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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메모

귀접 이상하게도 하루종일 피곤하고 졸리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소파 위에 누였지만 편한 몸과는 달리 마음은 나태함의 자각 때문에 편하지가 않다. 하여 오른손 연습을 위한 Guitar mute(오로지 오른손의 연습만을 위해서 제작된, 소리 안 나는 미니 기타)를 배 위에 얹어 놓고 실리적 효용에 대한 기대와 나태함에 대한 자기방어(나는 지금 자빠져 있는 게 아니라 연습하는 중이야!)가 적당히 뒤섞인 심리 상태에서 오른손 아르페지오(분산화음) 연습을 시작하다가..... ......그만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뭔가 원인을 찾아야만 직성이 풀리는지라ㅡ혹은 혹자의 관점에서는 뭔가 합리화를 위한 핑계거리를 찾아야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는지라ㅡ나는 이 돌연한 낮잠의 원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한다. 아무래도 두 가지.. 더보기
평형감각 개밥을 주기 위해 개밥이 가득한 냄비를 들고 가는 도중 눈이 내려 미끄러운 길 위에서 그만 벌러덩 자빠지고 말았다. 놀라운 일은 자빠지는 그 짧은 순간에 손에 든 냄비를 의식했다는 점. 그 와중에 단지 대여섯 개의 감자 조각을 흘렸을 뿐이니 진정 놀라운 평형 감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벌러덩 드러누운 상태에서 뿌듯함에 젖는다. 겨우 이 따위 일에 흐뭇해 하는 별스러운 자부심이라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아예 들지 않는 건 아니다.... -2017. 1. 21 더보기
안녕, 다사다난했던 2016년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마추어 셰프인 후배 박 모 군의 작업실에서의 조촐한 망년회. 다사다난했던 2016년을 보내며. Happy new year~! -2016. 12. 31 더보기
바꾸지 못하는 일 담장 밖의 새는 고양이에게 있어서 욕망해야 할 대상일까, 아니면 포기해야 할 대상일까? 새해에 마음에 새길 기도문 : 신이여, 바라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ㅡ 라인홀드 니버 2016. 12. 30 더보기
안녕, 연습실 정든 연습실을 떠난다. 텅빈 공간은 왠지 착찹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영화 의 한 장면처럼 창 상단에 'Jiyul was here'이라고 써놓고 갈 걸 그랬나. -2016년 12월 10일 더보기
기대하지 않는 삶 오랫동안 키워오던 선인장이 꽃도 한 번 못 피우고 시들었다. 치워 버리고 나니 창가가 왠지 허전하다. 찾아 간 인근 화원에는 내가 원하는 하얀 국화는 없고 흔하디흔한 노란 국화만 있다. 아쉬우나마 이것으로 창가의 허전함을 채웠다. 꽃을 산다는 것은 내게 있어 넥타이를 사는 것처럼 드문 일이다.드물게나마 꽃을 살 때마다 구입 후 인터넷으로 꽃말을 검색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국화의 꽃말을 검색해 보니 색깔별로 다양하다. 노란색 국화의 꽃말은 '실망'.간혹 내 삶에 실망할 때가 있다. 기대함에 따른 반작용이다. 모순어법이지만,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삶을 기대한다. -2016.10.07 더보기
3년 후 친구랑 술 마시다가 이런 얘기를 했다. "난 3년 뒤에 내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문득 들은 생각이다. 40년 넘게 살아보니 삶이라는 게 내가 의지하는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의지대로 되기는 커녕, 불가항력적인 그 무언가에 의해 늘 비틀리고 흔들린다. 는 제목의 책도 있지만, 내 생각에 어른이 되어도 흔들림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달리 생각하면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란 꼰대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아님 말고.) 3년 후의 삶의 모습이 궁금하다는 것은 현재의 삶이 미래완료적으로 고스란히 진행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의 표출이기도 하다.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능히 예상할 수 있는 삶이란 안정적인 것인 동시에 지루한 것이기도 할 테다. 변화를 긍정하면 숨통이 트이기도 한.. 더보기
언젠가는 뒈진다 포도 안주와 함께 하는 맥주 한 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언젠가 지인인 치과 의사 쌤이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예전에는 치과 의사랑 한의사는 돈을 갈코리로 쓸어 담았었는데요, 지금은 어림도 없어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쌤께서 말씀하시는 그 정도 조차 악사들에게는 어림도 없다'고.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의 실용음악학원들은 다 망했다.고작 4500원짜리 담배 한 갑 사는 것에도 무엄하게 박근혜 가카에 대한 증오심을 품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음악이고 기타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워 버릴까. 그럴 때면 항바이러스처럼 머릿속에 스미는 철학자 강신주의 말. "어차피 우리는 (언젠가) 다 뒈져요..."어차피 뒈질 거, 기타 안고 끝까지 간다. 경쟁도, .. 더보기
익지 않은 벼 지난 밤, 친구 D와의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 :삼삼오오 모여있는 옆 테이블에서 기타와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어떤 초로의 아저씨의 서툴기 그지없는 연주와 노래다. 감사의 뜻으로 꼬막 한 접시를 건냈더니 금방 막걸리 한 주전자가 답례로 돌아온다.우리에게 합석을 권하더니 나와 친구 D에게 직업을 묻는다. 그리고 합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아저씨는 말을 놓기 시작한다. 술기운에 그분의 똥기타를 끄적거렸더니, 이 아마추어 아저씨가 내게 한 수 가르친다. "두 번째 손가락은 그렇게 굴리는 게 아냐." 이 무상의 레슨에 감동 받는다.어떤 노래에 관한 얘기를 하는 도중에 친구 D가 그다지 좋아하는 노래는 아니라고 말하자 그 아저씨가 일행들에게 말한다. "쟤는 음악을 몰라. 저리 가라고 해." 경력 20년의 프로뮤.. 더보기
순수의 시대 비 오는 평화로운 오후.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너무나 좋아하는 이디스 워튼의 를 재독한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 :[이제 과거를 돌이켜 보니, 그는 자신이 지독한 쳇바퀴 속에 틀어박혀 살았다는 걸 알았다. 의무를 다한 일의 최악의 결과는 그 어떤 다른 일도 하기에 부적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었다.(...)옳은 것과 그른 것, 정직과 부정직, 젊잖은 것과 그 반대를 가르는 선이 너무나 명확해서 예측하지 못한 것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환경에 굴복해서 지내던 상상력이 어느 순간 일상적 수준 위로 솟아올라서 인생의 긴 굽잇길을 바라보는 순간들이 있다. 아처는 그곳에 높이 머물면서 생각했다. 그가 자라난 작은 세계, 그를 굴복시키고 구속한 그 세계의 기준들 가운데서 지금 무엇이 남았는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