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언젠가 어떤 한국 영화에서 본 다음의 대사가 생각난다.
"너, 와이프하고 밤 일은 잘 하고 있냐?"
"식구하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하냐?"
결혼의 목적이 오직 성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어쨌거나 공식적으로 '그런 짓'을 하기 위해 결혼을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그런 짓'과는 멀어지는 '식구'가 되는 현실은 확실히 사랑과 결혼에의 역설을 말해주는 듯하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로 유명한 작가 다나베 세이코는 에세이 <여자는 허벅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 남편조차도 남자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 세상 남자 대부분이 "마누라가 여자냐?"라고 말하듯 나도 남편은 남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몇년이나 함께 살다 보면 이성이라기보다는 가족의 색이 짙어지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사랑의 궁극적 결실이자 가족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인 결혼은 확실히 '연애의 무덤'이라 여겨진다. 홍콩 영화 <유리의 성>에서 여명과 서기가 첫 연애 이후에 그대로 결혼에 골인했다면?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은 '패덕의 냄새가 풍기는 두근거림'과 더불어 사랑을 '행복한 슬픔'이라 절절히 느낀다. 손에 닿지 않는 것을 욕망하는 인간의 모든 치정극은 슬프다.
작가 서머싯 모옴의 단편 <레드>에 "정신이 성숙해지면 인간은 에덴동산을 잃는다"는 말이 나온다. 성숙함을 통해 이 모든 허망함을 직시하고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놓는 인간을 '현자'라고 하겠지만, 현자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나는 한 친구의 푸념에 대해서는 이렇게밖에는 대답해 줄 수 없을 듯하다.
"아....이젠 결혼해서 정착해야 하는데...."
"뭐하러? 밥숟갈 놓을 때까지 그냥 연애나 하다가 가버려."
쿨한 척 하기도 이제는 힘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