한 주체가 비실용적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속물적 평가라는 평가를 상쇄하기 위해 포함시킨 질의라고 의심되는 것이 두 개 포함되어 있다는 거다.
문득 이런 점이 궁금해진다. 한 달에 책을 10권 씩이나 읽고 문화공연을 10회 이상 보는 고졸 출신의 3천만 원 이하의 연봉 수령자는 과연 8천만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박사와 (다른 조건이 동등하다는 조건하에서) 과연 동급의 점수를 부여받을 수 있을까?


20점짜리도 하기에 따라서는 백년해로이고, 100점짜리도 하기에 따라서는 조기 파경일진대…이 점수 매기기가 대개 스펙이나 소유의 정도에 머무르고 마는 이유는 그것이 추상적이지 않은 실제적 자료이기 때문일 거고, 이것이 파경의 위험을 최소한으로 해준다는 일반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일 거다. 결혼도 엄연히 경제라는 하부구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경제적 안정만으로 관계의 안정을 100% 도모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넘버3>로 유명한 송능한 감독은 영화 <세기말>을 통해 영화에 별점을 매기는 평론가들의 작태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다.

“자넨, 자네 마누라한테도 별을 주고 그러나? 마누라 쌍통은 두개 반, 젖퉁이는 별 세개.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신중해야지. 영화를 밥그릇으로 보니까 함부로 별을 주고 그러는 거 아냐? 천박하고 파쇼 같은 짓이야. 그런 짓 하지 마.”


이 질문에 대해 자신의 배우자는 도합 별4개(1등급)짜리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파쇼의 날은 언젠가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