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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메모

글씨체



구매한 중고 소설책 <이별(단 프랑크 저)>의 속지에 쓰여있는 예쁜 글씨. 1994년이라...아련한 세월이다.
지난날을 반추하건대, 1994년의 내게는 이런 저주가 걸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어떤 어려움도 사랑으로 비롯되길."


어렸을 때부터 글씨가 예쁜 여자는 얼굴도 예쁠 거라고 상상(혹은 착각)하곤 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이 글씨를 보자마자 역시나 그런 생각을 반사적으로 하게 된다. 세월을 관통하는 편견의 관성이 놀랍다.

문득 인생 처음으로 만났던 첫사랑의 그녀가 생각난다. 그녀의 글씨체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다행히도 얼굴은 그것에 비례하지 않았다). 비교하자면, 내 글씨가 여자의 글씨체로 보일 정도랄까. 
글씨가 개발새발이라고 그녀에게 쓴소리를 했는지 안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일 했다면 진짜 개자식인 거다. 
그런데 왠지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아예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니, 한 것 같다. 십중팔구 했을 거다.


얼마나 자존심에 금이 갔을까...


25년도 더 지나서야 당시에 그 흔한 연애편지를 단 한 장도 받지 못했던 건지 비로소 깨달았다. 참 이른 깨우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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