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밖으로

카페 <커피 비상구>에서

 

 

 

2013년 10월 19일, 마포 소재의 카페 <커피 비상구>를 찾아갔다. 예전에 후배 청룽(가명) 군으로부터 몇 차례나 방문 권유를 받은 곳이다. 그가 예전에 소속된 어떤 기타 단체의 회원들 중 한 분이 여기 주인이신데, 청룽 군은 여기서 종종 기타를 연주했던 모양이다. 

 

이곳에서 작은 연주회를 가질 거라는 소식을 듣고 무거운 엉덩이를 이끌며 찾아갔다. 공덕역에서 내려서 가든호텔 방면으로 조금 걸어간 뒤에 호텔 뒷편에 나 있는 길로 접어드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삼거리에서 두 길이 만나는 지점에 <커피 비상구>가 눈에 들어왔다.

카페 출입구 쪽에 붙여 놓은 작은 포스터의 내용이 재미있다.

 

커피비상구 공연 시리즈 5 :
방구석 기타쟁이들의 콜렉션

-방구석 기타쟁이들의 무대울렁증 극복 프로젝트

 

그날의 공연은 기타 듀엣이었다. 기대 만빵~

일단 카페 구경부터.

 

 

 

 

벽면에 아기자기하게 붙어 있는 소품들이 너무 예쁘다. 이 시점에서 고개를 돌려 우측 상단을 보니 주방과 함께 벽에 붙여놓은 메뉴판도 보인다.

커피한잔해

 

 

 

 

바로 오른쪽 옆에는 로스팅 머신(커피 굽는 기계)이 있다.


 

 

 

이 반대편 벽면에는 사진들과 책들이 있다.

책장 우측의 창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청룽 군과 같이 듀엣 연주를 할 원옹(가명) 군의 솜씨다. 그림 잘 그려, 기타도 잘 쳐, 요리도 잘해…유일한 단점이라면 '무대울렁증'이 심하다는 거.
 

 

 

드디어 공연 개시 직전. 사실은 밤 9시 30분에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30분 정도 지연되었다. 청중이 부족해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반대다. 원옹 군은 이렇게 말했다.

 

"밤 늦게 해야 사람들이 없죠."

이 말인즉, 보는 사람들이 없어야 '무대울렁증'도 줄어든다는 거다. 이래서야 어디 취지(방구석 기타쟁이들의 무대울렁증 극복을 위한 프로젝트)에 부합한 연주회라고 할 수 있나….

헐

 

 


창가 옆에 있던 테이블이 치워지고, 드디어 공연 준비~
세워져 있는 기타를 잘 보면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글타. 이 기타는 줄이 여덟 개 달린 '8현 기타'다. 이 병우 씨의 기타를 제작하는 서 민석 제작가의 악기인데, 소리가 좋다는 건 그날 카페에 있었던 기타 애호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연주 준비를 하는 청룽-원옹 듀오.

 

 

 

 

 

 

리허설 중.

 

 

                                         드디어 小 연주회 시작~

 

 

이 날의 프로그램 : 카바티나, 사랑의 인사, 웨이팅 포 유, 로망스 1번 등 명곡들.

그 중 프란시스 클레앙(Francis Kleynjans)의 <로망스 1번>을 다른 분들의 연주로 들어보자(왜냐하면 나는 이들의 녹음 파일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어긋나는 부분이 많은, 그다지 훌륭한 연주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즐거워 보여서 좋다.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가는 삑싸리에 인상을 찌푸릴 것이고, 현대 음악가는 삑싸리가 내는 파열음에서 악음(樂音)을 초월하는 미학적인 근거를 애써 찾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방구석 기타쟁이들은 삑싸리가 날 때 그저 웃는다.

 

 

 

 

연주회가 끝나고 모두 모여 뒤풀이~
(바른 말 고운 말 : 뒷풀이(X) 뒤풀이(O))

 

된소리나 거센소리 앞에서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기로 한 한글 맞춤법의 규정에 따라 된소리나 거센소리 앞에서는 '위-'로 적습니다. (관련 규정: <표준어 규정-표준어 사정 원칙> 제2장, 제2절 모음, 제12항, 다만 1.)

                                                           -네이버 사전에서 발췌

 

 

 

 

 

 

 

술자리가 막판에 이르렀을 때 청룽 군이 말했다.
"정말 기타 치기 잘 한 거 같아요."
동감이다. 좋은 취미는 싱겁고 맨송맨송한 삶에의 양념이다. 좋은 취미를 가지지 못한 채로 중년 아저씨가 되고 노인이 되면, 결국 위락이 될 만한 대상이라고는 TV와 화투 이외에는 남는 게 별로 없다.

 

술자리에서 나와 함께 청중으로 참가한 근왕(가명) 씨가 신청한 슈베르트의 피아노 곡들과 존 윌리암스& 줄리안 브림 듀오의 <투게더> 음반도 간만에 감상했다. 역시 <투게더> 음반은 클래식기타 애호가라면 누구에게나 예술이자 추억이다.

 

 

 

 

총평 : 소박하고도 행복한 연주회였다.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기타 듀엣은 들을 기회가 그다지 많지는 않다. 기타 동호회나 대학의 기타 동아리 회원들은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듀오를 결성하여 연주하는 일이 잦을 테지만, 그들도 매일 기타 듀엣 곡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닐 테다. 하물며 그런 쪽으로 연고가 없거나 혹은 있어도 이미 과거지사가 되어버린 나 같은 사람들이 기타 듀엣 곡을 실황으로 듣는 건 정말 일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다. 오래전에 나와 함께 듀엣 곡을 연주했던 친구와 다시 연습을 해 볼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현실 가능성이 없었다. 2010년 즈음에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기타 줄이 모두 몇 개였더라?"

OTL

 

'밥벌이는 예술에 앞선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만, 그건 재능있는 예술가나 향유할 여유가 있는 이들의 생각이고 보통 사람들은 긴 인생을 버티기 위한 하루하루의 곱창을 채워야만 하므로 대개 예술(을 경험하는 기간)은 짧아진다'는 것이 기타와 음악을 잊어버린 이들의 변명은 아닐까? 이렇게 말하는 것도 어쩌면 일종의 독단일지도 모르겠다.

 

지음(知音)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쓰기 귀찮으니 두산백과에서 캡춰해서 옮긴다.

 

 

과거의 나의 '지음'이자 기타 파트너였던 친구는 그가 기타를 손에서 놓은 이후 '지주(知酒)', 혹은 음주 파트너로 전락되었고, 내가 술마저 멀리하는 처지가 되자 그나마도 유야무야 되었다.

때론 청룽 군과 원옹 군이 부럽다.


 

 

 

 

 

 

 

'세상 밖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