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좌충우돌 잡글쓰기

작은 기쁨

 

 

 

2009년 퓰리처상 수상작,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Olive Kitteridge)>에 나오는 문장.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책 읽기를 중단하고 생각해 본다. 앞으로 내게 '큰 기쁨'이라는 것을 경험할 일이 있을까? 속단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을 헤아려 보면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무엇에 도전하기에는 늦지 않은 나이이지만 큰 영광이나 큰 기쁨 따위를 기대할 나이는 아니다. 역시 소소한 것에서 기쁨을 찾는 게 현명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기쁨'의 일환으로, 4월 첫째주 주말에는 몽환의 흥취에 젖기로 했다. 올림픽 공원의 벚꽃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대낮부터 친구 P모 군 등과 낮술을 때리는 거다. 몽환(벚꽃)에 몽환(술)을 더한달까. 동네 커피샾의 친절한 여점원으로부터는 기쁨을 얻지 못하는 인간은 이게 최선이다.

"대낮부터 술 먹으면 지나가는 젊은애들이 우리를 부랑자 취급하지 않을까?" 친구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집에서 안 보는 두꺼운 책(예컨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같은)을 가져와서 돗자리 위에 보라는 듯이 두면 돼."
세상에는 식자 부랑자도 엄연히 존재 가능함에도 세상의 편견에는 편견으로 맞서겠다는 듯 이렇게 허세의 쉴드를 치기로 한다. 여기에 동조하듯이 P모 씨가 말했다.
"그럼 나는 아주 두꺼운 영어 원서를 들고 와야겠군."
그러고 보니 톨스토이 따위(?)보다는 그게 더 먹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낮술을 때리든 공부를 하든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을 거라고 보는 게 진실일 거다. 그러니 그날은 순수하게(?) 술만 가져가기로 한다.

 

희망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부디 그때에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는 거다. '미세먼지 나쁨' 때문에 푸른 하늘을 구경 못한 게 일주일째다.
이대로라면 그날도 장담할 수 없다. 그날도 여전히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다면 집에서 아오이 소라의 <G컵 탐정 호타루>나 보며 '작은 기쁨'을 얻을 수밖에.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좌충우돌 잡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은 깡패  (0) 2015.04.14
음란마귀 포에버  (0) 2015.03.30
싸구려  (0) 2015.03.17
타인의 고통  (0) 2015.03.17
개털의 핵존심  (0) 201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