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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메모

'그지' 쌤 원주천 다리 아래 움막에서 살고 옷은 의류수거함에서 빼내서 입고 다니며 우유는 편의점에서 유통기한 지난 것을 얻어먹고 다닌다고 얘기한 이후로 (사실 곧이곧대로 믿지도 않으면서) 나를 '그지 선생님' 취급하는 초딩 여학생이 이번에는 상한 바나나를 주워 먹고 탈이 나서 병원에 실려가는 모습을 칠판에 멋지게 남겨주었다. 그림을 보고 나서 내가, 효선(가명)이는 나중에 일러스트나 웹툰작가가 될거야 라고 말했더니, 싫어요 왜 선생님이 제 꿈을 정하고 그러세요? 라고 반발하는 게 아닌가. 하여 되묻기를, "그럼 네 장래 희망이 뭔데?" "의사 될 거여요." "의사? 그건 공부를 잘 해야 되잖아?" "저 공부 잘 해요!" "잘 한다고! 근데 기타는 왜 이래?" "기타하고 공부는 별개죠!" "아니야. 내가 5백 명 정.. 더보기
낭만이여 안녕 로 유명한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 미시마 유키오의 글을 읽다보면 사람의 양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에 평화헌법에 반대,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며 40대 중반의 나이에 할복 자살했다. 군국주의의 부활을 염원한 극우주의자로 죽은 거다. 짙은 눈썹, 근육질 몸, 일본도...등, 그에게 느껴지는 건 이런 마초적 이미지다. 그런데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미문의 정체는 대체...이토록 시심 그윽한 인간이 대체 왜? 거장 안드레스 세고비아는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나이듦에 따른 시심의 감소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 바 있다. 창밖으로 내다보니 봄비가 내린다. '하늘이 물청소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나 역시 시심의 바닥침을 느낀다. 하여 잠시 생각에 잠겨 시상을 떠올린 후 후배.. 더보기
협박의 힘 뭐시기 초등학교에 재학중인 신 모 양과의 레슨 내용 : 신 모 양이 세하가 나오는 부분에서 자꾸 미스톤을 낸다. "아까부터 자꾸 거기서 틀리는구나." "어려워요." "연습 부족이야." "연습 많이 했어요!" 세하의 요령도 이미 다 가르쳤다. 어쩌면 좋을까.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너, 거기 자꾸 틀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요?" "10년 후에 나랑 똑같이 생긴 남자애랑 연애하게 돼!" 그랬더니, "악! 싫어요!" "왜 싫은데?" "쌤은 가난한데다가 못생겼잖아요." 그러더니 해당 부분을 치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미스톤 없이 제대로 쳤다. 이노무 자식이…. ㅡㅡ^ 더보기
바람만이 아는 대답 대학 친구가 기타 연습하러 학원에 찾아왔다. 연습이 다 끝난 후 이 친구가 말하기를, "커피 마시러 갈까?" 내가 대답했다. "남자 둘이서 무슨 재미로 커피숍을...." 그러자 그가 "거기 주인이 돌싱녀인데..."하고 말했다. 나는 못이기는 척 조차 하지 않고 그의 제안에 동의했다. 얼마 전, 한 원생 분께서 술 마시러 가자고 제안하셨다. 전날에 소주를 한 병 마셨던지라 다소 피곤했던 나는 "오늘은 좀...어제 술을 좀 마셔서요."하고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래도 함께 가시죠."하며 원생 분께서 계속 권하시길래 어디로 가실 거냐고 물었더니 (바깥에서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는) 까페 X에서 마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 때는 못이기는 척을 하고 따라나섰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여난을 당해야 해탈할 수 .. 더보기
껌값 여지껏 살아오면서 거듭 깨닫는 바는 시간은 광속으로 흐르고 죽음은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곧 죽을 인생, 사후에 경매에 붙여지기 전에 내 물건들을 지금 내놓는다. 안경 1억 연습용 의자 2억 변기 3억 옷들 10억 오렌지 기타 앰프 10억 펜더 기타 50억 뮤직맨 액시스 기타 70억 라리비 통기타 70억 연습용 클래식기타 30억 퍼거슨 경의 껌값에 비하면 정말 껌값 아닌가? 마지막으로, 이그나시오 플레타 클래식기타 3800만 원. 이거는 껌 포장지 값도 안 된다. 더보기
나이듦 후배 아쿠마(별명)를 배웅하기 위해 고속버스 터미널 근방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2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한 처자가 내게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본능적으로 심리적 방패를 세우는 도중에 그녀가 말을 잇는다. "나이에 비해 참 젊게 입으시네요." 한마디를 던졌다. "용건만 간략히 말씀해 주시죠." 이렇게 물었지만 물론 용건이 뭔지 알고있다. 그 용건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렇다. 물론 나는 사람이 해탈하면 어떻게 삶이 변화하는지 궁금하기는 합니다만 당신에게 그것을 구하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도 닦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인간관계의 화술에 대해 관심이 더 많다. 예컨대 접근의 멘트로 나이에 비해 젊게 입으신다는 말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는 것 따위. 젊게 입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예전의 패션에 변화 없이.. 더보기
머나먼 해탈 길을 가는 도중에 땅에 떨어진 시커먼 물건을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내게 임한 감정은 바로 기대감이었다. 이게 웬 떡이냐.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기대했던 지갑이 아니라 단지 인스턴트 음식을 담은 듯한 용기였을 뿐이다. 가벼운 실망과 동시에 찾아든 현자타임. 내 것이 아닌 것에 기뻐하다니. 불로소득이나 바라다니. 이 모질아... 근래 너무도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 의 한 구절이 휙~지나간다. "자유란, 판단적이고 감정적인 의미를 사물에 덧붙이지 않을 때 생기는 게 아닐까?" 사물, 혹은 지각되는 대상에 감정적인 의미를 부여한 결과 존 윅은 강아지 한 마리의 목숨값으로 119명의 사람 목숨을 거두어 갔고, 나는 남의 지갑을 거두어 갈 뻔했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여전히 탐진치 3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을, .. 더보기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로 본 나의 양면성 로 본 나의 양면성. 그림 순서대로, 1 : 클래식기타나 통기타를 칠 때의 천진난만한 모습. 2 : 야심한 밤중에 홀로 있을 때의 모습. 3. 폭력성을 내재한 나의 무의식. 4. 원주 현자 음해선생이 꽤뚫어 본 나의 이중성. 더보기
2020 80년대 초중반, 동네 극장에서 무진장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터미네이터 그 영화에서 로봇들이 적대 관계에 있는 인간 무리들의 지도자인 존 코너를 말살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이용하여 과거(1984년)로 터미네이터를 파송한다. 존 코너의 어머니인 사라 코너를 제거하면 존 코너의 존재를 말살할 수 있었으므로(이 무슨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인가). 어쨌거나 로봇이 터미네이터를 파송했던 년도가 2018년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얘기다. 2020이라는 숫자를 바라보니 묘한 감정이 든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60년대에 를 제작할 당시에 느꼈던 '2002'라는 숫자의 뉘앙스가 이렇지 않았을까. 떠나보내야 할 것들을 제대로 보내지 않아 과거의 어느 시점에 정체된 듯한 삶과 지극히 스페이스오딧세이적인.. 더보기
역대급 만취 일요일인데다가 달리 할 일도 없어 오랫동안 계획했지만 미루고 미루던 일(?)을 드디어 시행했다. 낮술 때리고 뻗어버리기. 그런데 소주는 폐인 이미지인지라, 다소 우아해보이는 와인을 선택하기로 했다. 안다, 이런 게 편견이라는 것을. 홈플러스에서 닭강정과 칠레산 고양이 와인(Gato negro를 나는 이렇게 칭한다)을 샀다. 지난번에 세 명의 지인과 함께 마셨던 그 와인이다. 한 병을 세 명이서 나누어 먹었는데도 취기가 꽤 올라왔음을 기억한다. 그 술을 한 시간동안 혼자 다 마셨다. 뭐야, 멀쩡하잖아... 커피나 마실까하여 자주 가는 까페를 찾아 커피를 주문하고 을 읽는데 오 분쯤 지났을까, 빨강머리 앤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어느덧 나는 그리피스 왕자가 되어 백마를 타고 청공의 바다 같은 초원을 달리고 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