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
와이프의 커피를 조금 얻어 마셔 보았다.
늘상 마셨던 커피인줄 알았더니 이전에는 한번도 맛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커피다. 참신한 맛에 궁금하여 뭔가 물었더니 아는 분으로부터 선물 받은 베트남산 커피란다.
"와. 맛있는데? 나도 타 마셔야지."
이랬더니 와이프 왈,
"이거 다람쥐똥 커피야."
다람쥐똥 커피? 다람쥐똥으로 만든 커피란 말인가? 에이, 설마….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떤 시트콤에서 다람쥐똥 커피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물가물한 기억이다.
다람쥐똥 커피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랬더니,
울타리를 친 커피 농장에 며칠간 굶긴 채로 가둔 다람쥐들을 커피콩이 무르익을 무렵 풀어놓으면 허기진 다람쥐들이 급하게 커피콩을 먹은 탓에 채 소화가 안 되어 커피콩이 섞인 똥을 배설한다고 한다. 그 커피똥덩어리를 세척하여 말린 다음 갈아서 가루로 만든 것이 이 다람쥐똥 커피란다.
뜨거운 우유를 담은 머그잔에 다람쥐똥 커피를 한 스푼 넣고 스푼으로 휘휘 저었다. 그런데 아무리 저어도 분말이 용해되지 않는다. 이런 제기랄. 인스턴트 커피로 착각하다니. 이건 드립용 커피다. 시커멓게 변한 아까운 우유를 개수대에 부어 버리고 다시 우유를 담아 새로이 커피를 탈 준비를 했다. 커피 필터(여과지)에 다람쥐똥 커피를 적당히 담은 다음 뜨거운 물을 부어 머그잔에 추출된 용액을 받는 동안 문득 저 갈색의 액체가 똥물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지 아니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감각적으로는 향기로운 커피맛인데 관념적으로는 똥맛이다.
이론상으로 관념은 맛이라는 감각과는 별개의 차원이다. 그럼에도 이 관념은 맛을 변화시킨다. 커피의 정체를 모르고 맛보았을 때는 신천지의 맛이었던 그것이, 일단 똥이라는 관념을 형성하자 신천지의 화장실 내음을 모락모락 풍기기 시작하는 거다.
'뭐지? 이 오묘한…아니 괴상한 맛은? 은근히 똥 맛…아니 똥 내음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론 관념이 감각을 왜곡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