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혜택 아닌 혜택 중 하나는 어느 정도의 방종에 대한 면죄부일지도 모르겠다. 만취 후 공공장소에서의 고성방가나 토악질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적어도 그 행위의 주체가 젊은이라면-그런 걸 보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겠지만-보통은 젊은 객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곤 하니까. 똑같은 행위의 주체가 중년 아저씨일 경우에는 봐주고 납득할만한 '객기'를 찾을 수는 없을 테니 결국 듣는 소리라고는 '나이값을 못한다'는 것일 테다. 심할 경우엔 '잉여인간의 추태'로 폄훼될는지도 모른다.
간 건강의 악화로 인해 2008년 이후로 더 이상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 술 생각이 날 때면 막걸리 반 병이나 맥주 한 캔 정도로 아쉬움을 달랜다. 말그대로 '달래는' 정도지, 음주에의 욕구가 완전히 해소되는 건 아니다. 순대전골에 소주 한 잔(병)하는 걸 단순한 도락을 넘어 추억의 소재로까지 승화(?)하는 내게 소주와의 작별은 단순한 절주가 아니라 삶의 인상적인 장면이 소멸되었다는 걸 뜻한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소주를 멀리함으로써 얻은 이점도 있다. 술로 인한 실수를 더이상 허용하지 않는다는 거다. 좋게 말해서 '실수'이지, 사실상 '고의(故意:자기의 행위에 의하여 일정한 결과가 생길 것을 인식하면서 그 행위를 하는 경우의 심리 상태)적 추태'다. 여기서 그것들의 목록을 나열하는 건 자승자박, 혹은 일종의 자학이 될 터이니 관두자. 단지 말하고 싶은 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소주로 인한 만취에서 해방된 탓에 '잉여 인간의 추태'라는 오욕의 삶에서 약간의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선배에게 들은 얘기다. 하루는 자기가 아는 어떤 사람(이 분을 편의상 '길동 씨'라고 하자)이 만취 후 집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탔단다. 평소 습관대로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문득 구토(嘔吐)감이 치밀어 오르더란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순간이 되자 급히 창문을 연 다음 고개를 내밀어 먹은 것을 죄다 토했단다. 물론 버스가 달리는 중에.
속이 편안해질 무렵 정류장도 아닌데 갑자기 버스가 정지하더란다. 그리고 나서 운전사가 열어준 앞문으로 어떤 중년 아저씨가 뛰어들어오더니 뒷자리에 앉은 자기를 향해 다가오더란다. 씩씩거리는 그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쫓아 고개를 돌렸더니…버스 뒤에 바짝 붙어있었던 검은색 세단의 앞 유리창이 자신이 토악질해 놓은 내용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고.
이 사연(?)의 경험자가 비밀로 하지 않고 공유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젊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이값을 안 하고 사는 나(我)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마냥 20대인 양 행동하고 살 수는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육체의 기능이 소진(消盡)되어 가는 것에 다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건 아닐까. 젊은 시절에는 육체의 기능에 어느 정도의 신뢰가 있기 때문에 무리한 운동을 하든 한뎃잠을 자든 만취를 하든 두려움이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마음은 여전히 건강을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지만, 실제의 몸은 몇몇 이상 징후를 보낸다. 실제로 중한 병을 앓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내 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느껴진다.
자신에게 원래부터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식을 하고 사는 건 아니다보니 젊은 시절에는 몸에 이상이 있어도 인체의 자가 치료 기능에 의지하여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작 승용차의 약간의 이상 징후에는 민감해서 카센터를 가는 데는 인색하지 않으면서도.
열역학 제1,2법칙에 의해 영구기관(永久機關)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초,중학생 시절에 알게 되지만, 인체 역시 한도가 있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건 젊음의 흔적들이 신체에서 거의 다 치워질 무렵인 것 같다.
젊음의 흔적이 치워질 무렵이면, 건강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도 더욱 민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시절에 나름 이해 받을 수도 있는 약간의 추행(醜行: '추행'에는 '더럽고 지저분한 행동'이라는 의미 이외에 '강간이나 그와 비슷한 짓'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전자에 한정한다)을 더 이상은 내 인생에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해.
예를 들자면 이렇다. 몇 년 전인가 어린 시절의 친구였던 '용철(가명)'이 서울의 한 번화가에서 지나가는 젊은 여자들에게 "어이, 아가씨."하고 부르며 추근댔을 때, 아연실색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20대 초반과 작금의 행동에 차이가 없는가, 이것이 아마도 당시의 내 생각이었을 거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내가 온전히 나이값을 하고 산 것만도 아니다.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추근거린 적은 없지만.
이런 걸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상 방뇨에 대한 몇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선배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음주로 인해 요의를 느낀 어떤 선배는 가로등불도 꺼져 있는 어둑한 골목길에서 전봇대를 발견하여 급한대로 그곳에서 해결(?)을 하려고 했단다. 때마침 그 전봇대 앞에는 엄호(掩護)의 역할을 해줄 만한 승용차가 한 대 주차해 있어서 안성맞춤이었다고. 안심하고 바지 춤을 내려 급한 것을 해소하고 있었던 그 선배는 순간 아연실색해지고 말았단다. 그 승용차의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운전자는 젊은 여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얘기도 있다. 음주 후에 어두운 밤길을 걷던 한 선배는 잠시 요의를 느껴 화장실을 찾았지만 외딴 곳이라 주변에 건물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어쩌다 있는 건물은 화장실 문을 걸어 잠궈놓았단다. 한참을 걸은 그 선배는 마침 일을 보기에 적절한 장소를 찾았는데, 그것은 아주 긴 담벼락이었단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뿐더러 어둡기까지 했으므로 그보다 더 적절한 장소는 없었을 테다. 하여 그곳에서 급한 것을 해결하고 있었던 선배가 마지막 방울을 짜내려는 순간, 불현듯 자신이 서있었던 벽 주위가 환해지더라는 것이다. 놀래서 바지를 추스린 선배가 뒤를 돌아보자, 굉장히 밝은 빛의 조명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던 탓에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단다. 나중에 상황을 파악해 보니 소변을 보던 곳은 군부대의 담벼락이었고, 자신을 향한 빛은 부대의 망루에서 보초를 서던 경비병들이 비춘 탐조등이었단다. '딱 걸렸다'는 말은 아마 이 경우가 제격일 거다.
이와 비슷한 경우의 노상 방뇨에 대한 추억은 아마 많은 이들이 지니고 있을 테다. 좀 예외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예전에 한 친구의 친구에게 들은 얘기로는 만취 후 아스팔트 위에서 노상 방뇨를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한 화자(話者)는 성인 여자였다. 당시의 아연실색은 어쩌면 성차별주의의 탓이었으리라.
겨우 노상 방뇨 정도 가지고 '추행'이라고 한다면 좀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말할 사람도 거리에서 장/중년 아저씨가 노상방뇨하는 모습을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방종에 따른 혹독한 평가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객기니 혈기니 하는 것들이 면죄부로 작용하는 나이 때는 노상 방뇨하는 현장을 스포트라이트로 받아도 그것을 공석에서의 웃음거리로 삼을 수도 있다. 이보다 훨씬 어른이 되면…아무래도 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며칠 전에 볼일이 있어 서울의 어떤 동네에 찾아갔다가 약속에 차질이 생겨 그냥 발걸음을 돌렸을 때다. 해는 이미 기울어 사위는 어두룩했다. 돌아가야 할 집까지는 차로 50분 거리. 문제는 수위(水位)를 감당하기엔 둑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는 거다. 약속에 차질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그 약속 장소에서 해결하면 되었을 테지만, 약속 장소에 도달하기도 전에 약속이 파기된 걸 알았으므로 그곳에서 해결할 수도 없었다. 그 동네의 100m반경 이내에 있는 모든 상가 건물을 들락날락했으나 화장실을 개방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반경을 넓혀 찾아보면 어쩌다 한 군데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그랬다면 그 이전에 둑이 붕괴되었을 게 빤했다.
<네이버 국어 사전>에서 '노상 방뇨'의 예문을 찾으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좀 배웠다는 사람이 급하다고 노상 방뇨도 할 수 없고 참 딱한 노릇'이란다. 이 문장에서 '급하다고'와 '노상 방뇨도'의 사이에는 아마도 다음의 말이 생략되어 있을 테다.
좀 배웠다는 사람이 급하다고 (바지에 쌀 수도 없고, 그렇다고)노상 방뇨도 할 수 없고…
대개의 노상 방뇨 행위는 이런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 벌어진다. 선택지는 단 두 개다. 노상에 방뇨할 것인가, 아니면 바지에 쌀 것인가.
노상 방뇨는 경범죄다. '경(輕)'자가 붙기는 해도 엄연히 '범죄'다. 반면에 자신의 바지에 오줌을 쌌다고 벌금을 물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망신이기는 해도 범죄는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고는 하나 위의 두 가지 선택지에서 후자를 선택할 이는 세상의 성인(成人)들 중 단 한 명도 없을 것 같다. 설령 그 성인이 도덕적 근본주의자라 해도 말이다. '쪽팔리기보다는 나쁜 짓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건 건달 만이 아니다. '좀 배웠다는 사람'도 선택지가 위의 두 가지 밖에는 없을 경우엔 어쩔 수 없다.
같은 경범죄를 저지르려고 해도 청년 시절일 때보다는 훨씬 꺼림칙하다. 좀 이상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방종의 자유'가 없어진 거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나이 먹는 것의 미덕'이라는 책을 썼다지만, 장/중년이 되어 노상 방뇨에의 주저함을 오금 저리게 경험했더라면 책의 출간을 재고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믿거나 말거나.
어렸을 때 본 <한국 전래 동화>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혼기가 찬 어느 양반집 자제가 있다. 문제는 결혼하기로 한 신부의 기가 너무나 세어서 결혼 생활이 그다지 평탄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예상 외로 신랑은 오랫동안 이 신부의 기를 억누르며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첫날밤에 낸 모종의 꾀에 신부가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첫날밤의 동침도 거부한채 잠든 신부의 이부자리 아랫쪽에 자신의 대변을 싸질러놓은 신랑은 이튿날 아침 신부를 깨워 혐의를 뒤집어씌웠던 것. 그 이후 부인이 자신에게 대들려고 할 때면, '첫날밤…'하고 넌지시 일러주는 것으로 제압해 버렸다고.
이처럼 배설현상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한다. 존엄을 훼손 당하느니 차라리 범죄자가 되고 말자는 생각 때문에 노상 방뇨의 행위가 성립한다.
(난 지금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보지 말기를.ㅋ)
배설현상에 대한 추억(?) 하나. 1990년대 초중반에 나와 친구들이 살던 자취집은 소위 ‘푸세식 화장실(급수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고 구덩이 속에 분뇨가 축적되는 구식 변소를 이르는 말. 위의 사진을 참조하라)’이 마당에 따로 떨어져 있던 구식 가옥이었다. 후배들이 몇 명 놀러 왔던 어느 날의 일이다. 한 여자 후배가 잠깐 방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미동도 않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거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저기….”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화장실에 갔는데요…영수(가명) 선배가….”
그러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방에서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뜨악한 표정의 영수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화장실에서 볼 일 보고 있는데요….”
“그런데?”
“저 지지배가 갑자기 문을 확 열잖아요.”
“야, 임마…걔 발걸음 소리 못 들었어? 화장실 앞에 오기 전에 문을 잠갔어야지!”
“어휴, 형…” 그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걸쇠(잠금장치의 일종)가 있어야 잠그죠….”
“그럼 안에서 문을 꽉 잡고 있던가!” 내가 이렇게 따지자 도리질을 하며 그가 울먹이듯 말했다.
“문고리가 있어야 잡든가 말든가 하죠….”
그가 말하길, 인기척을 내려고 기침을 했지만 마당 밖의 소음 때문에 잘 전달이 안 되는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화장실 문 바로 앞에 왔을 때 문이 열리지 않도록 문짝의 양각(陽刻)된 부분을 엄지와 검지로 꽉 눌러 잡고 있었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녀에 의해 문은 확 열리고 말았단다. 아무래도 양각 측면의 홈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아서 악력으로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녀에겐 '노크'라는 개념이 없었던 걸까?
어쨌거나…그리하여 쭈그려 앉은 자세에서 결국 그녀와 눈이 마주쳤단다. 화-변기(和便器 : 쭈그리고 앉아서 대소변을 보는 수세식 변기)의 소변막이 용도로 제작된 둥그런 머리 부분이 꼬추(?) 가리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아마도 유일한 위안이었을 거다.
배설현상이 박탈하는 인간에 대한 존엄. 오죽하면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지식-in>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뜨겠는가?
-김태희도 똥을 싸나요?
댓글들이 가관이다.
-네, 쌉니다. 하지만 서민들과는 다른 똥이죠. 서민들은 구질구질한 똥을 싸지만 김태희 여신님은 여신답게 여신다운 똥을 싼답니다.
-소문엔 김태희 씨, 효모작용으로 똥을 체내에서 증발시켜버리는 수술을 해서 변을 안 본다던데...그게 사실인지...
(이에 대한 댓글 : 똥을 못 싸면 쾌감을 못 느끼는데 그딴 수술을 왜 함?? --;;)
다음은 배설현상에 외모지상주의가 과도하게 개입된 예다.
-똥은 못생긴 여자만 싸는 거야. 예쁜 여자는 안 싸.
고전적인 3단 논법의 댓글도 가능하다.
-대전제 : 모든 사람은 똥을 싼다.
소전제 : 김태희는 사람이다.
결론 : 고로 김태희는 똥을 싼다.
가끔 배설현상이 인간의 존엄을 박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댓글도 있다.
-물론이죠. 그리고 김태희는 똥뿐만 아니라 똥 싸는 것도 아름다울 겁니다.
이는 아마도 이탈리아의 예술가 피에르 만초니의 작품<아티스트의 똥>을 연상시키지만,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생각은 든다.
1961년, 만초니는 자신을 똥을 90개의 깡통에 나누어 담아 밀봉한 후, 깡통의 윗면에 자신이 제작했다는 표기와 서명, 그리고 시리얼 넘버를 적어 넣었다. 측면에는 ‘예술가의 똥, 정량 30g, 원 상태로 보존됨. 1961년 5월에 생산되어 깡통에 넣어짐’이라고 적은 후 출품하였다. 그는 자신의 똥의 가격을 당시 금값과 똑 같이 매겼는데, 현재 그것은 캔 하나 당 3만 달러가 넘고, 최고가는 7천 5백만 달러로 책정되었다고 한다. 2007년에는 캔 하나가 8만 달러에 팔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똥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고.
배설하는 모습의 발각으로 인한 참담한 수치심에 대해서는 2011년 퓰리처 상 수상작인 제니퍼 이건(Jennifer Egan)의 <깡패단의 방문(A visit from the goon squad)>만큼 잘 묘사한 글은 없다.
그러다 문득 까마득한 옛날 그가 처음 뉴욕에 와 로어 이스트사이드에서 비닐판을 팔던 시절, 어느 파티에서 보고 쫓아다녔던 눈부신 금발 아가씨가 떠올랐다. 이름이 애비였었나? 애비를 예의주시하면서 틈틈이 코카인 몇 줄을 흡입한 베니는 곧바로 장을 비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똥통에 대고 필시(라고는 하지만 베니의 뇌는 이 기억에 몸서리 치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을 전멸시킬 만큼 악취를 있는 대로 풍기며 한창 일을 보고 있는데, 잠금장치가 없는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애비가 입구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이 마주친 끔찍하고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 이어졌고, 이윽고 그녀가 문을 닫았다.
(중략)
아, 산더미 같은 치욕의 파도와 함께 몰려와 베니의 인생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휩쓸어갈 것만 같았다. 그가 일군 성취, 성공, 자랑스러운 순간들 할 것 없이 뿌리 채 뽑아버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는 버러지 같은 놈이었다. 똥간에 앉아 고개를 들었다가 잘 보이고 싶었던 여자의 메스꺼워하는 얼굴과 맞닥뜨리기나 하는 놈.
잡설이 길었다. 하다 만 얘기를 이어서 계속 하겠다.
위와 같은 존엄에 대한 강박 때문에 결국 나는 범죄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과단성은 나이 먹음에 반비례하는 것인지, 젊은 시절의 나였더라면 대충 어두룩한 곳이면 아무 데나 싸질렀을 텐데, 어느덧 체면을 의식하는 나이인지라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완전범죄를 위한 강박증 탓에 더 나은 조건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시한폭탄처럼 제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거라는 점.
가로등이 꺼져있는 어두룩한 골목을 찾았다. 그리고 적당한 높이의 담벼락도 찾았다. 그러나 어느 집에선가 사람이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다. 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있는 골목길이니 그럴 확률이 결코 적지 않다. 그리고 골목이 끝나고 다른 길로 이어지는 곳에서 불쑥 사람이 튀어나올 확률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 평범한 골목길은 포기한다.
행운이 있었다. 완벽한 장소를 발견했다. 그것은 아크로바틱(?)한 골목이었다. 아래의 그림을 참조하겠다. 아래 그림에서 빨간색 네모는 하수구를 표시한 거다. 윗쪽의 하늘색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골목의 길이는 대략 8m정도고, 아랫쪽 초록색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골목의 길이는 15m정도 된다. 그리고 노란색 선으로 표시한 부분의 담장 너머는 버스 정류장인 듯한 곳으로, 넓은 공터가 형성되어 있다. 즉 그 방향에서 사람이 튀어나올 일은 100% 없다는 얘기다.
주택들은 하늘색 선으로, 각 주택의 대문은 파란색 선으로 표시하였다. 대문이 있는 위치도 노상 방뇨를 위한 천혜의 조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방뇨의 주체(그림 가운데 빨간색 네모 앞에 있는 놈)가 있는 위치에서 고개만 살짝 내밀면 빨간색 별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곳의 대문과 윗쪽 골목은 정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빨간색 번개 그림의 대문은 어쩔 수 없이 청각에 의지해야 하지만 나머지 대문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비교적 안심해도 된다.
게다가 방뇨의 장소는 불경스럽게 담벼락이나 전봇대 따위가 아닌, 나름 형 경감의 사유가 될 법한 하수구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가로등(아래 그림에서 분홍색 풍선이 있는 위치)이 점등되어 있었다는 거다.
행동 지침은 다음과 같다.
1. 아랫쪽 초록색 화살표가 그려진 골목의 모퉁이까지 가서 그 골목이 끝나는 곳까지 정탐한다. 보행자가 없다고 판단되면 잽싸게 하수구(가운데의 빨간 네모)가 있는 곳을 지나 윗쪽 하늘색 화살표가 있는 골목의 모퉁이에 가서 마찬가지 방식으로 보행자의 유무 여부를 확인한다.
2. 보행자가 없다고 판단되면 하수구 위치로 돌아와서 범행을 개시한다. 단, 고개를 내밀어 그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대문들과 골목을 살핀다.
3. 범행을 개시하는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카운트를 센다. 아랫쪽 초록색 화살표로 표시해 놓은 골목에서 사람이 진입한 후 내가 있는 위치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15초. 윗쪽의 골목까지 확인하는데 걸린 시간을 제외하면 범행을 위한 안전한 시간은 고작 7초 안팎이 된다. 이 7초 안에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범행은 실패했다.
목격자로부터 노출된 것이다.
5초가 경과될 무렵, 윗쪽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골목으로부터 2~30대로 추정되는 여자(위 그림에서 노랑머리女)가 불현듯 튀어나온 것이다. 범행의 주체는 하수구가 위치한 담벼락 끄트머리에 바짝 붙어 있는 상태에서 앞쪽의 대문들을 주시하고 있던 중이었다. 시간상 노랑머리가 튀어나올 이유가 없었다. 그쪽 골목의 길이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8m의 길이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제자리로 돌아와서 범행을 저질렀을 때는 7초라는 시간상의 여유가 있었다. 그런 점을 감안했을 때 노랑머리가 튀어나온 건 정말이지 돌발적인 사태였다. 이 돌발 상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상상해 볼 수가 있다.
1. 노랑머리는 구보 중이었다.
2. 노랑머리는 경보 선수다.
3. 노랑머리는 바로 윗쪽의 집(빨간색 하트 표시)에서 막 나온 참이었다.
4. 노랑머리는 나의 급한 마음이 조작한 착시다.
(3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범행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범행을 완수하지 못했다. 방광 비우기는 50%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2. 노랑머리가 윗쪽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왔을 때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이로써 완전범죄는 실패했다. 어쩌면 불안감이 유발한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불안감이 유발한 착각'이라고 억지로 자위하는 것 자체가 그날의 참상이 실제라는 걸 반영할 뿐일는지도 모른다.
3. 이것이 치명적이다. 앞쪽의 대문을 염탐하느라 목을 하수구가 위치한 담벼락의 끄트머리에서 많이 뺄 수 밖에 없었는데, 어쩌면 그런 자세에서는 몸의 중심이 목을 따라 담벼락 끄트머리에서 조금 벗어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진짜 '몸의 중심'은 그대로 노랑머리에게 노출되는 최악의 참사가……
※변수 : 위 그림에서 분홍색 풍선이 그려진 곳에 가로등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서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비록 윤곽은 노출되었을지언정 '몸의 중심'은…검은 장막 속에 가리워져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목격자와의 조우 후 행동 : 범행을 멈춤과 동시에 고개를 원위치하여 담벼락 아래로 모습을 숨긴 후, 뒤돌아 서서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그러나 속보(速步)로 걸어서 노랑머리와의 거리에 격차를 벌린다. 'ㄱ'자로 꺽어진 골목을 돌아 아랫쪽 화살표가 있는 골목부터는 경보(輕步)선수처럼 걷는다. 뛰지않고 빠른 걸음을 이용하는 이유는, 뜀박질을 할 경우 발생하는 큰 발소리가 노랑머리에게 전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발소리의 강도는 내면의 죄의식과 쪽팔림에 비례한다는 것을 노랑머리가 모를 리가 없잖은가.
'건달이 쪽팔리믄 안 된다 아이가…'
아랫쪽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골목길의 끄트머리에 다다랐을 때, 뒤통수에 꽂히는 경멸의 눈빛의 감촉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날 범법자가 된 것은 순전히 아래의 사진에 나오는 이타적 공공의식의 건물주가 그 동네에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경우 인내의 극한까지 추구하려는 나의 자유의지는 바지를 적시는 개망신을 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노상 방뇨라는 필연성에 의해 구속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작금에 바라는 유일한 것은, 그 동네 건물주들의 의식이 바뀌는 것보다 그날의 범행의 잔상이 노랑머리의 기억 속에서 말끔히 삭제되는 거다.
이런 업소는 365일 흥해서 돈을 빗자루로 쓸어 담는 지경이 되어야 한다.
사족 :
[경제투데이 백민재 기자] KBS 글로벌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 브로닌이 노상방뇨를 했던 사실을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14일 방송에서 허이령은 “한국친구 따라서 노상방뇨를 해봤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농촌에 내려가서 봉사활동을 하다, 화장실이 급했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
허이령은 “딱 한번만 해 봤는데, 정말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허이령의 한국 친구는 그녀에게 “이런 상황이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사실 한번쯤은 다 그런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는 것.
MC 남희석은 “어쨌든 노상방뇨는 불법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남아공 출신의 브로닌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브로닌은 “밤늦게 화장실에 정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커피숍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 길에서 (노상방뇨를) 봤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거듭 “죄송합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