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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메모

영물, 혹은 요물

 

간만에 울집 고양이가 어디선가 큰 새를 물고 왔다.
입에 물린 새를 바라보는데...주둥이를 뻐끔거리며 아직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이미 죽어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고양이의 입에서 새를 꺼내어 손에 들어보니...아, 배 주변에 번진 붉은 피로 보아 이미 치명상이다....
양지 바른 곳에 뉘어놓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조류를 너무나 좋아하는 인간이었다면, 고양이라는 족속은 철천지원수이자 마귀처럼 여겨지지 않았을까?

구약성경의 이사야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메시아가 오시는 날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이 얘기를 은유로 듣건, 문자 그대로 읽건, 혹은 구라로 일축하건 그것은 개인적인 신앙의 문제이므로 통과. 어쨌거나 이사야 선지자의 눈에는 이 약육강식의 세계가 참혹하고 비정해 보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포식자 고양이 눈에는 아마도 내가 비정해 보였나보다. 애써 잡아온 새를 버린 것에 삐졌는지 평상시 같으면 내 앞에서 야옹거리며 귀찮게 하더니 오늘은 자기 집(방석을 깔아놓은 종이박스)에 쳐박혀 코빼기도 안 비친다.
영물은 영물이다.
아님 요물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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