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습도 50%.
악기에게 있어 최적의 습도다.
그런데 최근 내 모든 클래식 기타들은 메마른 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적정습도 45~55% 사이에서 보관했음에도 그런다(케이스 안에 오아시스 습도계를 장착해 놓았기 때문에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줄이 맛이 가서 그런가 하고 교체해 봤지만 마찬가지다. 그리고 내 탄현에 딱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댐핏을 가동해봐도 별반 효과가 없다. 하도 답답하여 서XX 기타 제작가 님과 통화도 해봤지만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원인을 파악하기는 힘들 테다.
도대체 무슨 문제일까? 혹시 내 몸 속에 나쁜 기운(예컨대 음란마귀의 기운)이 있어서 기타가 그것을 감지하는 건 아닐까?
내게 있어서 클래식 기타는 성질 더럽고, 아주 까탈스러운 '미친 女ㄴ'과 같다(여성 비하라고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여자였다면 '미친 놈'이라고 표현했을 거다.)
어쩌면 기타의 음질은 그 주인의 인격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20대 중반 즈음에 읽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요즘 다시 읽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를 연상시키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그 무수한 名 '썰'들 중에서 사적으로 공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대목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조르바)는 무릎 위에다 산투리(현악기의 일종)를 놓더니 허리를 굽히고 현을 어루만졌다. 그 모습은 산투리와 의논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눈을 뜨라고 어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노래 한 곡조를 불렀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노래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 노래를 포기하고 새로운 곡을 골랐다. 하지만 산투리의 현은 노래할 생각이 없다는 듯, 아니면 고통스러운 듯 소리를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조르바가 벽에 기대 앉아 미간을 문질러댔다. 어느새 땀을 흘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중얼거리며 두려운 듯 산투리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지 않대요. 하고 싶지 않다는군요!"
그는 산투리가 사나운 짐승이라 물릴 것을 염려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시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시 일어나 벽에다 걸고는 중얼거렸다.
"하고 싶지 않다는군요.하고 싶지 않대요....., 그러니 억지로는 시키지 말아야지."
우리는 바닥에 다시 앉아 불속을 뒤져서 밤알을 찾아내고는 포도주로 잔을 채웠다. 그는 알밤 껍질을 까서 내게 주며 계속 마셨다.
그가 물었다.
"이해가 가나요, 두목? 나는 모르겠어요. 모든 만물에는 영혼이 있는 것 같아요. 나무도, 돌도, 우리가 마시는 이 포도주도, 우리가 밟고 선 이 대지도. 두목, 모든 사물, 그래요, 글자 그대로 만물말이에요!"
오늘도 케이스를 열어 기타를 꺼낸 다음, 중2처럼 예민하고 지랄맞은 1번선을 퉁겨본다. 기대하는 '퉁'소리가 나야하는데 '팅'소리가 난다. 가습의 효과일까? 그래도 어제보다는 나아지긴 했다. 어제는 '쨍'소리가 났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나는 조르바처럼 중얼거려본다. "하고 싶지 않구나..."
나는 기타가 성질 사나운 여자라 할퀼 것을 염려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시 케이스에 넣기 시작한다. 하고 싶지 않다는군..., 그러니 억지로 시키지는 말아야지. 어쩌겠나. 만물에는 영혼이 있고, 지금 내 기타의 영혼은 백사장에 말려놓은 오징어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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