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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메모

압축된 시간

 

 

 

지난 주에 어떤 모임에서 K모 씨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졸업 후 입사한 직후와 퇴직한 직전까지의 세월, 그러니까 '입사~퇴사'의 '~'에 해당되는 세월의 두께감을 잃었다는.

아마도 이런 얘기이지 싶다. 예컨대 나의 지나간 대학 생활이 대략 400페이지 분량의 소설책 두께 정도로 기억되는 것에 반해 '~'의 세월은 A4용지 한 장으로 압축된 듯한 그런.

내게도 그런 경우가 있다. 고딩 시절이 그렇다. 몇몇 기억의 편린을 제외하면 대개는 A4 한 장 두께로 오그라들었다. 어디 이런 게 고딩 시절뿐이겠냐만은.

그래서인지 아래의 밑줄 친 문장이 가슴에 팍 와닿는다. 저자인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다음과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을 인용한다.

 

어쨌든 시간은 변화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거나 혹은 변화되었어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인간은 '시간이 흘렀다'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사르디니아 섬에서 영웅들과 함께 푹 자고 일어난 등장인물들이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내용의 신화와 같은 맥락이다. 이 사람들은 잠들기 전의 <지금>과 같이 잠이 깬 직후의 <지금>의 중간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중간을 떼어 내고 이전 <지금>과 이후 <지금>을 바로 연결하여 하나의 <지금>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파악하자면 나의 고딩 시절은 그러니까 결국 잠들어 있었던 상태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는 얘기가 되려나. 아니, 이건 지나친 과장인가. 에둘러 말하자면 다채로움을 상실한 타성적 반복의 잿빛 인생은 수면중과 크게 다를 바 없이 그 축적된 시간의 총합을 얄팍한 A4지 한 장 두께로 압축한다는 말일까? 즉 수면중의 시간 감각이 '0'이라면 생활은 그 단조로움의 정도에 따라 점차 무한소에 가까워지는……그래서 예로부터 선지자들이 걸핏하면 "잠에서 깨어나라"고 충고했던 걸까?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시간 감각이란 참으로 오묘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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