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라일락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라고 시인 엘리어트는 <황무지>에서 썼다. 잔인하긴 깨뿔…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해의 그 다음 해에 처음으로 그 시를 접하고는 이렇게 무지(無知)의 콧방귀를 뀌었다. 봄에 자살자가 많다는 사회학적 팩트가 있건 말건 4월은 벚꽃이 필 뿐만 아니라 벚꽃만큼 화창한(그러나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새내기 대딩녀들이 주위에 만개하는 계절이었으니 잔인할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당시에 잔인한 달은 외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었다. 말로만 듣고 책으로만 보던 5.18의 참상을 총학 측에서 15.2 X 20.3cm의 컬러사진에 담아 당시 동아리방이 있었던 예술관 앞 도보에 10m도 넘게 전시해 놓았던 통에 그날 점심은 다 먹었다. 그 사진을 본 소감이 어땠냐고? 그 참혹한 사진을 보면 최소한 이런 멍청이 같은 얘기는 안 한다.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위에서 시켰으니까 그랬지."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왜 안 그러겠나?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도 위에서 시켜서 그런 거라니까.
5월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동아리방에 기타 연습을 하러 예술관으로 향했더랬다. 입구에서 3~4m 떨어진 우측 통로로 꺽어져 진입하기 직전, 동아리방의 1~2m 떨어진 벽면에 부착된 대략 20x15cm 사이즈의 칼라 사진이 눈에 박힌다. 조선대생 이철규 군의 변사체 사진이다. 당국에서는 '실족하여 익사'라고 발표했지만 그걸 믿는 인간은 '개구리 소년 UFO납치설'을 믿는 대뇌 레벨이 아닌 한, 100% 없었다. 이런 거다. (자칭 민주경찰이 타칭 좌익사범 학생을)'턱'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아, 씨바 좃됐다.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걍 강에 내다 버려. 실족하여 익사했다고 발표하면 존나 미개한 것들은 믿게 되어 있어.
뭐, 이런 시대였다.
당시에 내 생활은 이랬다. 자취방이 있었지만 멀어서 가기 귀찮았다. 그래서 늦게까지 동방에서 연습하다가 잠이 오면 침낭에 기어들어가서 잤다. 그러다가 새벽 서너 시가 되면 요의가 느껴져 잠을 깨고는 했다. 그날도 화장실에 가기 위해 침낭 밖으로 빠져나왔다. 볼일을 보고 화장실에서 돌아오는데 곁눈으로 문제의 그 사진이 들어온다. '보지 말자, 절대 보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희한하게도 그런 건 꼭 보게 되어 있다. 고인에 대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건 정말 공포 그 자체였다. 시신이 장시간 물속에 있으면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 그때 알았다. 나중에는 의대에 다니는 후배 덕에 법의학 책의 온갖 끔찍한 사진들을 봤지만, 그때의 충격과 공포만 못했다. 새벽 3시의 적막감이 더해진 탓도 있었겠지만.
나중에 곰곰히 생각했다. 대체 이 사진을 기타 동아리방에서 2m도 안 떨어진 벽면에 부착해 놓은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소위 '운동권'이었던 한 친구에게 물었다. "야! 너희들, 일부러 우리 동아리방 근처에 붙여놓은 거지? 시국이 이런데 태평하게 풍악이나 울릴 때냐고 따지고 싶었던 거 아냐?" 어느 인문학자가 회고하기를, 이보다 조금 후일인 90년대 초반 조차도 롹음악 동아리는 소위 '운동권' 학생들에게 지탄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누구는 영미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데 누구는 영미의 롹음악 따위나 연주하며 니나노~하고 있으니 사실 그 빡침에 대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루키의 문체 표절로 말이 많았던, 작가 박일문의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는 소위 '운동권'인 주인공 남녀가 딥퍼플의 하드롹 음악을 즐기는 것에 대한 위화감을 묘사한장면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음악과 정치를 일도양단 못하던, 혹은 할 수 없었던 시절의 초상이었다.
어쨌거나, 당시의 기억 때문인지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기 이전에 피부에 눌러붙은 피딱지의 찜찜함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렇게 독재군부는 계절의 여왕을 앗아갔다. 뭐 어때. 그대신 꽃 피는 4월이 있잖아. 당시 이렇게 생각했을까. 징하다. 유신 잔당들은 기어이 우리의 4월도 5월처럼 피떡지게 만들었다.
시인 김선우는 <도화 아래 잠들다>에서 이렇게 썼다. "전생애를 걸고 끝끝내/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기어이 피어낸 몇 낱 도화 아래/묘혈을 파고 눕네" 어쩜 이렇게 딱일수가. 우리는 매년 4월을 그로테스크하게도 묘혈(墓穴)에 누워 꽃구경을 해야 할 팔자다. "벚꽃처럼 스러지라, 사무라이로서." 자살폭탄의 원조 격인 가미카제 특공대원을 두고 당시 일본 군부가 폼 나게 지껄인 말이다. 미적 대상인 꽃에서 죽음을 미리 당겨서 읽어내는 이 그로테스크 변태의 미학을 우리도 배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