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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좋은 사람 컴플렉스

                                                     나를 물어 버린 개자....아니, 고양이자식...



최근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라는 책을 낸 진중권 교수는 고양이의 매력으로 솔직함과 도도함을 든다. 두 달 전에 내가 어느 고양이에게 손가락을 물린 이유는 안기기 싫다는 놈을 억지로 품에 안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양이는 안기기 싫을 때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안기고 싶을 때는 저 스스로 와서 안긴다. 한마디로 지 꼴리는대로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처럼 고양이를 의인화해 보자. 내가 고양이를 억지로 안는다. 그러자 고양이는 금새 발버둥을 치며 내 품을 벗어나려 한다. "내가 너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이유는 네 품에서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나기 때문이야." 고양이는 절대로 진심을 은폐하는 이런 '이유'를 대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의 진심은 이렇다. "나는 지금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싶으므로 네 품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좋은 사람 컴플렉스'라는 게 있단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강박적인 충동일 텐데, 그게 뭐 문제일까 싶냐만은 기실 '좋은 사람 컴플렉스'는 부정적인 측면이 크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보다는 '타인의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더 의식하므로. 
'나'는 항상 정의의 사도로 남아야 하므로, 타인과 마찰이 있을 때 경우에 따라서는 나의 본심을 은폐하고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배척할 이유를 애써 찾는다. 이런 이유를 찾다 보면 나중에는 그 이유를 진짜 근거라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는 제 3자에게 경위를 설명할 때 '이런저런 이유로 그(그녀)를 내쳤다'고 자기합리화의 쉴드를 치며 정의의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제 3자들에게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유지시킨다. 솔직함의 부재다.


예컨대 이들은 아마도 그(그녀)와 헤어지려는 이유에 대해 잘 때 이빨을 간다거나, 다툴 때 다소 언성이 높아지거나, 혹은 깔끔하지 못한다거나...하는 등의 이유를 열심히 찾으면서 본심을 은폐할 테다. 본심은 새로운 남자(여자)가 자꾸 눈에 밟혀서겠지만, 본말전도에 익숙해진 마음은 중증일 경우 자신도 속인다. '네가 잘못하지 않았다면 그(그녀)에게 마음이 가는 일은 없었을 거야'라고 하면서. 팩트는 물론 이럴 것이다. '그(그녀)에게 자꾸 마음이 가기 때문에 너를 저버릴 근거가 필요해'. 이처럼 인간은 책임전가적 자기방어에 익숙한 존재다.
누구를 비난할 것인가. 이런 얘기를 해봤자 자신에게 향하는 부메랑이고 누워서 침 뱉기인 것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나쓰메 소세키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쓴 이유에 대해서 설핏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부 발췌하면,


"......앉으나 서나 '나', 자나 깨나 '나'가 항상 따라다니기 때문에 인간의 언행이나 행위가 공산품처럼 자질구레해지고, 저절로 옹색해지고, 세상이 괴로워질 뿐이어서....(중략)...요즘 사람들은 사시사철 나 자신이라는 자의식으로 충만해 있는 꼴이지. 그러므로 한시도 편할 때가 없는 거야. 늘 펄펄 끓는 생지옥인 거지. 세상에 아무리 약이 많다고 해도 나 자신을 잊는 약보다 좋은 약은 없는 거야."


문득 떠오르는, <가시나무>의 가사.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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