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면 좋은 게 있다. 그건 결혼을 '왜' 안 했냐는 기괴한 물음에 답해야 하는 귀찮음을 해소해 버렸다는 거다.
"결혼 했나요?".
"안 했습니다."
"그렇군요."
이렇게 대화가 끝나는 게 정상인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결혼 했나요?"
"안 했습니다."
"어? 왜요?"
이건 마치 이런 대화와 유사하다.
"대학은 졸업하셨나요?"
"아니오."
"어? 왜요?"
"트랜스젠더인가요?"
"네."
"어? 왜요?"
몰라, ㅆㅂ. 별들에게 물어봐~
물론 '왜'라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문제는 이 '왜'에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바를 안했다는 은근한 힐난이 함의되어 있다는 거다.
지나가는 옆집 할머니가 우리집 마당에 나와 있는 개들을 바라보며 물으신다. "개 말고 애를 낳아 키워야지. 왜 애를 안 낳아?" 오지랖 쩐다.
자식이 없이 결혼 16년차에 들어서는 지인이 한 분 있다. 그에게 과거에 "애 안 낳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만일 "애를 왜 안 낳아요?"라고 말했다면 큰 실례가 되었을 거다(이런 실례를 나 역시 한 번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의 '무자식 상팔자' 신세는 선택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 주먹을 꼭 쥐고 괄약근에 힘을 빡 주면 없는 정충이 갑자기 넘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한때 마스터베이'선'을 자주 타면 씨가 줄어 애를 못 낳는다는(애를 낳는 주체는 여성이므로 이 말은 사실 '애를 잉태시키지 못한다는'으로 바꿔야 한다) 개솔도 있었지만, 그게 사실일지라도 궁할 때마다 법구경이나 복음서를 읽으며 인내한 경우라면 자기 책임은 없다.
그러니 그렇게 궁금하다면 '왜'냐고 묻기보다는 '안 낳는 이유라도?'라고 묻는 게 그나마 범속하게 안 보이는 길이다.
왜 대학에 안 가? 왜 애를 학원에 안 보내? 왜 교회 안 다녀? 왜 장가 안 가? 왜 회사 같은 데 취직 안 해? 왜…?
무수한 '왜'들 속에서 설핏 엿보이는 획일성에의 강요. '왜'가 범람하는 사회는 피곤하다.
(그 피곤함은 세상이 요구하는 당위에 대해 나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반영한다. 그러니 왜냐고 묻거든 당당하게 무시하면 될 일인데,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그게 꽤나 지난한 일이라는 게 문제다. 예컨대 일종의 보균자 취급을 받는 동성애자들…)
물론 모든 '왜'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작가는 왜 글을 쓰는가?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왜 도덕인가?
이런 '왜'에 무슨 문제가 있겠나. 나는 '왜' 현아보다 수지가 더 예뻐 보이는 걸까? 아무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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