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연습 못(안)한지 어언 20일째. 삼성의 이재용은 대주주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지 못할 때 자긍심(혹은 자존감)에 손상이 갈 테지만, 나 같은 악사는 연습 미달로 손가락 마디가 뻣뻣해질 때 그렇다.
칠판에 적힌 수학 문제를 못 풀었을 때 선생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것도 못 푸는데 네가 학생이야?" 자아가 분열되더니 또 하나의 내가 그때의 선생처럼 꾸짖는다. "이런 곡도 못 치는데 네가 악사야?" 학생인 자아가 대꾸한다. "심란함에 연습을 못해서 그래요."
어느 것이 진짜 자아, 즉 '참 나'일까? 이도 저도 아니고, 단지 음악에 대한 그리움과 욕망이 있지만 잠시 마음이 혼탁해져 그러는 것 뿐이며, 온전히 자리를 잡게 되면 원래의 네 상태로 돌아갈 거라고 조용히 알려주는 자아가 '참 나'라고 혜민스님께서 그러던데.
예전에 K 모 씨랑 술을 마시다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딱히 가진 것도 많지 않은데다가, 약간의 조울증까지 있는 걸로 보아 내가 그다지 행복하다고만은 생각되지 않아....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신이 내게 '이재용의 영혼과 뒤바꿔 줄까?'라고 한다면, 단연코 그건 거부할 거야."
그러자 K 모 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이 이재용보다는 훨씬 행복한 사람이거든?"
이후로 나는 K 모 씨를 사랑하게 되어 그가 취기에 "여봐라~풍악을 울려라~"라고 하면 특별히 컨디션이 저조하지 않는 한, "예이~전하~"하며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다만 약간의 의구심은 든다. 내가 궁정 악사로 전락(?)하게 된 이유가 과연 그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날의 술값을 그가 냈기 때문일까?
20년 전. 한 자취방에서 현왕이신 K 모 폐하께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내게 고하셨다.
"그대가 만약 무인도에 있다면, 그래도 그렇게 연습을 열심히 할까?"
"그러하옵니다, 전하."
"어디서 감히 거짓을 고하느냐? 들어주는 이가 없는데 네놈이 과연 그렇게 연습을 하겠느냐?"
그러고 보니 음악 주체의 3요소는 '작곡가, 연주가, 청중'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음
악이라는 한 우물을 팔 것 같지는 않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그는 범인 이상이다.
주변에 "풍악을 울려라~"라고 요구할 사람이 있다는 것, 무엇보다 내 삶의 가치를 인정해 주(기 이전에 술값을 나 대신 내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나를 북돋워 주는 '참 나'가 있다는 것만큼 종요로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나친 인정욕구가 아닌 한에는.
술이 고프옵니다, 전하.
-2017.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