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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

솔즈베리 백작에게 바치는 파반느

 

 

 

 

<들국화>의 멤버였던 전인권과 허성욱은 1989년에 <추억 들국화>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매한다. <머리에 꽃을>, <사노라면>등의 곡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가장 유명했던 곡은 <사랑한 후에>일 것이다. 기차소리와 전인권의 거친 쇳소리가 어울려져 애상을 불러일으켰던. 


 

그러나 이 곡의 인트로는 알게 모르게 표절 의혹을 사기도 했다. 다름 아닌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시네마 천국>의 모티브와 너무나 흡사했던 것. 아래 영상의 3분 2초부터 들어보라. 뭐, 이 선율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러나 전인권과 허성욱이 <시네마 천국>을 표절한 것은 아니다. <사랑한 후에>는 번안곡이고, 원곡은 알 스튜어트의 <베르사이유 궁전(The Palace Of Versailles)>이었던 것.

 

 

 

 

그러면 알 스튜어트가 표절을?

이 경우는 표절이 아닌, 일종의 차용으로 봐야한다. 그러나 알 스튜어트가 차용한 건 엔니오 모리꼬네의 <시네마 천국>이 아니다. 그가 차용한 건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 작곡가인 윌리엄 버드(William Byrd)가 작곡한 <솔즈베리 백작에게 바치는 파반느(Pavane, The Earle of Salisbury)>이다.



그렇다면 엔니오 모리꼬네는 <솔즈베리 백작을 위한 파반느>를 표절한 것일까? 이 점에 대해서는 일단 법적으로 지정한 표절의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해야겠다. 이 정도 유사성 가지고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법이 어떻든 간에 사실 이 정도의 유사성 정도만 인지해도  심리적으로는 표절이라고 단정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표절이라는 말이 듣기에 거북하면 '차용'이라는 낱말로 대신해 보자.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밖에 없다.


1. 무의식적 차용

-즉, 엔니오 모리꼬네는 실제로 자신의 순수 창작이라고 생각하며 선율을 썼지만, 실상은 그의 무의식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솔즈베리~>의 선율이 비의도적으로 재현된 것.

 

2. 순전한 우연
-엔니오가 창작한 선율은 무의식에 저장된 <솔즈베리~>의 재현이 아니라, 순전히 우연한 사건에 불과하다는 것.

어느 것이 정답일까?

알 수 없다.

 

 

 

※참고로 윌리엄 버드에 대해서는 다음의 내용을 참조하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00527&cid=200000000&categoryId=20000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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