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청룽 군이 술자리마다 입에 침이 마르게 강추한 책,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청룽 군의 방에서 기생하던 차에 빌려서 읽는다. 내용은 소위 결정론에 관한 것. 일부 발췌하면,
"자유의지란 허무한 공상일 뿐이며...(...)미래에 발생하는 결과는 미리부터 정해져 있다."
...읽는 도중에 문득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대사가 떠오른다.
"이 세상 아무 곳에나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꽂힐 확률...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난 게 인연이다."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은 달리 말하자면 (경우의 수가 무한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천문학적인 우연일 텐데, 이런 기적적인 우연을 우리는 보통 비장하게는 '운명'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운명이란 곧 필연 아닌가? 우연=필연??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
어쨌거나, 본서의 저자 같은 결정론자들은 이렇게 말하리라. "확률은 무슨 얼어 죽을 확률. 인우와 태희는 그냥 연인으로 만나도록 결정되어 있었던 거야."
믿거나말거나 결정론적 세계관은 나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내가 어느 여자에게 퇴짜를 맞든, 혹은 결혼 후 이혼을 하든 이 모든 건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바이므로 부질없는 회한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을 터.
어쨌거나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에 덧없을 희망을 품고 로또복권을 5천 원어치(소심하여라....) 구입했을 당시, K 모 씨에게 <번저점프를 하다>를 패러디하여 이렇게 말했더랬다.
"잠실운동장 아무 곳에 복숭아 통조림 빈 캔 한 개를 놓아 둔 상황에서 지나가는 비행기가 내가 구입한 로또 용지 포함, 모든 구매자들의 로또 용지를 떨어뜨렸을 때, 그 빈 캔 안에 내 것이 들어갈 확률....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1등에 당첨되는 것...."
본서의 저자는 아마도 이렇게 말할 테다. "로또 당첨자도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럼 대체 나는 뭐하러 이런 걸 산 걸까?' 뭐하러 사긴. 내가 로또 당첨자로 예정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알 길이 없으니까 샀겠지.
'구원예정설'의 쟝 칼뱅도 비슷한 얘기를 한 듯싶다.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면 뭐하러 교회를 가고 기도를 하느냐는 혹자의 질문에 대해, "구원이 예정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우리가 작금에는 알 수 없으므로..."
이런 ㅆㅂㅅㄲ.....
결정론을 받아들일 때의 장점이 또 한가지 있다. 밑줄 쫙~
삶의 딜레마ㅡ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나, 혹은 나 자신의 능동적인 노력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일들(예컨대 짝사랑하는 그녀를 꼬시는 일 따위)에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어차피 결과는 결정되어 있으니 괜시리 과도하게 스트레스 받으며 힘 빼지 말고 그냥 다음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Only time will t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