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음악은 S.Myers의 <Cavatina>. 곡은 훌륭한데 연주는 좀 구리다. 튜닝도 불안하고.
강원도 원주시에서 임업에 종사하는 한 친구와 페북을 통해 채팅을 하던 중 불현듯 원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그리웠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가 내게 던진 떡밥의 인력(引力)이 강력했기 때문이다.(떡밥의 실체는 조금 있다가 밝히기로 한다).
오전 11시 10분 경에 청량리 역에 도착. 원주에 갈 때는 항상 직접 운전해서 가곤 했지만 이번에는 간만에 기차를 이용하기로 결심. 그러고 보니 기차를 마지막으로 타 본 것이 대체 언제였더라? 향수를 자극하는 기차 여행.
영화 <사이보그 그녀>의 한 장면. 촌티를 좀 내자면, 요즘의 기차는 그 옛날의 것에 비하면 정말로 깨끗하다. 꽤 오래 전의 기차에는 벽면에 재떨이도 부착되어 있었지만 요즘은 실내의 대부분이 금연인 탓에 자취를 감췄다. 문득 거기에 꽃힌 담배의 누릿한(?) 향취가 그리운 걸 보면, 역시 추억에는 뭐든 과장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기차에 오르기 전,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기차 안에서 사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승무원의 먹거리 판매용 카트는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지나가지 않는다. 간만에 삶은 계란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잔 하고 싶었건만. 그리고 "삶은 계란이요~"하는 승무원의 철학적 명제(Life is egg)도 오랜만에 듣고 싶었건만.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해진 실내. 기차 특유의 리드미컬하게 덜컹거리는 소음도 추억의 음향이 되어버렸다(이 소음을 음표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탑승한 지 1시간 10분 뒤에 나와 후배 W군은 원주역 바로 전 역인 동화역에 내렸다. 엽서 그림으로 나올 법한 작고 예쁜 역사(驛舍)다. 럭셔리를 배척하는 개인적 취향으로는 이런 기와 지붕의 작은 역사를 선호한다.
춘천 인근의 강촌 역사를 럭셔리하게 증축한 공사관계자들의 미적 감수성에 강력히 태클을 거는 바이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한 컷. 식당칸에 그려진 그림이 예쁘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강릉까지 가버리고 싶다.
생뚱맞지만, 옛날부터 간직한 썰렁한 궁금증이 하나 있다.
왜 '은하철도 999'는 승객이라고는 철이와 메텔, 그리고 몇 명의 사람들 뿐일까? 프롤레타리아가 감당하기에는 기차표 값이 너무 비싸서? 그럼 왜 그렇게 쓸데없이 객실 수가 많은 걸까? 그리고 승무원은 왜 단 한 명일까? 기계화에 따른 인력감축 탓일까? ㅋㅋ…
동화역 뒷편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맥주를 사서 원을 푼다. 삶은 계란의 한은 그대로 간직한 채.
평상에 앉아 W군과 맥주로 더위를 달랜다. 평상 옆의 누군가 널어 놓은 빨간 고추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떠오르는 썰렁한 기억.
2005년 즈음 학원에서 일할 때다. 너무나 말을 안 듣는 한 초등학생에게 다음과 같이 뻥을 친 적이 있다.
"너, 고춧가루는 뭘로 만든 건지 알아?" 내가 묻자 초딩이 대답한다.
"뭐긴요. 고추로 만들잖아요."
"순진한 녀석…. 여태 그렇게 알고 있다니."
"예? 그럼 뭔데요?"
"뭐긴 뭐냐. 너 같이 지지리도 말 안 듣는 놈들에게서 떼어낸 고추를 땡볕에 말린 다음 방아로 빻은 게 바로 고춧가루의 정체야."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덧붙인다. "색깔이 빨간 건 바로 피 때문에 그런 거고."
그러자 초딩 답변하길,
"쌤, 뻥까지 마세요…."
난 정말 저질 쌤이었다.
동화역 뒷편. 200년은 되어 보임직한 나무가 잘 어울린다.
S와 합류한 다음 W와 함께 원주시 중앙동 소재의 자유시장 지하에서 배를 채웠다. 식사 후 둘러보니 생소한 풍경이 눈에 띈다. '찻집'이라니,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낱말인가. 100년 후에는 어쩌면 '다방'이라는 낱말과 함께 사어(死語)가 되어있을지도.
해가 떨어지고, 드디어 목적을 완수할 시간.
치악산 계곡에 위치한 한 횟집을 가다. 이곳의 전문 메뉴는 송어회.
얘네들을 보니 문득 미안하다는 마음이 든다.
포식자인 인간은 피식자에게 연민을 품는, 다소 변태 같은 존재다.
이것이 바로 이번 여행의 목적…아니, 떡밥이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으면 '얼싸 좋다, 내 몫이 늘었네' 하며 좋아한다는 송어회!
식당 종업원의 권유로 두 마리를 주문했으나 셋이서 먹기에는 다소 많은 양이었던 탓에 1/4가량 정도는 그대로 남았다. 이렇게 음식이 남고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럴 줄 알았으면 후배 청룽(가명)이도 데리고 올 걸 그랬나?'
물론 주문한 송어회가 식탁 위에 차려질 때는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했다. 청룽, 미안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간(肝)과 혈압상승 걱정으로 인하여 이 좋은 안주에 고작 맥주로 목을 축이는데 만족해야 했다는 점이다. 횟감에는 소주가 제격인데….
'쾌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행복(송어회)에 행복(소주)을 더하는 걸 의미한다. 이 즈음에서 중국의 작가인 린위탕(林語堂)의 술 예찬론을 언급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는 <생활의 발견>에서 이렇게 말한다.
술 마시는 즐거움, 즉 중국문학에 자주 나타나는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를 의미하는 미훈(微薰)의 경지를 설명하는 모습을 본 순간 이것이구나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가 상해의 한 미인이 술에 얼근히 취한 상태에서 미훈의 경지를 설명하는 모습을 본 순간 (술을 못 마시는 나는)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사람은 반쯤 얼근히 취하면 말이 많아지지요. 하지만 그럴 때가 저는 제일 행복해요." 라고 미훈의 덕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술이 얼근히 취하면 사람들은 대개 기분이 의기양양해지고 모든 어려움도 다 뛰어넘을 자신이 생기며, 감수성은 더욱 예민해져 실제와 상상의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는 창조력이 왕성하게 발휘되는 것이다. 동시에 그 상태가 되면 창조력에는 필수불가결한 자신감과 해방감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기분은 특히 예술 분야에 있어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도어스(Doors)의 짐 모리슨((James Douglas Morrison 1943~1971)은 시적(詩的) 영감을 위해 항상 병나발을 불고 다녔던 것. 오죽하면 그의 사후(死後), 팬들이 무덤가에 술을 놓고 갈까….
문제는 그러다가 '한 방에 훅 간' 뮤지션들이 좀 있다는 거다.
본 스코트, 존 본햄, 밥 말리…. 아, 참. 밥 말리는 폐암이었군.
원래의 글로 돌아가자. 술이 빠진 횟감이란? 앰프 없는 전기기타, 니코틴 없는 담배, 어묵 빠진 떡볶이…뭐 이런 건 아닐까?
꿩 대신 닭이라고, 소주 대신 맥주로 위안을 삼는다.
아, 소주….
다음날, 그러니까 L.A.다저스의 류현진이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7이닝 1실점(비자책)의 시즌 11승을 달성하는 날, 야구중계가 끝나자마자 반곡동 소재의 혁신도시 근처에 위치한 반곡역에 찾아갔다. 현재 반곡역은 폐쇄되었으나 갤러리로 용도변경 되어 사용 중이다. 구(舊) 역사의 소박함을 이런 식으로 유지하는 건 긍정적인 일이다.
반곡역에서 내려다 본 전경. 강원도 혁신도시 공사가 한창이다. 여기는 2층 단독주택 단지 부지.
반곡역 내부. 갤러리로 사용 중이다.
한적함을 좋아하는 개인적 성향 때문에 나는 소위 번화가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1999년 12월 마지막 날의 밀레니엄 축제 때, 친구의 부름으로 종로에 나갔다가 인파에 치여 죽는 줄 알았다….
반곡역의 정적(靜的)인 분위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뭐, 물론 오래 있으면 따분하기는 하겠지만.ㅋ
반곡역 후문 쪽의 꽃밭에서 호랑나비 발견.
반곡역을 떠나 점심을 먹기 위해 소초면 흥양리 소재의 식당 <된장과 막장>에 들렀다.
입구에서 후배 W군이 썰렁한 농담을 던진다.
"다 먹고 나서 '이런 된장…맛이 완전히 막장이네.' 이러는 거 아닐까요?"
다행히 1인당 11,000원의 값은 충분히 했다.
이 많은 반찬을 거의 다 먹었다. 다 비우고 배춧잎 몇 개가 남았을 때 또 후배 청룽(가명) 군 생각이 났다. 역시 그도 데리고 올 걸 그랬다.
왜 먹기 전에는 의식 아래에 잠들어 있던 존재가 포식과 동시에 의식 위로 떠오르는 걸까?ㅋ
여기까지 글을 쓰다가 문득 허기를 느껴 급히 비빔국수를 만들었다. '막장 맛'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한 맛이다.
상지대 캠퍼스 안에 있는 에디야 커피숍에 들러 카페라테 한 잔.
카페라테 한 잔 값이 2,100원. 싸다~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가 내렸다.
꽤 오래 전에 내가 무수한 바퀴벌레들과 함께 살았던 2층 집이 저 앞에 있다. 지금은 폐가 되기 일보직전이다.
그 집을 바라보며 S가 말한다.
"옛날에 저 집에서 여자 친구랑 대판 싸웠던 거, 기억 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야 마땅한 내가 대답한다. "내가? 난 그런 적 없는데?"
이건 발뺌이 아니다. 내겐 그런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S는 분명한 기억이라고 강조한다.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 사건의 주체는 그가 아닌 나였을 터인데 어찌하여 내 기억에는 없는 걸까? 불가해한 일이다.
어찌 됐건 기억은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님에는 분명하다.
동화역에 도착하여 해바라기를 배경으로 한 컷 촬영.
문득 <산울림>의 노래,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이 생각난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
여행에 대해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둘로 구분했단다. 하나는 시계와 같은 객관적인 '물리적 시간'이고 또 하나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인 '사적(私的)시간'이다. 양적 시간 개념인 전자를 크로노스(Chronos), 질적 시간 개념인 후자를 카이로스(Kairos)라고 한단다.
어쩌면 여행이란 길고 지루한 크로노스의 선분 위에 간헐적인 카이로스의 점을 수놓아 각성의 마디를 생성해나가는 행위는 아닐는지. 모든 날이 타성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이 되지 않도록 의미를 생성하는 데에는 여행 만한 것이 또 있지 아니하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컷.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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