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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리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저자
박민규 지음
출판사
예담 | 2009-07-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외모 이데올로기에 대한 야심찬 반격!우리는 모두 죽은 ‘왕녀’ ...
가격비교

 

 

박민규라는 작가를, 이름만이나마 알게 된 건 2008년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수상작 : <사랑의 믿다> 작가 : 권여선)을 통해서였다. 한정된 시간 때문에 달랑 수상작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작가들 중 한명이었던 박민규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순전히 그의 특이한 외모 탓이었다. 아무래도 선글래스와 콧털과 수염은 작가보다는 롹커의 전유물 아닌가.

제 8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삼미슈퍼스타의 마지막 팬클럽>의 표지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라. 선글라스에 수염은 물론이고 마치 70년대의 롹커처럼 엄청난 장발이다. 삐죽삐죽한 전기기타를 매고 있으면 딱일, 그런 모습이다...



                                                        포스 작렬, 이게 작가야, 롹커야?

 

 

다시 그의 작품을 만난 건 E-마트의 도서 코너에서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작가의 이름보다 소설의 제목에 눈이 끌렸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니. 지금은 물론이요, 젊은 시절의 내게 이 음악은 지상의 것이 아닌 천상의 음악으로 다가오지 않았던가. 인상적인 멜로디와 중후반부의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도리안 모드적인 선율, 그리고 9th Chord에서 13th음과의 미묘한 울림, 단2도음이 중첩되는 아르페지오의 탈-현실적 우아함...



      아...이 음악만 들으면 꿈 꾸는 듯하다...천재 라벨, 그리고 임동혁군...멋져부러...



이 멋진 음악을 소설 제목으로 만나게 되었을 때의 솔직한 심정은 반가움보다는 거부감에 가까웠다. 뭐랄까, 대중가요의 인트로를 익숙한 클래식 음악으로 대체하는 상업주의-장삿속에 대한 거부감과 유사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략 다섯 페이지 정도를 읽었지만 결국 그만 책을 덮고 말았다...첫 내용이 나쁘다기보다는, 연애소설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 때문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이 소설을 다시 보게 된 것은 그보다 조금 이후의 일이다). 연애소설이야 대개 뻔하지...하는.

 

나는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반면에 무수한 로맨스 소설에 대한 실망도 더불어 가지고 있다. 그 실망의 본질은 상투성이다. 내용의 상투성은 그나마 참을 만 하다. 우리들 연애 이야기가 어디 외계인과의 러브 스토리가 아닌 한 거기서 거기라는 점은 솔직히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에릭 시갈의 <러브스토리>나 카타야마 코이치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나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그런 동일성이 상투성으로 귀결되는 것만은 아니다. 유사한 사건을 다뤄도 눈을 잡아끄는 문체와 개성적인 시각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반면에 사건의 이질성-변양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상투적으로 귀결되는 실망스러운 작품들도 있다.

 

물론 상투성으로 귀결되지 않는, 쇼킹한 명작 연애 소설들도 많다. 레옹-마틸다의 전범(?)이라 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로리타>가 있고, '사랑했지만, 알고 보니 아버지 정부'라는 설정의, 뚜르게네프의 <첫사랑>도 있다(이 소설만 생각하면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본 AV인 <깨고 나니 도련님>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ㅡㅡ;;). 그리고 여자 친구의 엄마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설정의 <졸업>이라는 작품도 있다. 근래에 본 것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설정이었던 건, 사쿠라바 가즈키가 쓴 <내 남자>라는 소설이었다.

 

 

                            이거 완전 엽기다...ㅆㅂ...아무리 남이 하면 패륜이고 내가 하면 초월적 사랑이라지만...

 

 

물론 결말이 의외라고 꼭 호감이 가는 것만은 아니다. 중딩이 시절에 3류 극장에서 본,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한국영화는 이랬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속살도 부비부비하며(!) 행복하게 추억을 잘 쌓아나가고 있다가.....생뚱맞게 막바지에 이르러 여자가 매춘부라는 사실(허거걱!)이 갑자기 밝혀진다. 여자는 잠적. 갈등하는 남자. 마음을 굳힌 남자는 애타게 찾아 헤매다.....결국 여자는 자살. 홀로 남은 남자는 정적이 감도는 바닷가에서 장작을 태우며 그녀와의 추억의 산물(편지나 선물 등)을 태우고....하염없는 눈물.....이 즈음 비가(悲歌)와 함께 엔딩 크레딧 두둥~

아, 이 닭살 돋는 상투성을 어이하리.

 

그렇다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어떨까? 빤한 설정의 러브 스토리일까, 아니면 '깨어나니 도련님'이라는 3류 에로 비디오 제목처럼 쇼킹한 설정의 러브 스토리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리의 도덕적 관념을 넘어서는 파격은 없는, 그런 정도의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독특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독자라면 소설의 여주인공인 나오코와 미도리를 어떻게 상상하며 읽을까? 남자라면 열이면 열 모두, 나오코나 미도리의 얼굴에 송혜교나 김태희의 외모를 덧씌운 채 머릿속 영상을 돌리지 않을까? 화려하게 어여쁜 외모가 부담스러운 남자라면 아마도 '공효진' 이나 '임수정' 정도로 만족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아무도 '살아있는 폭탄'급의 얼굴을 상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들이란, 99.9% 이렇다고 단언할 수 있다(그 0.1%에 속하는 사람 중에 존 레논이 있다).

 


         우측의 뚱녀를 보라. 못생김과 비만의 묘한 공존. 벨라스케즈 역시 마초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나보다...


 

벨라스케즈의 원작 <시녀들>을 감상해보자. 미술 전문가가 아니므로 지극히 사견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역시 조명을 받는 건 가운데 있는 공주다. 보라. 모든 각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듯, 아주 환하다. 반면에 맨 우측의 추녀는 조명을 반만 받아서 마치 아수라 백작(마징가Z 기억나는가?)같은 몰골로 연출되어 있다. 게다가 개와의 배치. 야수랑 동급이라는 건가? 해석이 너무 악의적이라고? 뭐, 그럴지도.

 


                   얘가 아수라 백작.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얘는 '무성생식'을 할까? 어떻게? 상상은 자유....

 

 

이번에는 바로 아래에 게시된 책 표지를 보라. 아름다운 왕녀나 시녀들은 모두 어둠 속에 있고 그 중에 가장 못 생긴 시녀만 마치 램브란트의 그림처럼 환하게 드러내어져 있다. 물론 출판사의 의도이다. 그렇다...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못생긴, 그것도 '보통 이하'가 아닌 핵폭탄 급 추녀로 설정되어 있어서, 여주인공은 반드시 예쁘다는 우리의 상식(?)에 태클을 건다(여기서 상상의 송혜교나 김태희는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못생긴 여자인 '그녀'는 게다가 백화점이나 포장지 공장을 전전하고 칙칙한 집에 거주하는, 이른바 도시 빈민에 가까운 '존재감이 없는' 존재이다. 그러한 그녀를 사랑하는 '나'역시 존재감이 없다. 그래서일까. 소설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그녀'와'나'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름 없는, 또는 이름이 있다고 해도 당신들이 알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도 않을 그러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주인공은 남루할지언정 비루하지만은 않다는 거...

 

 

                                                     난 무규칙 이종잡문가인데...ㅡㅡ;;

                                                  

 

 

 

 

여기서 잠깐 옛날 얘기를 해본다. 12여 년 전에, 나는 쌤과 함께 차 안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쌤 : "하나 물어보자. 넌 '무식하지만 예쁜' 여자가 좋으냐, 아니면 '똑똑하지만 못생긴' 여자가 좋으냐?"

나 : "(아니, 그런 걸 질문이라고...)당연히 '무식하지만 예쁜' 여자가 좋지요."

쌤 : "왜?"

나 : "(아니, 당연한 걸 가지고...)그야...무식한 건 배우면 되지만 못생긴 건 어떻게 안 되잖아요."

쌤 : "성형수술은 괜히 있냐?"

나 : "에이, 그건 돈 들잖아요....게다가..."

쌤 : "........"

나 : "현대 의학에도 한계는 있습니다...ㅋㅋㅋ..."

쌤 : "그래서 '무식하되 예쁜' 여자가 좋다?"

나 : "네!"

쌤 : "이런...비~용~신~ㅉㅉㅉ....."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울 쌤, 정말 현자셨다...

 

 

이런 만화도 있다(19금).

(일본 만화니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함...)

 

 

                                                                             by 에비스 요시카즈


 

위의 만화 작가는 남자일까 여자일까?  남자라는 데 500원 건다...
요즘에 뜨는,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에서 '쌍칼 아저씨'가 '어른이'들을 위해 들려주는 동화도 비슷한 수준이다. 뭐, 풍자의 의미가 있긴 하다만....


 

                                                                         쌍칼 아저씨~뿌잉뿌잉~

 

그러나 세상엔 예외도 있는 법이다. 미모에 굴하지 않고 당당했던 한 친구를 나는 기억한다. 때는 1994년의 가을이었다. 우리 클래식 기타 동아리방의 옆의 옆에 사진 동아리방이 있었는데, 동아리 후배였던 P양은 우리 동아리 말고도 사진 동아리에 적을 두고(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사진 동아리방으로 들어가는 두 명의 미모의 새내기들을 우연히 발견한 나와 내 친구는, 미팅 성사 좀 시켜달라고 P양을 협박...아니 부탁하였더랬다. 그런데 선배로서의 일말의 체면은 있었는지라, 우리는 노골적으로 그 미모의 새내기들로 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었다. 재색을 밝힌다고 뒷담화가 오갈지도 모르므로, 그냥 은근슬쩍 '괜찮은 애들'로 부탁한다고 말했을 거다. 뭐, 아님 말고.

 

드디어 미팅 당일. 우리는 먼저 카페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솔로이스트의 삶을 청산할 기대에 부푸는 동안 결전의 시간은 다가왔고, 드디어....선수 입장...

 


 

                                                오, 마이 갓.....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어쩔 것인가.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걸.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는 결코 외모 여부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가면을 뒤집어 쓰는 것. 아니 그 친구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아마 그랬을 테다.

그 친구는 정말 가면이 아닌, 진심으로 잘 대해 주는 것 같았다(물론 이 말은 만의 하나 그 친구가 이 글을 볼까봐 하는 얘기다). 나도 분위기에 동조했다. 나름 이야기꽃을 피워가고 있을 무렵, 카페의 입구가 열리고...원래 우리의 타겟이었던 미모의 새내기 2 인이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우리 곁에 털썩 앉는 것이 아닌가! 혼미한 정신의 빈틈을, 미새녀(미모의 새내기 여자)1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미새녀1 : "안녕하세요~우리는 얘네들과 같은 동아리 소속이에요."

우리들 : "(두근두근)아, 네~안녕하세요."

미새녀2 : "즐거운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해요. 저희가 여기에 온 이유는요..."

나 : '설마 동참하려고? 앗싸~ㅎㅎㅎ....'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말이지...

 

미새녀1 : "(500원짜리 초코렛을 꺼내더니)저희가 이것 좀 팔러 왔어요."

친구 : "그게 뭔데요?"

미새녀2 : "그러니까, 두 분께서 오늘 미팅한 얘네들이 마음에 드시면요, 맘에 드는 만큼만 돈을 내시면 되어요~"

우리들 : "...................(뭐냐, ㅆ ㅂ)........................"

 

그 때는 이런 식으로 삥 뜯는 게 유행, 혹은 관례이었던 모양인데, 미팅 당일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왜냐고?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예비역이었으니까...

 

미새녀1 : "일단 초코렛부터 받으시고요, 큰 거 부탁해용~"

나 : "(이런 제길...난감하다..)저기...어느 정도까지 내야 되는지 통...(내가 대체 이런 말을 왜 하는 거지?)"

미새녀1 : "알아서 쏘세요. 기대할게요."

나 : "(얼마면 되겠니?) 그럼...1000원이면 되겠어요?"

 

내가 원빈이냐...얼마면 되게.

어쨌든, 그 순간 미새녀1의 낮 빛이 변했다...내가 생각해도 좀 쪼잔하긴 했다. 미모의 얼굴에 금이 가는 순간, 안타까움과 미묘한 쾌감의 양가감정이 내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미새녀1은 싹수가 노란 나를 포기하고 내 친구에게 기대를 걸며 그에게 몸을 돌린 채 말했다.

 

미새녀1 : "그럼 이 아저씨한테 부탁해야지. 왠지 아저씨는 잘 들어줄 것 같아."

나 : '아무리 예비역이라지만 아저씨가 뭐냐, 아저씨가....'

미새녀1 : "어때요? 얼마에 사주실래요?"

친구 : "아, 됐어요. 즐겁게 얘기하고 있는데 방해하지 말고 그만 가세요."

미새녀2 : "......................."

미새녀1 : "그렇겐 못해요! 아저씨가 사줄 때까지 안 가고 여기 있을 거예요!"

나 : '허걱...얘, 한 성깔 하게 생겼다...'

미새녀2 : "(당황하며 미새녀1을 향해)얘, 우리 이젠 그냥 가자..."

미새녀1 : "안 돼. 그럴 순 없어. 사줄 때까지 여기에 있을 거야."

 

독이 제대로 올랐다...잠자는 미녀의 콧털을 뽑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친구가 찬물을 끼얹었다(물론 진짜 찬물을 끼얹은 건 아니다).

 

친구 : "(눈을 부라리며)그럼 동 틀 때까지 버텨 봐요. 나한테 10원 한 장 나오나...."

나 : '뜨악....저렇게 잔인할 수가....그리고...세상에 10원짜리 지폐도 있냐?'

미새녀1 :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미새녀2 : '(마찬가지)............................'

 

그리고 2인의 미새녀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이후. 남은 그녀들과 캠퍼스를 거닐며 얘기를 나눴지만 이미 파장 분위기(잘 됐지 뭐).

미인 앞에서도 그렇게 뻗댈 수 있었던 그 친구가 새삼 얼마나 위대해 보였는지 일설로 다 못한다....남자는 미인계에 약하다지만, 세상에는 이렇게 미인 앞에서도 강할 수 있는 남자가 있었던 거다...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게 여자한테 4가지 없는 거지, 강한 거냐?"

 

그러니까 내 말이 그거다. 미인 앞에서의 4가지 없음. 미모에 홀림이 없는, 정당한 당당함. 이 얼마나 지고지순한 경지란 말이냐...

 


                                                                       
                                                                

위의 일보다 더 오래 전에, 여자인 동아리 친구(결코 '여자친구'가 아니다) C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네가 요즘 만나고 다니는 여자애...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착할 거야...예쁜 애들은 성격이 모난 데가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

 

C가 위의 미새녀1을 봤다면 아마도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어째서 '예쁜 애=착한 애'라는 것이 보편적 등식이 된 걸까? 동화책만 해도 콩쥐는 예쁘지만 팥쥐는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고, 심청이는 곱지만 뺑덕어멈은 추하다. 신데렐라는 예쁘지만 계모의 딸들은 못났다(그러니까 왕자가 거들떠도 안 보지). 백설공주의 왕비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미(美)=선(善),추(醜)=악(惡)'이다. 우리들은 대개 이런 편견을 내면화하고 살았던 거다...

그런데 이런 내면화에는 다음과 같이 도덕적 부채의식을 탕감하려는 속셈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친구 : "야, 너 왜 그 여자를 좋아하는 건데? 이쁘면 다냐?"

나 : "짜샤...넌 내가 단지 예쁘기 때문에 걔를 좋아하는 거 같냐?"

친구 : "색까, 그럼 아니냐?"

나 : "짜샤...예쁜 애들이 성장 과정에서 외모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었기 때문에 성격도 좋고, 따라서 착하거든?"

친구 : '.............(조까).............'

나 :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확률적으로 착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예쁜 애를 찾는 게 좋아...."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예쁜 여자 밝힘증'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선(善)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자기합리화가 필요했던 거다. 여배우 아무개나 여자 아나운서 아무개가 재벌 2세나 잘나가는 사업가랑 결혼한 이유가, 돈이 아닌 바로 그 사람의 인격 때문인 것처럼.

(아, 물론 실제로 인격 때문에 좋아했는데 '우연히' 돈이 많은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러한 등식을 내면화하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이 동화 말고도 또 있다. 바로 영화.

잠시 영화 <300>얘기를 해보자. 위에서 벨라스케즈에 대해 '마초'라는 표현을 했는데, 좀 부당한 생각이 든다. 진짜 마초들은 얘네들 아니겠나. 영화 <300>의 스파르탄들.

 

                                               무슨 병사가 갑옷도 없냐....                                   


근데 이 영화, '나쁜 놈=못생긴 놈'이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등식을 고착시키는 데 기여한다. 아니, 한 술 더 뜬다. 
바로 '못생긴 놈=나쁜 놈=장애인'이라는 등식으로 말이다. 


 

                                      얘가 왜 '나쁜 놈'이냐고?  못생기고 '애자'인 '배신자'니까...


설령 크세르크세스왕은 (스파르탄 입장에서)나쁜 놈이지만, 잘 생기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하지만 잘 생기면 뭐하나. 하고 다니는 꼬라지가 이 모양인데. 


 

                                                        이게 왕이야, 변태야? 
                                                                                        

                                                      

그러니까 결론은 이렇다. '나쁜 놈'은 '추한 데다가 때론 장애자이기도 하고 때로는 피어싱 변태'라는 거.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작품이 또 하나 있다. <반지의 제왕>. 골룸이나 우르크하이 그리고 트롤이나 오크들의 외모를 보라. 원작자인 톨킨도 외모지상주의로부터는 그다지 자유스럽지 않았나 보다. 물론 그래도 이 작품이 훌륭하다는 데에는 별 이의가 없을 거다.)

이런 점에서 <300>이라는 영화는, 십 여년 전에 해적판으로 만화방을 전전했던 일본 만화책만도 못하다. <욕망의 팬더가면>이라는 만화(심의를 염려한 제목일 뿐, 겉 표지 다음 장에는 '욕망의 팬티가면'이라고 명시해 놓았다)에서 주인공은 변태일지언정 그래도 정의롭지 않은가...



                                                            일본판 원 제목은 <구극(궁극),변태가면>.....ㅡㅡ;;

 

 

이렇게 미(美)와 선(善)의 동일시, 그리고 추(醜)와 악(惡)에의 동일시는 어제 오늘의 얘기만은 아니다. 진지한 척하기 좋아하는 어떤 음악 사이트를 가면 가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보게 된다.

 

"저 사람은 연주는 잘 하는 것 같다만...인간성이 더러워. 음악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래도 저 인간성이 음악에 반영되지 않겠는가?"

 

좋은 말이기는 한데,...과연 그런가? 클로드 드뷔시의 이름 앞에 늘 붙어다니던 수식어가 뭐였나? '비사교적인', '교활한', '호색적인', '향락적인', '방탕한', '반항적인'.......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마빛 머리의 소녀>의 아름다움이 퇴색되는 건 아니다. 바그너는 어땠을까? 이런 얘기가 있다 .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할 수는 있어도, 그 인간 자체를 좋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얘기도 생각난다. "사람들은 자신의 집안에 예술가의 작품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정작 그 예술가가 머물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인간이 안 되어도 음악은 잘 할 수도 있는 거다. 분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렇듯, '예쁜 애=착한 애', 그리고 '못생긴 애=나쁜 애'라는 등식은,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못생긴 것들을 두 번 죽인다. 그러고보니 요즘 방송하는 시트콤, <하이킥-짧은 다리의 역습>도 그렇지 않은가? 두 명의 '박 쌤'을 보라. 박하선은 예쁜데다가 애교 있고 성격도 순한 반면, 박지선은 안 예쁜데다가 성격도 까칠하다.

생각 같아서는 이 시트콤을 무진장 비판하고 싶은데 아, 어쩌랴. 나 또한 두 명의 박쌤 중에 선택하라면 박하선을 택할 터인데....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또 김칫국이나 마시고 있다.)

 

대체 난 무슨 자격으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아래의 글은 자격 없는 '내'가 아닌, 소설 속 여주인공과 작가의 입을 통해 쓰여진 것이다. 다시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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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래부터는 분위기 반전).......................................................................

 

이 소설의 압권은 단연 '나'를 떠난 '그녀'가 보낸 편지에서의 고백이다. 작가는 확실히, 그 부분을 쓰는 순간 작가 스스로 '못 생긴 여자 되기'를 시도했음에 분명하다. 못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받은, 적나라하되 너무나 진솔한 '그녀'의 상처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라.

 

...세상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염치없고 이기적인 생각임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들의 장애를 인정은 해주니까요. 세상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단다, 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저의 어둠을 장애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수히...저를 장애인으로 만들어 왔습니다....인정받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저는 분명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입니다....

 

...더없이 잔혹하긴 해도 나는 이렇게 태어났구나, 스스로를 납득하기까지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아이는 곧 소녀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소녀가 되고 싶지 않아도 소녀가 되어야만 하는 여자아이의 얼굴을.....저의 얼굴을 학대한 것은 세상만이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스스로도 스스로를 학대해 온 것입니다....

 

.... 5.6미터쯤 떨어진 인간의 목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들리지 않겠지, 속삭이는 목소리지만 그래서 더없이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말입니다. 좀더 떨어진 곳에서 난 지금 네가 못 듣게 이만큼 떨어진 곳에서 말하고 있는 거야, 하면서도 듣기를 바라는 계산된 목소리를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얘가 말하길래 웃은 것뿐이야 라는 느낌의 폭소를 아실런지 모르겠습니다. 더러 니가 알면 어쩔래, 하는 느낌의 비웃음을 보신 적은 있는지요. 또 난 아니야, 난 저렇게 노골적인 친구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줘..가 서린 동조의 표정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 같은 여자들은 결국 스스로를 마취해야 합니다. 인형이라도 붙잡고 상상의 세계에서 살아간다거나, 대인관계를 거부하거나....혹은 여자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자신을 설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처럼 행동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아예 망가진 모습으로 코미디를 자청하는 친구들도 보았습니다. 특이한 여자, 웃기는 여자...설령 여자의 일부분을 포기한다 해도 못 생긴 여자보다는 낫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에...마음 속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도려낸 여자입니다...

 

...시간 있으세요? 어디서 차나 한잔 할래요? 이미 비슷한 말들을 여러 차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저 여자에게 가서 말 걸기....그런 벌칙의 대상으로 저는 더 없이 합당한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던 등 뒤의 킥킥거림도 제게는 잔인한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재수없다'는 말이나 '토가 쏠린다'는 말이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말 없는 주변의 시선들이었습니다. 참 이상한 인간들이네, 그들을 바라보거나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디 어디,라는 느낌의 두리번거림..그리고 참 이상한 얼굴이네... 미소 짓던 다수의 시선 앞에 저는 늘 굴복해야 했습니다....

 

...저는 성적이나 자격증과는 아무 상관없는 잉여 인력이 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이 누구나 같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억울한 점이 있다면..그런 것입니다. 왜 균등한 조건이 주어진 듯, 가르치고 노력을 요구했냐는 것입니다....저는 한번도 스스로의 인생을 평가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스스로의 태생만을 평가받아온 인간입니다....

 

 

 

 

그렇다...나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그 누군가를 상처 주고 살아왔던 것이다. 대놓고야 그러지 못했지만, 그녀들이 없는 곳에서 얼마나 자주 남자들끼리 킥킥거리며 그녀들의 외모를 조롱했던가. 자기들도 고구마인 주제에...또 마음속의 차별은 어떠했나...

 

이 소설의 결말은 다소 의외다. 반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포일러가 될 터이므로 자세히 언급은 못하겠지만, 뭐랄까, 해피엔딩과 비극이 공존한다고나 할까. 하나의 현실에 또 하나의 가능세계를 남겨 둠으로서 작가는 슬픔을 느낄 독자에게 위로를, 또는 해피엔딩을 원하지 않을 독자들에겐 슬픔의 여지를 남겨둔다(이 소설을 직접 봐야 무슨 얘기인 줄 알 수 있다). 마치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존 파울즈에 영향 받은 듯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빛난다.

 

작가의 후기를 들어보자.

 

...그 질문은 오랫동안 저를 괴롭히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남자와 마찬가지로 저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또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 한다 해도 잔인한 진실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어쩔 수 없이 미남과 부자가 좋은 당신이라면 그런 저 자신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해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에겐 너무나 먼 ‘가야할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부를 거머쥔 극소수의 인간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에 군림해 왔습니다. 미모를 지닌 극소수의 인간들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를 사로잡아 왔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극소수가 절대다수를 지배하는 이 시스템에 대해 저는 많은 생각을 해야만 했습니다. 부와 아름다움은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부와 아름다움에 강력한 힘을 부여해 준 것은 바로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끝없이 욕망하고 끝없이 부러워해왔습니다. 이유는 그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으며, 누가 뭐래도 그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불변의 진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시시하게’만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치 지금 70년대의 냉전을 돌아보듯, 마침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돈다 믿었던 중세의 인간들을 돌아보듯 말입니다. 물론 그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시시해’. 그것만으로 좋았다니 그야말로 시시한 걸. 이 시시한 세계를 시시하게 볼 수 있는 네오 아담과 네오 이브를 저는 만들고 싶었습니다.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가능성의 열쇠도 실은 우리가 쥐고 있습니다. 왜?

 

바로 우리가 절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손에 들려진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어떤 독재자보다도, 권력을 쥔 그 누구보다도...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제 대책 없이 강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가 부끄러워하길 부러워하길 강요해왔고, 또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인간이 되기를 강요할 것입니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야말로,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TV에서 어떤 본 외국인의 냉소가 기억이 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이력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고...왜 이력서에 꼭 사진을 붙여야 하는지를. 물론 몰라서 물은 건 아닐 테다. 비슷한 수준의 얘기를 '미수다'에서 들은 적도 있다. 그녀들 중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 이상해요...왜 처음 만나면 꼭 '아버지는 뭐하시는 분이냐?'고 묻는지요....

정말 몰라서 물은 건 아닐 거다. 아버지가 의사나 판사면 속으로 '와~'할 거고 환경미화원이나 아파트경비라고 하면 속으로 '에이~'할 거라는 것 정도는 그녀도 알고 있을 거다. 뭐, 물론 속마음이야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이긴 하다.

 

물론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예쁜 얼굴에게 끌리는 건 당연한 감정 아니냐고. 한 후배는 이런 얘기도 했다. 유인원들도 인간 미녀들에게 더 끌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고로 예쁜 얼굴에게 이끌리는 건, 美를 추구하는 자연적인 경향이라고.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다. 인간 남자의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 성향/충동이 '자연적인-또는 유전적인' 산물이라 해서 그 자연적인 '팩트'가 현실 사회에서의 폭력을 정당화 하는 건 아니다. 어디 윤리라는 게 자연에서 나오던가? 마찬가지다. 예쁜 얼굴에 대한 선호가 자연적인 것이라고 해서, 고용에서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美 추구'의 '팩트'에서 차별의 '당위'가 도출되지는 않는다(그러나 인정해야겠다. 나 또한 그런 자연주의적 오류에서 자유스럽지 않았다는 걸).

 

 

우리의 문제는 이런 오류를 외려 절대시하는 이상한 사회가 되어간다는 거다. 게다가 타인을 정당하지 못한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어도 불역(拂逆)이 없을 정도의 정신적 공유화가 진척되어 간 듯한 느낌도 든다. 이런 걸 두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다고 해야 하나?

다음은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아는 분의 딸의 100일 잔치에 간 적이 있었더랬다.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데 맞은편의 젊은 여자들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

 

"너 어제 소개팅 했다며? 어땠어?"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 생긴 것도 그만 하면 됐고. 근데..."

"근데 뭐?"

"사는 곳이 강북이래...."

 

이런 얘기를 맞은편의 사람이 듣든 말든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회인 거다.

 

이력서에 사진을 요구하는 사회, 아버지의 직업으로 개인을 평가하는 사회, 사는 동네와 아파트 평수로 인간의 수준을 가늠하는 사회, 자동차의 배기량으로 인간의 삶을 계급지우는 사회, 모든 여자들에게 성형수술을 권장하는-그러면서 겉으로는 인조인간이라고 비웃는 사회.....

 

이런 사회를 뭐라할까? 우석훈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 작가 주원규의 말을 빌리면, '천민자본주의의 막장?' 주원규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작가의 말'을 통해 "도구가 되어버린 교육과 경제논리 앞에 모든 게 우습게 정리되는 우성과 열성 유전자의 줄 세우기"라고 현 사회를 규정한 바 있다. 교육과 경제논리에 하나만 더 추가하면 완벽한 삼위일체가 완성된다. 바로 외모.

 

몇 년 전, 외국의 명문대 출신의 잘~생긴 어느 국회의원 후보자 앞에서 여대생인 듯한 무리들이 이런 말 했던 것이 기억난다. "우와~이 아저씨 디게 잘 생겼다! 나 이 아저씨 뽑아야지!" 그 동네 어떤 아저씨들도 이 후보를 밀어줬다. 그래야 재개발로 집값이 올라가니까. 재개발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만...(결과론일지는 모르지만) 결국 오른 건 전세값, 쫓겨난 건 돈 없는 서민.

 

이기적 합리성을 위한 경제논리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당연함이 너무 당당해져서 뻔뻔해졌다. 마치 싱클레어 루이스의 소설 주인공 <배빗>처럼 말이다. 그 결과는 '공멸'인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 인간이 L.A.의 평균 시민들처럼 산다면 지구가 다섯 개 필요하다고 하잖냐. 하물며 코딱지만한 한반도-그나마 반으로 잘린-야 오죽하랴.

 

 

 

 

 

대략 13년 전 즈음의 일이다. 어떤 가수의 일주일 동안의 공연이 끝나고 쫑파티(?)에 꼽싸리 낄 기회가 있었다(단역이었지만 엄연히 공연 참가자였으므로). 나이트클럽의 큰 룸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놀았는데 크게 판을 벌인 탓인지 종업원들의 부킹 서비스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결국 나까지 얼떨결에 한 여자와 엮이게 되었는데...내가 잘나서 그런 건 아니고, 단지 유명 가수가 나에 대해, 이를테면 보증(?)을 서 준 탓이 컸을 것이다. '얘 아주 괜찮은 애다, 잘 해 봐라' 뭐 이런 식으로. 물론 '괜찮다'는 말은 단지 무리들 중 솔로이스트들의 개체 수를 최대한 줄여보려는 의지의 발로임은 말해 무엇하랴.

어쨌거나 그 결과 나는 몇일 후에 만날 것을 약속했더랬다. 핑크빛 미래가 바로 눈앞에.....

 

드디어 그 날이 왔고, 나는 떼 빼고(아니, 왜...?) 광 낸 다음, 이태원에 있는 한 카페로 갔다. 조금 기다리자 반가운 얼굴이 들어왔다. 마시지도 않을 커피를 시켰고, 의례적인 대화로 작업의 물꼬를 텄다. 아, 그런데 말 많은 여자였으면 좋았으련만, 이 여자, 비교적 말이 없다...잦게 찾아오는 침묵. 그 말없음의 의중을 짐작하였던 바, 마음에 조급함이 들었다. 이 침묵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것이 이미지 쇄신의 길이다...그리하여 침묵의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최대한 말을 남발하였고, 그 중 백미는 다음과 같다.

 

"아, 글쎄 아까 여기 오려고 지하철에 탔는데요, 웬 이상한 사람이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려서 턱걸이를 하던데요."

 

썰렁한 나의 '침묵 소거용 멘트'에 대해 그녀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차.....없으세요?"

 

그 순간의, 마치 맑은 물 위에 먹물이 번지는 듯한 그 여자의 미묘하고도 급속한 표정 변화를 기억한다. 그 여자는 자신의 그러한 적대적 표정을 결코 숨기려들지도 않았다. 외려 스스로 '뚜벅이'임을 밝히고야 만 어리석음(?)을 수습하지 못하는 당황한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는 애썼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 간 후, 몇일 동안의 내 심정은 아마 다음의 노랫말 같았을 거다.

 

"한 때는 당신을 미워했지요~♪ 남겨진 상처가 너무 아파서~♬"

 

그리고 아마....'속물', '남자를 봉으로 아는 된장녀' 따위의 생각이나 말을 했을 것이다.

 

세월이 오래 지난 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질문한다.

'그녀는 어떤 여자였나?'

'어떤'이라는 질문의 속성에 결코 성격은 포함되지 않았다. 너도 알고, 나도 알다시피 바로 '얼굴'에 관한 질문임을 세상의 수컷들은 다 안다.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노랫말로 치자면 이럴 거다.

 

"그녀는~♩♪너무 예뻤어~♬"

 

어쩌면...아니, 당연히 그녀의 '얼굴'을 얻는 대가로 나는 최소한 '차'라는 보상을 준비해야 했었다. 일류대 졸업장을 손에 든 채, 내 머리 위에 분홍색 리본을 달고 나와서 "제 자신을 그대에게 봉헌하리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나 되었으면 그나마 뻔뻔함에 대한 면죄부나 되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의 상판이나 졸업장은 차를 대신할 수 있을만한 스펙과는 거리가 멀었다. 뻔뻔함의 극치랄까. 오히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왔다는 것을 실토함으로써 스스로 공정거래법을 위반했음을 고지한 거다....

'천민자본주의의 막장'에서 그렇게 20대를 보냈다.

 

 

 


나에게 묻는다.
지금은?

작가의 말처럼,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모든 얼굴이 비슷해져 간다. 그건 사실이다. 성격이 개차반이 아닌 한, 별로 예쁘지 않은 얼굴이라도 눈에 익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친밀력을 가진다는 것을 깨달은지도 오래되었다. 아마 남자란.....연애의 불가능성을 깨달아가면 갈수록, 그리고 성호르몬의 농도가 옅어지면 옅어질수록 육체의 집요한 집착에서 다소간 자유스러워지며 점차 동물에서 인간으로 향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늙음, 그것은 외모의 세계로부터 서서히 후퇴하는 것이다."

 

 괴테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덜 늙은 탓일까.....'섹시한 레이싱 걸 한자리에'라는 제목의- 낚시성 기사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전히....짐승이다. '짐승남'이 아니라 그냥 짐승인 거다.
정말, 인간에겐 너무나 먼 ‘가야할 길’이 펼쳐져 있다.....






리스닝이 안 되는 난 이 노래의 가사가 그저 17세에 감미로운 첫사랑을 경험 했다는 얘기인줄 알았다....
 

 

At Seventeen

 

 

I learned the truth at seventeen

That love was meant for beauty queens

And high school girls with clear skinned smiles

Who married young and then retired

 

  난 17세에 진실을 알았어

사랑은 미인대회에서 여왕으로 뽑힌

애들에게나 의미가 있다는 걸

어려서 결혼하고 은퇴하는

투명한 피부에 미소를 가진 여고생에게나

 

The valentines I never knew

The Friday night charades of youth

Were spent on one more beautiful

At seventeen I learned the truth

 

발렌타인 데이도 난 몰랐어

그 금요일 밤은 애인이 있는 척

한 번 더 예쁘게 꾸미며 보냈어

17세에 난 진실을 알았지

 

And those of us with ravaged faces

Lacking in the social graces

Desperately remained at home

Inventing lovers on the phone

Who called to say come dance with me

and murmured vague obscenities

It isn't all it seems at seventeen

 

그리고 참혹한 얼굴을 한 우리들은

사교적인 매력이 부족해

절망한 채 집에 남았지

전화로 애인을 만들었지

나와 함께 춤 추러 가자고 전화하고

뜻 모를 음담패설을 중얼거렸던 (상상의) 애인을.

17세 나이에는 그 모든 게 어울려 보이는 일은 아니었지

 

A brown eyed girl in hand me downs

Whose name I never could pronounce

said, Pity please the ones who serve

They only get what they deserve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물려받은 헌 옷을 입은 갈색 눈의 소녀가 말했지

애인을 섬기는 가엾은 애들

그들은 댓가를 치룰 거야

 

In the rich relationed hometown queen

Married into what she needs

A guarantee of company

And haven for the elderly

 

부자들과 교제하던

고향 마을에서 여왕으로 뽑힌 애는

그녀가 필요로 한 것-사교적인 모임과

늙었을 때의 안식처도

보장 받는 결혼을 하지

 

Remember those who win the game

Lose the love they sought to gain

Indentures of quality

And dubious integrity.

Their small town eyes will gape at you

in dull surprise when payment due

Exceeds accounts received at seventeen

 

 

그 게임에서 이긴 자들을 기억해

그들은 우수한 고용계약서와

미심쩍은 진실성을 얻고자 했지만 사랑을 잃었지

그들이 사는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당신이 열일곱 때 받은 것의 초과량을

지불해야 할 때가 와도 그리 크게 놀라지 않으며

입을 딱 벌리고 멍하니 당신을 쳐다 볼 거야

 

To those of us who knew the pain

Of valentines that never came,

And those whose names were never called

When choosing sides for basketball

 

다시 오지 않을 발렌타인 데이의

고통을 아는 우리들에게

농구경기에 편을 짤 때

이름 한 번 불려본 적 없는 이들에게도

 

It was long ago and far away

The world was younger than today

And dreams were all they gave for free

To ugly duckling girls like me

 

 

그건 오래전 머나먼 곳의 일이었어

오늘보다 더 어린 시절이었고

꿈은 나같은 미운오리새끼 소녀에게

그들이 거져 나누어 준 것이었지

 

We all play the game and when we dare

To cheat ourselves at solitaire

Inventing lovers on the phone

Repenting other lives unknown

That call and say, come dance with me

and murmur vague obscenities

At ugly girls like me at seventeen

 

우리 모두 게임을 하거나

혼자 하는 놀이에서도

우리 자신을 속일 수 있을때면

전화로 연인을 만들지

17세의 나 같은 못생긴 소녀에게

몰랐던 다른 날들을 안타까워 하고

전화해서 "나와 춤추자"고 말하며

뜻 모를 음담패설을 중얼거리는

 

  -Janis Ian-

 

 

 

                       

 

-

 사족)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 "아마도 이것은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다룬 최초의 소설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글리 우먼>이라는 스페인 영화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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