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기업을 운영하던 친구 서너 명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임종을 앞두고 과거를 회상하며 자기가 가진 재산이나 거느린 부하직원의 수를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그들의 마지막 바람은 보다 전망이 좋은 사무실도 아니고, 모두가 놀랄 만한 업무 지시도 아니다. 뒤늦은 깨달음이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성공의 근원적인 정의로 돌아간다. 삶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것이다.
-에릭 부스,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The everyday work of art)>중에서
하지만 삶의 종말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삶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되다니 참 묘하기도 하지.
-스탕달, <적과 흑>중에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1952년도 영화, <生きる:이키루(살다)>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이젠 그럴 시간이 없어."
주인공의 정당한 요구가 타성적이고 태만한 관료들로부터 거절당할 때, 그들의 업무 태만에 대해 왜 항의하지 않느냐는 부하 직원의 물음에 대한 주인공의 답변이다. 위암 말기 환자인 주인공은 누군가와 다투느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던 거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 장면을 봤지만, 역시나 그 순간의 공감은 뼈에 사무치는 각성이 아니라 '쌈마이' 멜랑꼬리의 잔재에 불과했을까. 아직도 나는 불필요하게 누군가와 다투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역시 '이럴 시간은 아직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테다. '죽음에의 선구(先驅)'니 뭐니 해봤자 그건 해당 주제의 책이나 영화를 보는 순간 뿐, 현재의 나는 치열하게(?)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아마 이 글을 다 쓴 이후에도 여전히 누군가와 다투며 시간을 낭비하겠지).
그래도 희망은 있다. 숱하게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마음 한가운데에서는 여전히 '그다지 많은 날들이 남은 것은 아니다'라는 경각심이 이는 걸 보면.
어쩌면 혹시 인생이 짧다는 느낌은 대개 비슷한 날들이 중첩되어 두께감과 질감을 잃어버린 탓은 아닐까. 누군가 말한 바와 같이 하루하루가 어느 순간부터 서로 엇비슷해지는 순간 우리는 다채로운 빛깔을 잃어버리게 되어 하루하루가 쌓여서 모인 과거라는 시간의 더미를 축소하여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 인생의 길이를 개화부터 낙화의 순간까지의 시간 길이로 축소하거나, 한술 더 떠 '인생은 찰나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권태의 결과는 아닐까.
하루의 시간이 길게 느껴질 때는 확실히 눈에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들을 할 때다. 만일 일생을 다채로운 여행으로 많이 채울 수 있다면, 그는 40세에 요절하더라도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 같은 인생을 살아온 80세의 누구보다도 인생을 길게 느낄는지도 모른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심리적 장수의 비결이랄까.
그런데 그렇게 의미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누리기 위해서는 역시나 그렇게 사는데 필요한 만큼의 돈은 필요하다. 그런데 세상은 역시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아서 '그렇게 사는데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렇게 살기 위한 대부분의 시간'을 돈벌이를 위해 소모해야 하는 거다(게다가 우리는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한 달의 여름 휴가를 기대할 수도 없다). 김삿갓이나 타네다 산토카(일본의 하이쿠 시인) 같은 무일푼 방랑자의 삶을 추구할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그러니 평생을 다채로운 여행으로 보내는 건 과욕이자 무리. 여행 이외의 다른 종류의 행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돈벌이와 자아실현이 현실적인 이유로 일치하지 않을 때는 양쪽을 절충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대상에 대한 순수 몰입(Flow)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 역시 지긋지긋한 복제의 나날들로부터 해방되는 방편이자 여행에 필적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되찾는 길이라고 보는데, 재산 축적의 과욕을 배제하면 어느 정도는 절충의 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뭐, 물론 만만한 일은 아니다만….
놀이에 빠진 어린아이의 진지함을 터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에 근접할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
※ 절충의 결과로서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가 하고픈 '놀이'의 목록 :
1. 기타 곡 쓰기.
2. 친구나 후배와 함께 자작자연하기.
3. 장작불로 파전을 만들어 평상 위에서 막걸리와 함께 먹기.
4. 늦가을이 되면 낙엽을 그러모아 태우기.
5. 사진을 배워서 블로그에 써먹을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기.
6. 무진장 긴 소설들 읽기.
7. 마루에서 뒹굴뒹굴하며 만화책 읽기.
8. 석 달에 한 번 정도 후배의 카페에서 친구나 후배들과 자작자연 연주회 하기.
9. 겨울이 오면 진짜 전나무로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
10.벚꽃이 만개하면 벚나무 그늘 아래에서 술판 벌이기.
영화 <이키루(살다)>에서 주인공은 해 질 녘의 저녁놀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아름다운 걸 30년 동안 모르고 살다니…."
위의 것들을 실천하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면 그 언젠가 나 역시 비슷한 말을 중얼거리게 되지나 않을지.
"이 재미있는 걸 30년 동안 안 하고 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