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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크눌프

 

 

동가식서가숙 홈리스 46일째.


오늘은 천안에 있는 K 모 군의 오피스텔. 여기가 마지막 임시 주거지다. 2월 1일에 드디어 내 주거지로 돌아간다.

그동안 나를 재워준 이들의 수를 세어 보니 무려 일곱 명이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막강한 인맥, 혹은 빈대의 뻔뻔함에 경배를.

 

절친인 P 모 군은 고딩 시절에 헤세의 <크눌프, 삶으로부터의 세 이야기>를 읽고 내게 강추를 한 적이 있다. 덕분에 나도 이 소설을 세 번이나 읽었다.
뭐, 헤세의 많은 소설이 그렇듯이 이것 역시 방랑자가 주인공이다. P 모 군이 이 소설에 크게 감화를 받았던 것은 아마도 정주하지 않는 노마드적 삶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을 테다.

많은 세월이 지나간 작금에 이르러 그에게 조용히 얘기해주고 싶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야....

 

홈리스 인간의 가슴에는 서늘한 바람이 항시 불고 있다.

 

그 서늘한 바람에 폐병에 걸린 크눌프는 설원 한가운데서 쓰러지고, 신의 음성을 듣는다.
"이제 족하였느냐?"

신의 물음에 이제 족하였노라고 대답하며 크눌프는 평화롭게 눈을 감는다.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이다.

신이 나타나 내게 묻는다.
"이제 족하였느냐?"
나는 대답한다.
"족같습니다...."

 

 

 

방랑길에서ㅡ크눌프를 생각하며

 

 

슬퍼하지 마라. 곧 밤이 오고,
밤이 오면 우리는 창백한 들판 위에
차가운 달이 남몰래 웃는 것을 바라보며
서로의 손을 잡고 쉬게 되겠지.

슬퍼하지 마라. 곧 때가 오고,
때가 오면 쉴 테니. 우리의 작은 십자가 두 개
환한 길가에 서 있을지니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오고 가겠지.

 

ㅡ헤르만 헤세

 

-2017.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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