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소년소녀잡지의 대명사라 할 <어깨동무>라는 월간지가 있었더랬다. 문세광의 흉탄에 사망한, 현 가카의 어머니가 만든 재단의 후원 하에 출간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거나 그 월간지는 비과학적인 사건 사고와 풍문을 많이 소개해 주었더랬다. 그중 납득하기 힘든 것이 '자기발화(외부 원인 없이 스스로 불타 죽는 것)'와 '미지의 블랙홀에 빨려들어가 갑자기 증발해 버린 사람들'에 관한 얘기였다. 이후 내가 가진 물건들이 외부 유출이 없는데도 도무지 발견이 되지 않을 때면 이 미지의 블래홀을 상상하곤 했다.
악보집 <알베니스 & 그라나도스>도 그것들 중 하나다. 다행히 요놈은 사차원 공간을 수년간 떠돌다가 어제 밤에 무사히 집으로 귀환했다. 블랙홀아, 고마워~
(불필요한 가정을 배제하라는 '오컴의 면도날'은 <어깨동무>가 주입한 미신보다는 강하지 않다.)
타임캡슐을 개봉하듯 천천히 겉장을 넘겨보니 자필 싸인과 함께 다음과 같은 것들이 쓰여있다.
1994. 3. 증 바로크
1994년! 응답하라, 1994…
'증 바로크'라는 말은 바로크 동아리에 이 악보집을 기증했다는 건데, 졸업할 때 생각이 바뀌어서 그냥 집에 들고 온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완전 '치사빤쓰'다. 낙장불입이라 했거늘……이렇게 말하고 나니 개콘<쉰 밀회>의 유아인이 된 느낌이다).
그리고…그 아래 의문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사생활 보호를 위해 블러 처리했음).
대체 누구의 전번일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1994년 3월에 내가 만났던 이를 떠올려 보았다. 기억이 없다. 누굴까?
그러다가 문득 유독 전번만 잉크의 색이 다르다는 것을 간파한다. '1994.3.'과 '증 바로크'는 파란색 펜으로 쓰여졌음에 반해 전번만은 보라색 펜으로 쓰여진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들은 시차를 두고 쓰여졌다는 것. 그렇다면 그 누군가와의 만남을 구태여 1994년 3월로 한정할 이유가 없다!
지역번호를 검색하니 인천이다. 그런데 당시 인천에 적을 둔 지인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 인천 주변의 도시는……하나하나 생각하다가 소년탐정 김전일처럼 외친다. "수수께끼가 모두 풀렸어!"
그리고는 추억이 방울방울……했으면 오죽 좋았겠냐만은, '추억이 방울방울'하는 대신 추악이 멍울멍울진다.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찌질의 역사가 있기 마련이다, 라고 애써 자위하고는 성급히 타임캡슐을 닫아 매장해 버린다(책을 덮고 책장 아무데나 쑤셔 넣는다). 이것은 타임캡슐이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였다!
아! 여복(女福)보다는 여난(女難)이 많았던 시절, Goodbye to romance.
문득 '내 머리속의 지우개'라는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치매는 원하지 않지만, 가끔은 진짜 그런 지우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는 머릿속에 '영숙이(가명)와의 관계에 대한 폴더', 혹은 '1993년 모교 인근 저잣거리에서의 추태에 관한 폴더'가 따로 저장되어 있어서 그것들을 클릭하여 쓰레기통에 넣은 후 영구삭제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나의 기억은 하나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1993년 모교 인근 저잣거리에서의 추태'에 이어 프랑크소시지처럼 멍울멍울 딸려오는 찌질의 역사. 그놈의 술…….
영화 <친구>에서 "니 와 그랬노?"하는 상택의 질문에 준석이가 그러지 않았던가. "건달은 쪽팔리믄 안 된다 아이가." 준석아. 건달이 아니어도 그렇단다. 그래서 때로는 바지에 오줌을 싸는 '개쪽'을 면하기 위해 노상방뇨라는 불법행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거란다.
창피할 일은 물론 나쁜 짓까지 쓱싹 해치운 후, 머잖아 자책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휴지통에 넣은 후 '휴지통 비우기'를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 정치가들처럼 청문회에서 "기억이 안 납니다"고 말해도 그게 사실이니까.
인간은 본시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문제는 자기 스스로가 자신에게 관심이 지나치게 많은 나머지, 남들도 그 일을 자기만큼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착각이다. 이 착각이 지속해서 자신을 괴롭히는 원인이 된다. 이렇게 작별을 고할 수 있다면 어쩌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조금은 강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렸네……"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기억들아.
알랭 드 보통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기억은 힘이 세다. 희한하게도 찌질의 기억은 단기기억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대개 장기기억으로 보존된다는 거다( 개인마다 다를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 역시 '我(나)'에의 집착 때문일까?). 정체성에의 일관성이나 반성을 위해 신은 우리에게 장기기억이라는 능력을 주셨을 거다. 가끔은 순박하게도 이런 생각도 한다. 나쁜 짓은 그렇다고 치자. 다만 찌질한 기억만큼은 장기기억에 들지 않게 해주시면 좀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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