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 메모

오역



철학책이야 뭐, 쉬운 말도 어렵게 만드는 신통방통한 재주가 있는 철학자들이 쓴 것이니 그렇다고 치고, 그다지 난해할 이유가 없는 어떤 외국 소설의 문장들이 잘 이해가 안된다면(다시 말해 가독성이 떨어진다면) 그건 일단 번역을 의심해 봐야 할 테다.


"왜냐하면 나는 한 남자 곁에서 사는 것에 신물이 나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한 남자와 사는 것이야."


대체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뭐, 문맥으로 대충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만, 문제는 문맥으로도 이해 못할 숱한 막걸리 같은 문장들이다. 예컨대, "처음에 잡아탄 자동차들은 우발적인 오토 스톱이나, 조직적인 오토 스톱으로 탔는데, 적어도 그 중 하나는 그를 죽게 할 뻔했다" 같은 문장들 말이다. 오역이 아니라면 적어도 '역자 주'를 통한 설명이 요구될 터이다.


연주로 비교하자면, 인쇄상의 오/탈자는 단순 미스톤에 불과하지만, 오역은 작곡자가 명시한 음을 연주자가 다른 음으로 소리 내는 것과 같다. '헛소리'라는 말이다.
역자 주가 요구됨에도 그것을 방기하는 번역자는 악상기호를 쌩까는 졸라 게을러터진 연주자와 같다.


'단상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씨체  (0) 2016.05.12
인문학이 곧 경쟁력이다?  (0) 2016.05.12
바운더리  (0) 2016.05.12
고구마  (0) 2016.05.12
개만도 못한  (0) 2016.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