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만들어내는 얼굴이 아니라 상대방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얼굴……스스로 선택한 표정이 아니라 상대방에 의해서 선택된 표정……
-아베 코보, <타인의 얼굴>중에서
십 몇 년 전,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동(가명)이냐? 난 윤발(가명)인데, 잘 지냈지?”
형식적인 안부 인사가 끝나자 바로 용건에 들어간다.
“다른 게 아니고…여기 성내동에 있는 피자헛 가게인데, 여자 친구랑 왔거든? 근데 이 친구가 글쎄 운전 중 후진하다가 그만 피자헛 가게의 벽을 박아 버렸지 않냐….”
“응, 그런데?”
“여기 담벼락을 내가 보수해줘야 할 것 같아서…벽돌이랑 시멘트는 다 사놨거든. 아, 내 얘긴 그냥 그렇게 됐다고. 뭐, 꼭 너더러 여기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 건 아냐.”
결국 와서 도와달라는 얘기다. 내가 급히 그에게 달려갔을 때, 그는 담 너머 골목길 한 가운데에 주차해 놓은 자신의 봉고차에서 어디선가 구해온 벽돌을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와 내가 부지런히 벽돌을 날라 담을 세우고 있는 도중 주차해 놓은 봉고 차 뒤편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골목길을 통과할 수 있도록 봉고차를 빼달라는 신호다. 윤발(가명)이는 작업용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올려 인지를 세우고는 뒷쪽을 가리키며 운전자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저 쪽으로 그냥 돌아서 가세요.”
그러자 그 승용차 안에서 험상궂게 생긴 30대의 남자가 내리더니 삿대질을 하며 다짜고짜 반말로 된소리를 내뱉……어야 마땅할(?) 상황이었는데, 신통하게도 그 남자는 한마디 불만도 없이 조용히 후진을 하며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윤발이의 외관은 배우 돌프 룬드그렌과 아주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돌프 룬드그렌
언젠가 그가 이런 얘기를 했던 것이 생각난다. 운전을 하고 있는 도중에 어떤 작자가 자기 옆으로 차를 붙이더니 창문을 열고는 (입모양으로 추정컨대)된소리를 지껄이더란다. 아마도 주행 중 사소한 시빗거리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한 윤발이는 짙은 선팅(sunting)의 검은 창문을 내린 후 상대방을 쳐다보고는 단 한마디의 말을 내뱉었다고 한다.
“뭐요?”
윤발이의 얼굴을 그제서야 확인한 상대방은 찍소리도 못하고 눈길을 피하더니 다른 데로 가 버렸단다. 물론 윤발이의 외관 때문이었음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각이 진 얼굴에 짧은 헤어스타일, 그리고 180cm가 넘는 키의 몸짱이었던 윤발이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딱 '깍뚜기'였던 것. 고로 골목길 안에서의 정당한 요구를 가볍게 묵살해버린 그의 무례에 대해 왜 항의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섰는지 능히 이해할 만하다. 10년이나 보고 지낸 내 입장에서는 그저 귀엽고(?) 웃기기만 할 뿐이지만.
사실 그는 친구에게 크게 화를 내는 일도,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자신의 와이프와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는 소위 ‘순둥이’ 타입이지만, 돌프 룬드그렌을 닮은 외모가 정 반대의 고정관념을 유발하는 거다.
그런데 종종 그의 외모가 부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대개 타인을 외관으로 판단하기 마련이고, 특히 얼굴 생김에 따라 업심의 정도를 조절하며 대면한다. 쉽게 말해서 만만하게 봐도 괜찮은 인간인지, 아니면 조심해서 접근해야 할 인간인지 지레짐작하여 행동한다는 거다. 그의 터미네이터 같은 외관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종종 전자의 태도를 유발하는 내 생김새가 못마땅한 탓이다.
‘사람은 불혹의 나이가 지나면 자신의 얼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마도 대개의 사람들이 심성과 얼굴의 비례관계를 믿기 때문일 테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 것. 첫인상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그 정확성을 그리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얘기를 흔하게 듣지만, 타인의 마음속을 알 길이 없는 대개의 사람들은 타인의 인상을 근거로 행위할 수밖에.
일드 <너무 귀여워>의 한 장면
문제는 세상의 모든 얼굴은 대개 가면에 불과하다는 것. 영화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의 애런 스탬플러(에드워드 노튼 분) 같은 극단적인 경우는 배제하더라도, 인상 좋은 사기꾼은 얼마나 흔한가. 사기꾼의 사기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에 그의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도 한 몫을 하지 않을까?
범죄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특별히 절친한 경우를 제외하면 가면 없이 타인을 대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게 하는 것은 분명 가면이다.
쓸데없이 유순해 보이는 얼굴 때문에 손해를 본 경험이 자주 있는 나는 엄중함이 요구되는 순간에 부러 미간을 지푸려 좀 험상궂게 보이려고 할 때도 있었다. 일종의 가면이랄까. 뭐, 물론 소용없는 일이다. 남들 보기에는 일그러진 가면이나 본 얼굴이나 다 ‘만만하게’ 보일 테니. 애니메이션<크리스마스의 악몽(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에 등장하는, 얼굴과 똑같이 생긴 가면을 쓰고 다니는 3인조 악당들은 적어도 만만해 보일 일은 없을 것 같아 좋겠다….
내가 나 자신과 똑같은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은 일부러 가면을 쓴 의미가 전혀 없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베 코보, <타인의 얼굴>중에서
내 말이 이 말이다….
문득 '가면과 본 얼굴의 일치'를 소재로 한 에드거 앨런 포우의 <적사병의 가면>이 연상된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시대적 배경은 전염병이 창궐한 중세의 어느 시기다. 귀족들은 적사병을 피해 성처럼 지어진 수도원에 피신한다. 외부의 전염병 환자의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빗장을 땜질해 버리고 바깥의 농노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권태를 잊기 위한 자기들만의 유희-가면무도회를 벌인다. 그러던 어느날, 정체불명의 가면을 쓴 인물이 무도회장에 나타난다. 귀족들은 그의 가면을 보고 기이하게 생각하다가 점차 혐오하며 경악스러워한다. 그의 가면은 바로 죽음을 연상시키는 '적사병의 가면'이었던 거다.
분노한 귀족들이 그를 붙잡아 바닥에 눕힌 다음 강제로 그 혐오스러운 가면을 벗겨내려고 시도하지만 그 가면은 벗겨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적사병의 가면'은 원래부터 가면이 아니었으니까. 귀족들의 이기적 유희에 증오를 품은 어느 적사병 환자가 적사병을 퍼뜨리기 위해 외부로부터 잠입했던 것. 그가 무도회장의 깊숙한 안쪽까지 설치고 다닐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귀족들이 처음엔 그의 얼굴을 가면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거다.
가끔은 가면이 아니라 맨얼굴 만으로도 충분히 역병 같아 보였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길을 가는데 고등학생 정도 보이는 한 여학생이 애틋한 눈길을 보내며 내게 다가온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그 눈길이 나를 향한 것임을 깨닫는다.
1m 간격을 두고 서로 눈길을 교환한다. 그 여학생은 뭔가를 요구하는 눈길이고, 나는 뭔가를 궁금해 하는 눈길.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연다.
“아저씨….죄송한데요, 부탁 하나만 들어 주시면 안 돼요?”
부탁의 내용을 묻자 그녀가 대답한다.
“제가 살 수가 없어서 그러는데요…. 저 대신 담배 한 갑만 사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조용히 손사래를 치며 물리친다. 이런 애들을 꾸짖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담배의 첫 경험에 대한 떠오르는 기억.
고딩이 시절, 한 선배가 내게 불붙인 담배를 건네며 권한 적이 있다. 내가 손을 저어 거절하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비엉~신.”
‘비엉신’ 뒤에 함축된 말은 아마도 이럴 거다. 너 범생이냐? 담배도 못 피우게. 자존심 상한 나는 그로부터 담배를 건네받고는 한껏 빨아들였다. 순간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러나 기침은 나오지 않는다. 흡연도 타고나는 것일까? 신기한 일이다. 그가 말했다.
“뭐야? 이 새끼, 필 줄 알잖아?”
필 줄 아는 게 아니라 단지 '만만해 보이지 않기 위한' 의지의 소산일 뿐이었으리라. 나는 그에게 첫 경험(?)이라고 실토하지도 않았다. 자존심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이후의 간헐적인 흡연은 아마도 더이상 만만해 보이는 범생이가 아니라는 증표로서의 행위가 아니었을는지.
성숙의 증표로 흡연 행위를 필요로 했던 정신적 미숙아의 시절 얘기다.
역시 그 여학생을 훈계를 해야 했을까? 성인이면 청소년들을 교화할 책임이 있다고? 아마 그 말이 맞을 거다. 다만 말 몇 마디로 금연을 유도할 수 있다는 건 순진한 착각임에는 분명하다. 말로써 금연에의 의지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금연주식회사에 의해 손가락이 잘리는 흡연자들의 얘기는 생겨나지도 않았겠지.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담배가 유발하는 질병에 대해 가능하면 동영상을 곁들여 설명해주는 것이겠지만 내 역할은 아니다. 결국 말로써 경각심을 이끌어주는 쪽을 선택한다. 물론 질책이나 훈계 따위는 아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무안해하는 그 여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담배 많이 피면 피부가 나처럼 될 걸?”
나는 자학적인(?) 이 말이 그 어떤 질책에 비해 효과가 없잖아 있었을 거라고 조금은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가 그런 과감한 부탁을 나에게 할 수 있었던 근거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녀가 부탁을 들어줄 사람으로 나를 선택한 건 아마도 그런 부탁을 해도 순순히 들어주거나 아니면 최소한 야단만은 칠 것 같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일 거다. 다시 말하자면 다소 ‘만만하게’ 보였던 거다.
<개그콘서트>의 <오성과 한음>이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코너가 있다.
좀 더 젊었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지하철을 탔을 때다. 빈 자리가 눈에 띄어 둘러매던 기타를 어깨에서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는데, 기타가 바로 옆에 앉아있던 초로(初老)의 남자 다리에 '살짝' 닿았다(이건 분명히 기억한다). 그는 "이게 뭐야!"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기타를 거칠게 손으로 밀어 버렸다. 그러는 통에 그만 기타가 지하철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부디 타인들이 연령에 맞는 존칭으로 불러줄 때에는, 어른이든 어르신이든 부디 거기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례한 행동으로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의 원성이나 반항을 샀다면, 부디 '내가 니 애비 뻘이다'라는,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애비'라고 생각하며 타율적으로나마 깍듯이 대하기를 당신들이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듯이, 당신들이 젊은이들을 돌프 룬드그렌이라고 생각하며 타율적으로나마 함부로 대하지 않기를 젊은이들이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결국 당신들은 당신들보다 어린 사람들이나 여자들 중에서 '만만해 보이는 대상'들을 골라서 함부로 위압적으로 구는 것은 아닌가?
윤발이의 돌프 룬드그렌 같은 외관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럴 경우엔 여학생들의 어이없는 부탁이나 운전 중의 시비, 그리고 지하철 안에서 기타가 패대기쳐지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텐데.
방구석 책장을 뒤지니 20대 중반에 구입한 <융 심리학 입문>이 굴러 나온다. 함 들춰봤더니 이런 구절이 눈에 박힌다.
The persona : 본래 페르소나란 극중에서 특정한 역할을 하기 위해 배우가 쓰는 가면을 말한다(person이나 personality도 같은 어원에서 유래한다).....개인은 페르소나에 의해 자기 자신의 성격이 아닌 성격을 연기할 수 있다. 페르소나란 개인이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가면 또는 외관이며, 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한다.
그동안 가면 쓰고 사느라 참 수고했다.
'좋은 인상 주려고' 안 하겠다. 가면을 써야 person이 된다면 그냥 짐승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