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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의 진입장벽

대여섯 살 쯤 되었나. 서울 삼선교에서 살았던 유년기의 내게 기타라는 악기의 존재를 알려 준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송창식 아저씨였다.

당시 우리동네에는 '샤니빵'을 납품하는 트럭이 왕래하곤 했는데, 그 시절의 나는 그 샤니빵 트럭의 운전수 아저씨를 송창식이라고 믿어버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누군가 내게 뻥을 쳤거나, 아니면 그 아저씨가 진짜로 송창식을 닮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그 아저씨를 볼 때마다 '송창식 아저씨'라고 부르곤 했다. 아마도 그 아저씨는 황당했겠지.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하던 무렵, 언젠가 동네 친구의 다리를 내 허벅지에 올려놓고는 딩가딩가하며 기타를 치던 흉내를 내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흐르고, 살았던 동네를 떠나 C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기타에 관심이 생겨서 당시 거금(?) 2만 원을 주고 레코드샆에서 기타를 구매했다(작금에 생각해보니 한마디로 '똥기타'였다).

서점에서 교본도 한 권 샀다. 피터 프램튼이라 추정되는 한 기타리스트가 빨간색 기타를 들고 노래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박힌 표지였다.

대망의 첫걸음을 떼기 위해 첫 페이지를 펼쳤고, 그때 처음으로 접한 곡이 바로 <에델바이스>였다.

코드는 단 3개. C,F,G7.

작금의 생각은 이렇다. '어떤 개자식이 집필했는지 모르지만, 첫 곡에 F코드라니, 생각이 있는 놈이야?'

(요즘 교본에는 당연한 얘기지만, F코드가 나오는 곡을 처음부터 싣지는 않는다.)

한 달여를 죽어라 쳤지만, 결국에는 공포의 F코드 때문에 기타를 때려치웠다...

 

https://youtu.be/lng0AX9kcaw

 

한 달 후, 친구가 장난으로 나를 툭,하고 밀쳤는데 문지방에 발이 걸려 뒤로 넘어지는 통에 오른쪽 손목에 실금이 가서 두세 달 동안 깁스를 하고 다녔다.

좋아하는 전자오락도 못해, 야구도 못해....더럽게 할 일이 없어서 다시 잡은 게 바로 기타였다. 깁스를 한 채로 열심히 스트로크(스트럼)를 했던 기억이 있다.

기억에는 없지만, 그러다가 어느 순간 F코드를 누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잡힐 날이 있을 거다." 영화 쎄시봉의 이 대사는 공감 100%다.

세하 코드, 혹은 바레 코드를 당시에는 '하이 코드'라고 명명하였던가. 여하튼 당시의 나는 하이 코드를 잘 잡으면 기타 고수인 줄 알았다.

글타.

F코드는 최초의 진입장벽이었다......

 

작금에 생각한다.

작금의 진입장벽은 뭘까.

기타 그 자체다.

염병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