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메모

상상력

Snufkin 2013. 11. 4. 18:25

 

 

 

포털 사이트인 <Daum>의 <아고라>에 어떤 네티즌이 위의 사진과 함께 '주차해 놓은 꼴 좀 보소'라는 제목의 글을 기재하자, 다음과 같이 '무개념 주차'에 대한 공박의 댓글들이 달렸다. 자기 차 빠져나가기 쉽게 하기 위해 앞 공간을 과도하게 널찍이 비워둔 건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둥, 뒷 차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상대적으로 협소해짐을 빤히 알면서도 저렇게 주차한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둥, 심한 경우엔 차량의 측면을 대못이나 샤프펜슬 따위로 확 그어 버려야 된다는 둥.

댓글들 중에는 다음의 의견도 있었다.

"주차 사진은 사진으로 봐서만 매도해서는 안되는 거 같아요. 주차 당시 앞에 장애물이 있었을 수도 있는데... 빈자리에 주차했는데 앞,뒤의 차가 다 빠지면 완전 무개념 주차로 보이는 경우 많을 거예요."

"'오토바이가 있었다'에 한표."

 

각 견해들을 정리하면 이렇다.

 

A :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전형적인 무개념 주차의 한 사례다.
B : 주차 당시에는 원래 앞 쪽에 오토바이든 자전거든 무언가 있었을 테니, 단지 그것들이 빠져나간 후의 모습만 보고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건 잘못이다.

 

A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B와 같은 경험을 겪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테다. 그럼에도 그들이 무조건 비난하는 건 역시나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는 습관(?) 때문일 테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 같지만, B와 같은 상상력을 가지는 건 어려운 일일까?


물론 실제로 '무개념 주차'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A의 견해를 가진 사람이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B처럼 생각하는 게 타당할 수 있는가?"라고 주장한다면, 다음과 같은 주장 역시 허용될 수 밖에 없다.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무조건 A의 경우라고 단정하여 공박할 수 있는가?" 

요컨대 '무죄추정(無罪推定)'의 원칙이다. 따라서 B와 같은 추정이 더 공정해 보인다. 아니, 인정(人情)이 있어 보인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 역시 A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곤충들이 더듬이로 세계를 인지하듯이, 인간은 대개 시각으로 세계를 인지한다. 오감(五感) 중 시각을 우선으로 여기는 건 그런 이유다(만일 오감들 중 하나만 선택해야만 한다면, 누군들 시각을 택하지 않을까?). 시각이 상상력을 압도하는 것이 상례라면, 그 상례를 극복할 의지를 가져야 '시각의 폭력'에서 자유스러워질는지도 모른다. 시각에 대한 강한 의존 성향이 종종 독단을 낳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