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이 퍼질 때마다 해당 축산농가에서는 이런 얘기를 하곤 한다.
"자식 같이 키웠는데...."
"자식을 파묻는 심정....."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제발 이런 말은 삼갔으면 좋겠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좁은 데다 가두고, 때가 되면 고기로 팔아 넘긴다는 말인가. 무능한 정부의 방역체계 이전에, 경제 논리로 열악한 사육 환경을 조장한 것에 대한 책임이 없지 아니하다.
그러니 그냥 이렇게 솔직하게 토로하는 편이 낫다.
"어떻게 불린 내 재산인데....."
"...그리고 암퇘지들은 최상의 조건하에서 살지도 못한다. 그들은 임신과 출산을 위해 좁은 곳에 감금되어 있다. 임신 기간중 돼지들은 흔히 2피트 폭과 6피트 길이의, 또는 자신보다 조금 큰 금속 외양간에 개별적으로 감금된다. 그들은 목에 사슬을 매고 있거나 사슬로 묶인 채 외양간에 감금되어 있다. 돼지들은 그곳에서 2~3개월을 살게 된다. 그 기간 동안 그들은 앞뒤로 한 걸음 이상을 걸어보거나 뒤로 돌아볼 수도 없으며, 그 외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운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피터 싱어
몇 년 전, 유기견들의 (보통 '안락사'라고 포장되는) 살처분 과정을 목도하기 위해 시 보호소를 갔다가, 마음만 상할 것 같아 그냥 견사 바깥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다. 축제중이었던 인근 호수에서 쏘아 올린 불꽃놀이의 아름다움이 살처분 현장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기묘하게 느껴졌었다.
'안락사' 과정은 대충 이렇다. 먼저 마취제를 투여하여 의식을 잃게 만든 후에 심장을 정지시키는 약물을 투여한다. 마취제 투여가 선행되는 이유는 물론 심장에 가해지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나름 '인간적인' 조치라 여겨지기는 하는데, 무고한 개들을 '처분'의 곤란함을 이유로 죽이는 것에 '인간적'이라는 말을 붙이자니 씁쓸하긴 하다.
악덕 보호소장과 수의사들 중에서는 '안락사' 이전에 투여하는 마취제를 생략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비용의 절감을 위해서다. 마취제 한 병이 도매가로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략 3만원 안팎이라고 했을 때, 개에게 가해지는 고통과 돈 3...만 원을 교환할 의사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개에 비하면 비교적 인간의 사적 친근함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소나 돼지들에게 경제동물인 인간이 주는 죽음의 형식은 생매장에 의한 살처분밖에 없다. '안락사'를 선택했을 때 마리 당 들어가는 돈 몇 만 원이 개체 하나 하나가 겪을 고통의 경감보다 소중하다는 뜻이다.
교과서 안에 있는 세상은 타 존재에 대한 고통에의 공감을 가르치지만, 돈이 종종 인간 위에 있는 리얼한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타 존재의 고통보다 돈을 먼저 챙기라고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하기는, 저들의 관점에서 '개,돼지'가 탑승한 배의 좌초를 목전에 두고도 주판알을 굴리는 세상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문득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가 자조적으로 내뱉은 대사가 떠오른다.
"참 아름답다, 아름다워...."
-2017.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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