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합리적인(이성적인) 존재인가?'하는 물음은 내겐 너무 버겁다. 대신 대폭 축소하여 이렇게 물을 수는 있다.
'나는 합리적인 인간인가?'
무료하던 차에 간만에 음악 사이트인 <뮬>에 접속했다. 문득 궁금하여 중고 뮤직맨 액시스 기타가 나온 게 있나 찾아봤더니....있다. 그것도 빨간색의 그것이!
그때였다. 지름신이 오랜만에 왕림을 하신 것은.
지름신께서 말씀하셨다.
'질러라.'
내가 대답하였다.
'아니되옵니다. 이것을 지르기에는 통장잔고가 비어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그러면 네 펜더 기타를 팔아서 충당하면 되지 않느냐?'
'그러면 되기는 합니다만...제게는 이미 뮤직맨 액시스 기타가 있습니다.'
지름신께서 한숨을 내쉬더니 말씀하셨다.
'네가 가진 그것은 초록색이지 않느냐? 시인 이상이 한없이 권태롭다던 그 색깔 말이다. 네가 갖고 싶은 것은 정녕 붉은색이 아니더냐?'
'그렇긴 하지만 같은 기타를 두 대 씩이나 가질 이유가 있을까요? 소리는 똑같은데 말입니다. 색상 같은 본질적이지 않은 이유로 펜더를 처분하기에는 좀....'
지름신께서 비웃듯 말씀하시었다.
'본질이라고 했느냐? 그렇다면 그것은 연애나 썸의 문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둘 사이에서의 영혼의 공명만 감지하면 될 것을, 어찌하여 껍데기에 불과한 생김새에 집착하는 것이냐?'
나는 그 대목에서 깨갱~하고 말았다.
음과 색의 아트 월드에서 뮤지션이라면 당연히 음을 중시한다. 같은 소리를 내는 기타를 두 대나 갖기 위해서 색다른 소리를 내는 기타를 처분하는 것은 미술 관련 종사자에게나 합리적인 행위지 뮤지션이라면 이런 바보 같은 선택은 하지 않는다. 기타 회사에서 광고를 위해 악기를 계속해서 제공해 주는 월드스타급 연주자가 아닌 한.
그럼에도 나는 아직까지 색에 대한 집착과 탐심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의 질문에 답을 할 시간이다.
나는 합리적인 인간인가?
아니.
색을 졸라 밝히는 호색남일 뿐이다.
"인간의 이성은 정념의 노예다.(...)이성만으로는 의지적 행동에 대한 동기를 유발시킬 수 없다."
ㅡD. H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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