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4도 음정은 불순한 개자식이 아니다
중딩이 시절, 소위 '통기타'라고 불리우는 쇠줄 기타를 치던 시절에 나를 가장 괴롭히던 문제는 조율이었다. 어느 정도 기타에 비교적 익숙해지자 그 옘병할 'D코드(위의 그림참조)'가 계속해서 나의 귀를 괴롭히는 거다. 2번줄의 '레'음과 1번줄의 '파#'음이 동시에 울릴 때 그랬다. 아무리 조율을 정확하게 해도 그랬다.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이건 기타가 존나 후져서 그래, ㅆㅂ…"
조금 더 세월이 지나자 (로우 포지션에서 우리가 익히 사용하는 일반적인 폼으로 잡았을 경우의) C코드나 A코드의 1,2번 줄의 울림이 나를 괴롭혔다. 반면에 나를 기쁘게 하는 코드가 있었으니…바로 E코드였다. E코드는 위의 것들과는 달리 청량감을 제공했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 고딩이가 되자 소위 헤비메탈이라는 장르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얼마 후 헤비메탈 음악에 나오는 기타의 리프(보통 곡의 초반에 나오는 반복 악절)가 대개 완전5도나 완전4도 음정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았다. 예컨대 6번선의 '파'와 5번선의 '도'를 동시에 울렸을 때 찰떡궁합의 완전한 울림이 나온다는 걸 전기기타를 치면서 알았던 거다. 이어서 5번줄 '도'는 그대로 두고 6번선의 '파'음을 한 옥타브 내려서 6번줄에서 쳤을 때, 다시 말해 완전 4도로 만들어도 비슷한 효과를 얻는다는 걸 알았다.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가 부른 곡들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헤븐 & 헬>이나 <홀리 다이버>를 통해 완전 5도 음정의 찰떡궁합 울림을 느꼈고, <맨 온 더 실버 마운틴>을 통해 완전 4도 음정 역시 그러하다는 걸 알았다.
나중에 마이클 쉔커 그룹의 <Desert song>을 들었을 때 3도 음정(예컨대 '도'와 '미')의 리프도 존재한다는 걸 알았는데, 이 곡을 카피했을 때의 감흥은 이랬다. '왜 완전5도나 완전4도 음정의 리프처럼 찰떡궁합으로 안 느껴지고 갈라지는 듯 불편하게 들리는 걸까?'
대딩이 되어서 클래식 기타를 더 가까이 하게 되었을 때 기타 음악 작곡가 안토니오 라우로를 접하게 되었다. 그가 장3도 음정의 병진행을 좋아한다는 말을 어느 기타 월간지를 통해 알았다. 그때의 내 솔직한 심정은 이랬다. '3도 병진행이 좋다고? 이 양반 변태 아냐?'
클래식 기타리스트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늘상 겪는 일이 있다. 연주가가 곡을 연주하기 전에 열심히 조율을 한다. 조율 도중에 (우리가 익히 아는, 1포지션에서의 일반적인 폼인) E코드를 잡고는 천천히 6번선부터 1번선까지(미~시~미~솔#~시~미) 훑는다. 그리고는 연주에 돌입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뭐야? 음이 맞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연주에 돌입하는 거지? 4번줄의 '미'음과 3번줄의 '솔#'음이 안 맞잖아!'
중딩이 때 이 E코드는 이렇게 들리지 않고 아주 상쾌하게 들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가 배우는 화성학, 그러니까 토닉-도미넌트-서브도미넌트 따위의 기능을 중시하는 화성학에서 4도 음정은 불협화음이 된다. 다장조로 예를 들면, G7코드(V7)가 C코드( I )로 전환될 때 G7코드에 있는 단7도 음인 '파'음이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 C코드에 남을 경우 C코드를 혼탁하게 만들기 때문에(도미파솔) 불협음이라는 거다. 전통적인 기능화성에서 '도'의 4도 음인 계류음 '파'는 이런 불순한 개자식 취급을 받고, 우리의 감각 또한 그러한 것에 익숙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도미'의 화음은 협화음이지만, '도파'의 화음은 불협이라는 거다.
재미있는 건 '도미', 그러니까 이 3도 음정이 협화음 대접을 받은 건 14세기에 이르러서였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도파'의 4도 음정이 대세였다는 얘기다. 음악사의 아이러니랄까, 작금에 클래식 기타 음악을 듣노라면 3도 병진행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4도 병진행은 꽤나 참신하게 느껴진다. 이는 꼭 중세의 모드 음악이 작금에 외려 참신하게 다가오는 것과 유사한 감각이다.
20세기의 롹커들은 4도 음정이 '불순한 개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아마도 감각으로 터득한 게 아닐지 싶다. 아마도 퍼즈나 디스토션이라는 이펙터의 발명이 그러한 감각을 부추긴 건지도 모르겠다. 퍼즈나 디스토션을 걸고 하모닉스 튜닝을 하면, 맥놀이 현상을 더욱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4도나 5도 음정은 (아마도 음의 지속성도 한 몫 하겠지만) 그 이펙터를 통해 찰떡궁합의 느낌이 배가된다.
중딩이 때 (우리가 처음 기타를 배울 때 익히는, 로우 포지션에서의 코드폼인) D코드나 C코드, 그리고 A코드가 짜증나게 들렸던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은 고음역을 가장 잘 인지한다. 그래서 4성부 합창 곡에서 대부분 소프라노 영역만 잘 듣는다. 마찬가지로 2번줄과 1번줄에 형성되어 있는 음들이 다른 현의 음들보다 먼저 귀에 꽂힌다. 문제는 이 음들이 장3도로 이루어져 있을 경우, 감각적으로 그 음정이 '불순한 개자식'같은 거라고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반면에 E코드는 2~1번 선이 각각 '시'와 '미'로써 완전4도 음정을 이루는 탓에 비교적 '프레쉬하게' 들린다(물론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4번줄 '미'와 3번줄의 '솔#'의 장3도 음정에 집중해서 들으면 짜증이 확 밀려온다. 아무리 조절해도 음이 안 맞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롹커들이 통기타로 부르는 곡들에는 E코드로 시작하는 곡이 많다. 심지어는 완전4도의 울림을 너무 상쾌하게 여긴 탓에 E코드 다음에 나오는 A코드 조차 2번선의 '도#'음을 잡은 손가락을 떼어서 '시'음으로 만들어 Aadd9코드로 쳐버리는 경우가 많다(위의 사진 참고). 장화음인 A코드에 불순음인 '시'가 들어갔으니 불협화음이라고 해야 마땅한데, 감각적으로는 A코드를 잡았을 경우보다 더 '잘 들러붙는 듯' 들린다. 14세기 이후로 7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완전 4도는 힘이 세다는 증거다. 달리 '완전'이겠는가.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이 빌어먹을 장3도 음정이 짜증난다. 이놈이야 말로 진정한 '불순한 개자식'인 거다. 아직도 연주회장에서 연주가들이 E코드를 잡고 튜닝을 할 때, 나는 3,4번선의 장3도 음정의 울림을 듣고 여전히 이렇게 생각한다. '음이 안 맞아......'
중세에 증4도의 화음(예컨대 '도-파#')은 소위 '악마의 화음'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견해에 따르면 현대의 블루스 연주자들은 죄다 악마의 하수인이 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증4도 음정이 장3도 음정보다 차라리 편하게 들린다. 증4도 음정이 단순히 악마의 소리라면, 장 3도 음정은 착한 가면을 쓴 악마의 소리 같다. 협화음의 탈을 쓴 불협화음인 거다.
오전에 어떤 페친분께서 올린 순정률과 평균률에 대한 재미있는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8914.html). 문득 신현수 선생님의 명저 <클래식 기타 기본기의 비밀>의 후반에 나오는, 평균률과 순정률의 관계에 관한 내용을 읽고 싶어졌다. 한참을 보니 이런 명문을 만나게 되었다.
"평균율의 장3도 음정은 평균율의 치부(恥部)이자 꼴뚜기 같은 존재라 하겠습니다."
치부이자 꼴뚜기. 참 기발한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글타. 이 장3도 음정은 오징어 같은 놈이자 '불순한 개자식'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