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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우리를 형성한 법칙

 

고양이 놈...아니 고양이 년이 오늘도 또 새를 잡아왔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다음의 질문을 접한 적이 있다.
"구명 보트에 한 사람과 한 마리의 리트리버가 있다. 그런데 이 보트는 일인용이다. 둘 중 누가 보트에서 내려야 하는가?"
물론 리트리버다. 하지만 질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사람에 두 마리의 리트리버라면?
이 질문의 요지는 이렇다. 한 명의 인간 생명은 대체 몇 마리의 동물 생명과 등가교환이 가능한가?
쉽게 말해 한 명의 인간을 구하기 위해 백 마리, 아니 천 마리의 리트리버를 죽이는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하냐는 얘기다.
'존 윅'이라면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개 한마리의 목숨값이 양아치 여러 명의 목숨값에 갈음하겠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이런 질문에 답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가엾은 참새를 보며 생각한다.
내가 저 고양이를 거둔 대가로 대체 몇마리의 새가 앞으로 계속 죽어야만 하는가? 차라리 저 놈을 없애버리는 게 공리적 차원에서 유익이 아닐까?
물론 바보 같은 생각이다. 얼룩말의 생존을 위해 악어를 몰살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이라는 핵심적인 법칙이 지배하는 자연의 세계에서, 답도 없는 윤리철학으로 머리를 싸매는 인간이란 종은 얼마나 변태적인가.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빌어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만든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란다. 사랑은 잘못된 설계 원칙의 산물인 혈통이 나쁜 생명체도 인정하는 것이야."

 

그래서 나는 악어를 인정하듯이 혈통이 나쁜 고양이도 인정하기로 했다.

 

"....우리가 우리에게 혹은 무엇에게 베푸는 모든 친절한 행동들은 우리를 형성한 법칙의 정신에 도전하는 것이야. 악보다 선을 더 중시한다면 우리를 형성한 법칙에 도전하는 것이지.(...) 법칙을 거부하는 것은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오직 거부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단다."

 

그래서 나는 자연법칙에 거부하여 한 짐승의 집사가 되었다.

끝으로, 동의하거나 말거나 마크 롤랜즈는 결정적인 말 한마디를 던진다.

 

"정말로 우리를 만든 신이 있다면 모든 사랑은 그 신에 대한 전쟁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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