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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성공'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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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에 대해 딴지 좀 걸겠다.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규정할까? 부의 축적에 상관 없이 자기만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을 의미할까? 열에 아홉은 단지 '돈을 많이 번 사람'이라고 규정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예컨대 "천상병 시인은 성공한 사람이지."하고 말했을 때, 숙고하는 습관이 든 사람들이라면 잠시 생각한 후에 "그래, 그 분은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지."라고 대답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즉각적으로' 이건희나 워렌 버핏이 아닌 가난한 천상병 시인 같은 사람을 생각할까? 솔직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이라 쓰고 '부자'라고 읽는데 일말의 거부감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왜 사람은 꼭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을 해야 하는가? 가난에 찌들어 라면만 먹고 비가 철철 새는 쪽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을 '자발적 가난'이라고 미화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인간이 꼭 '성공'해야 한다는 정신적 폭력에도 공감할 수 없다. '성공'하지 않았어도 행복했던 시간이나 시절은 분명 있었거늘.

20대 중후반에 접한 다음과 같은 에리히 프롬의 문장은 배금(拜金)의 때를 어느 정도 벗겨내는데 기여했다고 '자뻑'한다.

뭐, 아님 말고.


수량으로 인생을 사는 행위를 측정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돈뿐만이 아니라 "그만한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느냐"라고 묻는 경향에서도 나타난다.(중략) .....그래서 현대인의 마음속에 새로운 질문이 제기되었다. 즉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하는 것으로 이에 준해서 어떤 사람의 인생은 '실패'라느니 또는 '성공'이라느니 하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이같은 생각은 인생은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경우 인생의 실패는 기업의 파산과도 같아서 손실이 이익보다 클 때 나타난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인간은 행복할 때도 있고 불행할 때도 있으며 어떤 목적은 달성되고 어떤 목적은 달성되지 못할 때도 있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여주는 손익계산서는 있을 수 없다. 아마 이러한 계산서를 가지고 인생을 셈하다 보면 인생이란 결국 살 만한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죽음으로 끝나기 마련이며 그 많던 우리의 꿈은 모두 깨지고 때로는 고통, 때로는 피나는 노력으로 점철된 것이 인생일 터인데 이것을 손익계산의 관점에서 셈하다보면 이 세상에 아예 태어나지도 말았거나 아니면 젖먹이 때 죽어 없어지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인생 살이에 고통과 피눈물 나는 노력이 반드시 따라다닌다 해서 사랑하는 순간의 행복, 그리고 맑게 개인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걷는 산보의 쾌적함,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는 즐거움 같은 것이 어찌 가치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한평생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선사품이며 뜻있는 도전이다. 그것은 따라서 다른 어떤 무엇으로도 측정될 수 없는 고유한 것이다. 인생이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는 식의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뜻있는 대답이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을 하나의 장삿속으로 파악하는 이같은 풀이가 현대의 전형적인 현상의 바탕을 이루는 것 같다.

                                   -에리히 프롬 著 <건전한 사회> 中에서

 

그러니 "성공하는 독서습관"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말하지 말고 그냥 날것 그대로 "떼돈 버는 독서 습관 5가지"라고 하자.


 

                                                Erich Fromm(1900~1980)

 

 

사족 :
누군가 "돈 버는 게 무슨 범죄 행위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내 말을 오해한 것이다. 편식을 하는 어떤 아이가 오로지 소시지 반찬만 먹는다고 해서 소시지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물론 과식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성공'을 축재로만 규정하는 건 일종의 정신적인 편식이다.

 

한 행동의 가치는 어떤 보편적인 잣대에 의해 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동이란 능력이나 지식, 욕망의 복합체로서, 그것이 구성되는 방식과 양상에 따라 가치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어떤 효용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얼마나 많은 화폐를 획득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만 가치를 정한다. 

           -고병권 著,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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