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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메모

대필편지 근래 읽고 있는, 미야모토 테루의 . 서간체 형식의 이 소설을 읽다 보니 문득 실용적이고 빠르기는 하나 멋대가리(?)라고는 없는 E-메일 대신 자필 편지를 끄적이던 옛날 생각이 난다. 자필 편지의 시대에는 편지지를 고르는 것도 나름 수고로운 일이었다. 당연히 글씨는 공들여서 써야했고, 우체통에 넣은 이후로는 회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보내기 전 '행인임발우개봉'은 간과할 수 없는 절차이기도 했다. 그러고도 우체통에 넣어버린 이후에 머리털을 쥐어 뜯은 때가 한두 번이었나. 전자 메일의 장점은 무엇보다 기능에 있다. K대(군대) 시절, 이웃한 내무실의 한 동기 녀석은 간혹 내게 연애 편지 대필을 의뢰하기도 했다. 귀찮은 일이지만, 사람 좋은(?) 나는 고작 값싼 떡밥(매점에서 파는 닭발)에도 걸려들고 말았다... 더보기
프로이트적 존슨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어 맥주를 마시다가, 옛 생각에 꺼내 든 1983년의 일기장 뒷면에는 당시 내가 극장에서 본 영화들의 목록이 적혀 있었다. 명시한 영화들 중 3할이 공포영화다. (게중 '데드쉽'은 스펠링을 잘못 썼다.ㅋㅋㅋㅋ)그림까지 그려 놓았는데, 미사일, 칼, 지팡이, 총, 기타 등의 그림에서 연상되는 심리학적 상징은 역시나 프로이트적 존슨이다. 공포영화와 마초적 성애는 그래서 대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듯하다. 만약 기타를 안 쳤다면 Serial killer나 Raper 따위의 쓰레기가 되었을까. 헤르만 헤세의 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오른다."그런데 가장 기이한 일은 이 두 세계가 서로 인접해 있고, 아주 가까이에 공존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보기
평행우주 http://www.podbbang.com/ch/3709 이라는 팟캐스트 덕분에 알게 되어 4주 전 즈음에 구입한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를 이제서야 다 읽었다. 완독 후 다시금 을 청취하는데 김중혁 작가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런 한순간들이 있죠. 우리가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이블킥'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때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요즘 이세돌과의 대전으로 유명한)알파고의 알고리즘 같은 게 뭐냐면, 모든 경우의 수를 이 컴퓨터가 제어 못하기 때문에 선택해서 제어한다는 거죠. 그래서 둘 중에 하나의 경우를 선택해서 그 경우의 수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건데, 인간도 그런 .. 더보기
결혼은 미친 짓이다2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언젠가 어떤 한국 영화에서 본 다음의 대사가 생각난다."너, 와이프하고 밤 일은 잘 하고 있냐?" "식구하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하냐?"결혼의 목적이 오직 성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어쨌거나 공식적으로 '그런 짓'을 하기 위해 결혼을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그런 짓'과는 멀어지는 '식구'가 되는 현실은 확실히 사랑과 결혼에의 역설을 말해주는 듯하다. 로 유명한 작가 다나베 세이코는 에세이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나는 내 남편조차도 남자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 세상 남자 대부분이 "마누라가 여자냐?"라고 말하듯 나도 남편은 남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몇년이나 함께 살다 보면 이성이라기보다는 가족의 색이 짙어지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사랑의 궁극.. 더보기
포레스트 검프 케이블TV에서 방영해주는 추억의 영화 . 간만에 다시 보는 바보의 순애보.개봉했을 당시 이미 본 영화였음에도 이 영화를 보고싶다는 여친의 요청에 응하기 위해 부러 못 본 척 시치미를 떼며 한번 더 본 기억이 있다. 작금에 생각해 보니 자뻑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괜찮은 남친이 아니었나싶다. 더보기
비문증 어제 안과 진료를 받고 병원 밖을 나서는데...왼쪽 눈에 거머리나 실 같은 것이 마구 떠다니는 게 느껴지는 거다.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고 눈꺼풀 위로 이 검은 선들이 부유한다. 하얀 벽면을 바라보니 마치 우주의 촘촘한 별들과도 같은 미세한 점들도 보인다.궁금하여 검색을 해보니 비문증이란다. 백내장 수술 받은 지 한 달이 지나 광명을 찾나 했더니 이게 왠......뭐, 수정체가 뿌옇게 혼탁해지는 백내장에 비하면 충분히 참을 만하지만.치료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망막에 특별한 이상 징후가 없는 한 그냥 신체의 일부처럼 몸에 달고 살라는 얘기다. 젊었던 시절에는 없었으나 작금에는 눈을 감아도 마음속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이런저런 시름이나 서글픔들을 그저 내 마음의 일부로(좋게 말해) 포용하고 .. 더보기
결혼은 미친 짓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GGXrsOjCKM 부모님이 내게 잔소리처럼 자주 하신 말씀은 "빨리 애를 낳아라"라는 거였다. 당시 대체 왜 독촉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부모님께서 딱히 빨리 손주를 보고 싶어해서 그런 것이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았다. 부모님의 그 말씀에서 내가 간파한 것은 부모님들의 '불안'이었다. 부모님들에게 있어서 '애'라는 것은 이미 이혼의 경험이 있는 내게 재이혼의 참사(부모님의 관점에서 보건대 '참사'라는 거다)를 방지하는 수단으로, 다시 말해 세월의 경과에 따라 결국 그 결합이 헐거워질 수밖에 없는 부부의 결속을 헐거워진 상태로나마 강제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판단하신 거였다. 철학자 강신주는 강연.. 더보기
성실한 삶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 있는 의자에 멍때리며 앉아 있는데 대문 바깥으로 쓰레기 봉투를 실어 나르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의 부산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부를 성공의 척도로 삼는 이에게는 한심한 삶이겠지만, 오랫동안 늦은 아침까지 자빠져 잤던 내게는 부끄러움을 일깨우는 성실한 삶으로 다가온다. 간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 근래 만든 곡을 연습하고 퇴고(?)해 본다. 적어도 오늘 아침은 덜 부끄럽다. 그래도 약간의 자괴감은 남아 있다. 내 일에 대한 성실함과 '생활'에 대한 성실함은 일치하지 않고 대개 겉돌고 만다.문득 군대 훈련병 시절에 평소 나를 고깝게 보았던 어느 동기생이 내게 빈정거리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너는 기타 치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대체 뭐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그의 안면에 작렬.. 더보기
복고풍 출판계 일각에서는 복고풍이 부는 모양이다. 어느 출판사는 루이스 캐럴의 와 미야자키 겐지의 ,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등의 고전을 초판 출판 당시(1865년과1930년 전후)의 표지 디자인 그대로 재출간했다. 재미있는 건 한국에서는 80년대 중반 즈음에 사라진 '세로글씨'를 부활시켰다는 거다. 상술의 일환이겠지만, 나름 참신하다.윤동주 시인의, 가 수록되어 있는 시집 도 그 옛날의 커버디자인으로 재출간되었다. 지르려다가 통장잔고의 압박으로 참는다. 더보기
재행무상 지난 주, 후배 C군이 술을 기울이는 동안 몇 주 전에 레테의 강을 건너간 한 친구를 회상하더니 나를 보며 넌지시 한마디를 던졌다. "형, 건강하시고 오래 사세요...." 아직 지천명의 나이에도 이르지 못한 내게 이 무슨 부적절한 언사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은 그 말 속에 포함된 어떤 심경이 그대로 전해진 탓이었을 거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공교롭게도 근래 (할 일이 없어 '노느니 염불이라도 한다'는 심경으로) 읽은 몇 권의 소설들(스톤 다이어리, 에브리맨, 상실의 시간들)은 모두 하나같이 노화와 죽음을 소재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죽기 전까지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고, 죽음이 닥쳐오는 순간에는 이미 죽어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사람은 결코 죽음과 대면할 일이 없고, 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