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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리뷰

바보들의 행진




 
 

90년대 중 후반 즈음에 우연히 신문에서 <바보들의 행진>에 대한 어떤 평론가의 호평을 접한 일이 있다. 70년대 영화라는데 촌스럽지는 않을까...우려 반 기대 반으로 영화를 보았는데 관람 후 내 솔직한 소감은 이랬다.

'이게 무슨 명작이냐...ㅆㅂ...이거 완전히 비관을 위한 비관 아닌가?'

영화 스토리는 대충 이렇다.

Y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병태는 그룹 미팅을 통해 같은 또래의 H대 불문학과 재학생 영자를 알게 된다. 급격히 전개된 서구 문명의 영향을 받고 성장해온 이들 70년대의 젊은이들은 캠퍼스, 가정 그리고 기존 사회의 벽과 부딪쳐가면서 고뇌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고뇌는 우직스러울 정도의 해학과 자조를 띄우면서도 좀 더 밝고 명랑한 내일을 위해 성장해간다. 병태와 영자의 사이에는 어떤 사랑의 약속도 없다. 그들은 만나고 대화하고 그리고 병태는 좀 더 큰 성장을 하기 위해 입대하게 된다. 그 군용 열차에 매달려 입 맞추는 병태와 영자.                                                  

                                                                         -<네이버 영화>에서


 

                                             나도 저럴 때가 있었.........으면 좋았을 걸(girl). 


 

이 영화의 감독은 미국 UCLA에서 영화를 전공한 하길종(1941~1979).

당시 프란시스 드 코폴라도 같은 학교 출신이었는데, MGM영화사가 전 미국 영화과 학생 가운데 4명을 선발하여 주는 '메이어 그랜드상'을 받았을 뿐더러 UCLA 강사 자리가 보장되기까지 한 것으로 보아 그 곳에서도 꽤 재능을 인정 았던 모양이다. 젊어서 일찍이 시인 김지하를 만나 알베르 카뮈에 경도되기도 했었다고.

사실 나 같은 영화 문외한에겐 하길종이라는 이름보다는 하명중이 더 친근하다. 하명중(감독 겸 배우)은 그 유명한 <고교얄개>에서 얄개 나두수(이승현 분)의 고교 선생님으로 나오는 잘생긴 배우다. 하길종 감독의 동생이란다.

참고로 하길종 감독의 부인은 故전혜린의 동생인 전채린이라고.

                                                            

                   

                                바로 이 분. 영화에서는 두수의 누나 두주(정윤희 분)랑 결혼한다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제일로 황당했던 건 바로 텅 빈 강의실 장면이다. 강의실에서 영철은 심각한 표정으로 병태에게 묻는다. "병태야, 너 안 나갈래?" 병태는 "난 그냥 여기 남겠어."라고 답변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연고전을 연상시키는 체육대회 씬. 대체 얘들은 고작 체육대회 참가 여부를 두고 왜 이리도 심각하게 말하는 것일까?

 

문제는 개봉 전 사전 검열. 사실 하길종 감독이 원래 넣었던 씬은 유신철폐를 부르짖는 학생들의 데모 장면. 신중현의 노래,<거짓말이야>와 <미인>이 각각 '불신풍조 조장'과 '퇴폐풍조 조장'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던 시절이니 이런 게 통과 될 리가 만무했던 것. 게다가 하길종 감독의 영화철학은 영화가 사회 현실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므로 군사독재와의 충돌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고 사전 검열로 인한 삭제는 유신정권 입장에선 '당연한'(?) 일.

 

박정희 독재 정권의 영화에 대한 정책 홍보 도구화는 이미 1960년대부터 꾸준히 획책되어 온 수단이었지만,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이는 더욱 강력하고 노골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물론 영화는 유신 이념을 선전하거나 적어도 동조하는 것이어야 했고, 사전 각본 검열과 사후 실사 검열의 이중 검열 장치는 긴급조치 수준으로 강화 되었으며, 중앙정보부 요원이 검열 과정에 참여해 무지하고 자의적인 횡포를 부렸다.

-'한국 영화사(변인식)' 중에서

 

이런 시대였단다.

 

영화의 초반, 미팅 장소에 가기 위해 때 빼고 광낸 병태와 영철은 재수 없게 장발 단속을 나온 경찰에게 걸린다. 36계 줄행랑을 치는 병태와 영철. "야, 재수 없게 걸려봐. (머리에)고속도로 생기지..." 경찰관은 이들을 쫓으면서도 격식 차릴 건 다 차린다. 그 상황에서 지나가는 상급자에게 "근무 중 이상 있습니다"라거나, "수고 하십니다"라고 외치며 거수경례를 하는 등, 경직된 관료제와 사회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장면이라고.

결국 경찰서로 끌려 간 병태와 영철.

"우리 머리 가지고 왜들 그럴까?"

"헤헤...혐오감을 준데. 그래서 깎아야 한데. 헤헤..."

인상적인 건 병태의 미팅 번호는 13번, 그리고 영철의 번호는 '4'번이라는 것. 다분히 의도적이고 사소한 복선이라고 밖에는.

 
 

                                                    이런 시대였다. 장발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가위질을 해대던.....

                                                                              (자료출처 : 인물현대사-하길종 편)

                                    미팅 가기 전 때 빼는 병태와 영철. 뭘 기대하고 있는 걸까?ㅡㅡ;;


 

경찰서를 몰래 빠져나와 고대하던 미팅 장소에 도착한 병태와 영철. 그 곳에서 병태는 미모의 '오영자'라는 여대생을 만난다.

"아주 예쁘게 생겼네요."

이 말은 오영자가 병태에게 던진 말이다...ㅡㅡ;;

병태는 영자가 가는 길에 동침....아니 동참한다. 그녀는 학점 청탁을 위해 밤 늦은 시간에 담당교수의 집에 찾아간다.

"(교태를 부리며)학점 때문에 왔어요."

"그건 학교에서나 말할 성질이지 집에서는 곤란해." 그러나 결국 영자의 애교에 녹아 시험지를 확인하게 되는 교수님.

"이거 큰일인데?"

"왜요? 제 시험지가 어때서요?"

"봐. 성적을 보라구."

"어머, 제가 왜 30점 밖에 안 나왔죠?"

"답을 보면 알 거 아냐. 까뮈의 <이방인> 1부 2장 중에서 뫼르소의 심리 상태를 논하라는 게 시험 문제인데 답이 이게 뭐야? '그건 작품을 쓴 까뮈만이 말 뿐이지 까뮈가 아닌 우리들이 뫼르소의 심리를 논하는 건 명작에 대한 모독이다' 아니, 이런 답이 어딨어? 응?"

    

 

                                                     결국 눈물로 학점을 구걸한 오영자...


 

 

옛날에 저것과 비슷한 수준의 답안을 낸 학과 선배가 실제로 있었다. 과목은 '분석화학'이었는데 시험 문제는 대충 이런 유형이었다고.

문) 원소 A가 원소 B를 만나면 보통은 원소 C를 발생하게 한다. 그런데 X라는 상황에서는 원소 C가 아닌 D가 발생했다. 이유를 설명하라.

이 문제에 대한 선배의 답안.

답) 원소 A가 원소 B를 만나서 원소 C를 발생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 현상이다. 그런데 X라는 상황에서 마찬가지로 원소 C가 발생한다면 그렇게 지당한 것을 교수님께서 시험 문제로 낼 이유가 없다. 따라서, 교수님의 의도를 유추한 결과 원소 D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 말도 논리도 안 되는 답에 대해 해당 교수님은 너그럽게 10점을 주셨다고 한다...크세르크세스 보다 관대하신 이 교수님은 훗날 내게도 그런 관용을 베푸시게 된다. 때는 90년도 초 중반, 내게 주어진 분석화학 시험문제는 다음과 같다.

 

문) 원소 A와 B의 결합에 근거하여 '흡수'와 '흡착'을 설명하라.

 

물론, 이 문제는 화학식을 장황하게 그려서 설명해야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답안은 채워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나는 다음과 같은 답을 그려 넣었다.

 

 

                                                           ....이거 학생 맞냐?

 
 
  

그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채점한 시험지를 돌려주었는데, 내 시험지의 그 문제에는 빨간색 글씨로 '10점'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 다음과 같은 멘트가 남겨져 있었다.

"그림이 그럴듯하군."

한 문제 당 20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10점이라는 점수는 참으로 관대한 것이었다....

 

다시 <바보들의 행진>얘기로 가보자. 영자의 눈물 구걸에 굴복한 교수는 영자에게 <이방인>에 대한 리포트 제출로 시험을 대신하겠다며 달랜다. 교수의 집에서 나와 병태에게 간 영자는 병태에게 리포트를 대신 써달라고 간청한다. 쪼다 같이 수락하고 마는 병태.

그런데 나도 이런 찐따 짓을 한 적이 있다. 한 후배 여학생에게 정말로 <이방인> 리포트를 밤늦도록 대신 써 준 것. 며칠 후 입이 뾰죽 튀어나온 그 후배가 그 리포트에 대해서 교수님이 악평을 했다며 불평을 토로한 기억이 있다. 뭐 어쨌든, 좋아서 써 준 것도 아니고 단지 한 턱 내기에 꼬여서 그런 거니 할 말은 없다.

할 말이 있는 대필 숙제는 다른 거다. 평소 찍어놓은(?) 여학생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접근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중 동아리에 그 여학생과 같은 과 소속의 여자 선배님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그리하여 대망의 소개팅...이후 다소 친해지게 되었는데 하루는 그녀가 한문 숙제(중딩이냐...한문 숙제나 하게)를 못했다고 고민하고 있는 거다. 하여, 그 숙제를 내가 떠맡는 거 이외에 별 수 있었겠나. 그래서 밤이 깊도록 중딩이처럼 한자를 한 자, 한 자 그려(?)나갔던 것.

다음날, 그녀를 만나서 한문 리포트(숙제)를 전해주었는데, 내가 받은 보답은....."고마워, 수고했어."라는 말 두 마디. 뭐, 물론 그 대가로 육체적인 접촉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만....

그날을 회상하며 나는 간혹 술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결코 먼저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지마라. 먼저 티를 낸다는 건 석 장의 패를 미리 보여주고 치는, 필패(必敗)의 고스톱과 같다....."

 

카사노바도 못되면서 무슨 자격으로 조언 하냐고? 스탕달의 <연애론>도 그런 필패의 산물이라잖냐. 하물며...

 

연극 구경 후, 여학생들과 생맥주 집에 들어간 병태와 영철. 그들의 자조적인 대사.

"난, 내 힘으로 할 줄 아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끅(딸국질)...못 하나 박을 줄도 모릅니다..."

"정말이에요....우린 쪼다에요. 바보, 병신이에요. 대학교도 어떻게 들어갔는지 아세요?"

"우리 집이 돈이 많으니까...끅...날 철학과에 돈으로 넣었어요.....난요, 이다음에 돈을 많이 벌 겁니다."

여학생의 물음. "철학과 나와서 어떻게 돈을 버시죠?"

예나 지금이나...인문학은 돈 안 된다고 무시당한다. ㅡㅡ;;

이런 영철이 술만 마시면 내뱉는 말. "난 동해 바다로...고래 잡으러 갈 거야..."

뭘 동해 바다까지...동네 병원 비뇨기과에서도 잡아주는데...라고 썰렁하게 생각할 사람도 아마 있었을지도.

 

 

                                                    우 미녀, 병태 그리고 좌 미녀.....좋겠다....

 
 

영자가 병태에게 묻는다. "나중에 우리들의 시대가 왔을 때..넌 뭐하고 있을까? 난 뭐하고 있고?" 병태는 현문우답을 한다. "헤헤...결혼하고 있겠지, 뭐."

"누구하고?"

"너하고...나하고..."

"(웃으면서)어머, 어머...너 말 다했니? 그 말 취소해..."

(잘 들 논다...)

"취소를 왜 하니? 당연히 그렇게 되야지."

"하지만 너하고는 안 돼."

"왜 안 돼?"

" 흠, 너하고 나하고는 동갑 아니니. 넌조금 있으면 군대 가야지...3년 갔다 와서 졸업...취직하면 난 벌써 할머니가 되어 있잖아?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여자는 한참 비쌀 때 팔아야 하는 거래. 난 바겐세일 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넌 철학과잖니? 철학과 나와서 날 어떻게 벌어 먹일래?"

머리를 긁적이는 병태.

이런 反페미니즘적 대사를 빌미로 감독을 추궁하는 건 하등 쓸 데 없는 짓일 거다. 여기서는 시대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싶었던 것일 테니. 그런데 그 놈의 시대정신은 1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내가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 보이는 대사를 힘들여가며 이렇게 써넣은 이유는, 바로 그와 유사한 답변을 들은 기억이 있(는 사람이 주변에 몇 명 있)기 때문이다!

 

"너하고 나하고는 동갑 아니니. 넌 조금 있으면 군대 가야지...3년 갔다 와서 졸업...취직하면 난 벌써 ....."

 

명작이란...평론가들이 인정한 작품이 아니라, 바로 '내 얘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70년대의 아이콘-청바지, 통기타 그리고 생맥주.
 
 
 

영자는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병태를 데리고 간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꾸벅 인사하는 병태에게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하는 영자. "얜 정자, 얜 옥자...순자는 알 테구."

영子, 정子,옥子,순子...이들을 싸잡아서 여子라고 하는가 보다...

 

영자의 친구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한다.

"난 후회해. 여자로 태어난 거..."

이상한 말이다. 마치 여자로 태어난 걸 자기가 선택이라도 한 것인 양. 뭐, 물론 그런 의미는 아니다.

"요새 세상엔, 여자가 제일 한심해. 시집가면 애 낳고, 남편 월급 쪼개고, 시어머니 눈치만 보지."

근데 요즘 세상엔 남자도 한심해졌다...물론 그렇다고 평준하향이나마 평등이 실현된 건 아니다. 비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 남성 평균 월급의 60%정도 밖에는 못 받는단다.

 

한편, 영철은 영자의 친구인 강순자에게 작업 거는 데 성공, 드디어 다방에서의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순자 앞에서 말도 못 걸고 그저 성냥 쌓기만 하고 있는 찌질남 영철이 어렵게 말문을 연다.

"저..저...무슨...음악 좋아하세요?"

"왜요?"

"제가 대신 신청해 드릴게요."

"노래 좋아하지 않아요. 필요 없어요."

이 시점에서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하나 있다.

 

70년대는 몰라도, 80년대에는 子자로 끝나는 이름의 여자가 드물었다. 그 드문 시기에 나는 또 한 명의 여子인 'X子'를 만난 적이 있다. 얼떨결에 들어 온 소개팅이었는데, 그 때의 참담한 기억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그 당시 그녀의 태도는 이랬다.

나 : "아...지금 나오는 이 음악, 제가 좋아하는 건데....X子씬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그녀 : "........다 좋아해요(시큰둥)."

잠시 후...

 

나 : "여긴 심심한데 나가서 영화나 보러 갈래요? 무슨 영화 좋아하세요?"

그녀 : "...............다 좋아해요(시큰둥2)."

잠시 후....

 

나 : "영화 말고 우리 밥 먹으러 가요.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그녀 : ".......................다 좋아해요(시큰둥3)."

 

당시의 내 속 마음은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

 

이기(이게) 미친나(미쳤나) 참말로.

잠이나 잘 걸...

 


 

                                                     "좋아, 난 나가겠어....." 심각한 표정의 영철. 
 
 
 

강순자와의 첫 데이트에서 만취한 상태로 술집에서 내 쫓긴 영철. 12시 통금(통행금지)에 걸려 유치장 신세를 진다. 그땐 그랬지...물론 나로서는 통금의 존재를 알 수도 없었던 아주 어린 시절의 애기이지만.

이어서 그 유명한 '체육 대회'씬이 나온다.

"병태야, 너 안 나갈래?" "난 남아 있을래." '나가자, 임마!" "난 남아 있겠데두 그래." "좋아...난 나가겠어."

이어지는 교수님의 대사. "아니, 이렇게 매일 응원 연습을 해야 되나?" 그리고 이어지는 체육대회 장면.

영철에겐 '응원 연습'이 그리도 심각했던 걸까? 그럴 리가 없다. 이 체육대회 장면은 소위 가위질의 소산이다. 유신철폐를 위한 데모 장면이 체육대회 장면으로 바꿔치기 된 것. 이렇게 개봉 전 검열에 의해 삭제된 장면이 30분 가량 된다고 하니, 자신의 작품이 난도질당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감독의 심정이 어땠을까?

강의가 불가능해진 교수는 "병태군, 나와서 칠판 좀 지워요."라고 말하고는 강의실을 나간다. 병태가 칠판 앞으로 다가갈 때 칠판에 적혀있는 글씨가 의미심장하다. Aristoteles "Utopia"

 


                    



 칠판을 지우던 병태는 교수가 칠판에 써놓은 '이상국가'라는 낱말을 잠시 바라보다가 지우개로 '이'자를 지우고 이어서 '상'자에서 'ㅇ'을, 그리고 '국'자에서 받침의 'ㄱ'을 지운다. 이어 '가'자를 '라'자로 바꾸자, 남은 글씨는 '사구라.' 병태는 분필을 집어 들더니 '구'자를 향해 분필 든 손을 가져간다. 그가 쓰려던 글씨는 무엇이었을까?



 

          일본을 연상시키는 꽃...일제 강점기....일본군 장교....유신독재.....글쎄, 내겐 이렇게 읽힌다만....아님 말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무려 30 분 분량이 사전 검열에 의해 가위질 당했다고 한다. 술집에서 병태가 일본인과 싸우는 장면, 경찰서에 들어간 병태와 영철이 여자의 옷을 벗기는 장면, 데모 장면 등이 그것인데, 무려 다섯 번이나 검열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고. 비속어도 통제의 대상이어서 '군바리'는 '군인'으로, '군대 가는 기념으로 딱지나 떼야겠다'라는 대사는 '군대 가는 기념으로 목욕이나 하러 가야겠다'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누구 말마따나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 아니할 수 없다.


 

                                    70년대 당시,향락 행위의 도구라고 간주하여 압수한 기타들.
                   그러니까 장발에 기타치는 나는 아주 비도덕적이고 퇴폐,향락적인 인간이라는 거지. 어떻게 알았지?ㅋ
                                                                                           (자료출처 : 인물현대사-하길종 편)
 

자신의 작품을 난도질당한 하길종 감독의 분노와 슬픔의 심정은 다음의 글에서 느낄 수 있다.

 

"사실상 영화가 검열에서 커트되기 전, 시사회에서의 반응은 상당히 고무적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사상 유래 없이 검열을 다섯 번이나 받는 기록을 수립했고, 검열 결과 많은 부분이 참혹하게 피를 쏟듯 잘려나가고 작품은 연결도 잘 안되는 난장판이 되어 일반 관객들에게 공개된 것이다. 나는 슬프고 부끄러워 개봉 첫날부터 극장 구석에 숨어있었고, 만나는 사람에게는 영화가 30분씩이나 커트당했음을 변명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비난을 회피하고자 은근히 노력도 하였다...."

 "그때 나는 마치 눈알과 입이 없고, 팔 다리가 하나씩 잘려나간 나의 모습을 공개하는 것과 같은 아픔과 분노, 그리고 구토를 느꼈다."

 

                                    검열당한 대본. 겪어봤어요? 안겪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연결이 썩 유려하지 않아 산만하게 느껴진다. 러닝타임을 두 시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30분 분량의 삭제란 전체 영화의 1/4에 해당되는 장면이 잘려 없어졌다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영화의 유기성을 기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 거다.

하지만 그 산만함에는 어쩌면 감독의 의도도 한 몫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원작이 그렇듯 몇 개의 에피소드가 산재해 있는 듯한 인상인데 그 에피소드들은 명랑과 우울의, 서로 대립되어 보이는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이런 이미지 때문에라도 영화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철학자 김영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낭만적으로 튀면서도 근본에서 허무할 수밖에 없는 젊음의 분위기를 잡아낸 단편들은 그저 역사를 잃어버린 '풍경'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시 그 풍경은 그 기원을 은폐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고래'는 바로 이 풍경의 사이비성을 고발하는 실제의 은유에 다름 아니다.

 하길종에게 1970년대의 엄혹한 군사독재의 현실은 한 마디로 사이비의 그것이었으며, 이 퇴로 없는 현실을 뚫어내기 위한 영화적 노력과 절충 속에서 '바보'와 '고래'가 탄생한다. 어느 평자의 지적처럼, 그는 "일종의 무뇌아적인 대사들로 현실의 암담함을 간접적으로 공격"한다. 그러므로 앞서 시사한 것처럼 철학과 대학생들의 낭만과 사랑, 그리고 허무라는 표면의 이야기는, 풍경이 기원을 숨기고 이야기가 역사를 감추는 시대에 그가 선택한 우회로에 불과하다.

                                                                       -영화 인문학(김영민 저) 중에서

 

그러니까 하길종 감독에게 이 영화의 표면적 생기발랄함과 자괴적 허무의 이미지는 전략상 선택한 '우회로'라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그가 직설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얘기는 뭘까? 아마도 '퇴로 없는 현실'이었을 거다. 그는 유학 후 만든 예술 영화들이 상업적으로 실패하자 상업 영화로의 외도를 한다(제작자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었을 거다). 그러나 영화에의 현실참여를 철학으로 가지고 있던 하길종에게 자신의 성향을 배제한 영화를 만들기란 마치 안 맞는 옷과도 같았을 터. 따라서 그는 외견상으로는 재기발랄한 대학생들의 캠퍼스 라이프와 낭만주의적 우울을 전면에 내세워 젊은 관객들에게 어필함과 동시에 현실 고발과 풍자, 그리고 조롱의 컷을 군데군데 삽입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이러한 '절충'과 '우회로'에의 선택의 결과는 사전 검열로 인해 빛이 바래긴 했어도 어느 정도 성공한다.

 

 

                                  이 영화에는 '고교 얄개'로 유명했던 이승현도 단역으로 나온다.


 

 

당시 조선일보 기사 내용은 이러한 사실을 방증해 준다.

 

...하 감독이 만들고 싶어한 영화는 참여 의식이 강한 소셜 드라마였다...이런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는 제작자를 설득하는 방편으로 흥행 영화에 손을 댔다. <속 별들의 고향>과 <병태와 영자(바보들의 행진 속편)>가 바로 그것이다.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제작자를 설득시켜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수 있는 찬스를 노렸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병태와 영자>는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다.)

 

하길종은 한국 영화의 개혁에 대해서 "참다운 창작의 자유 아래 리얼리즘과 접근하는 기초적인 작업의 재출발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라고 주장한다. "영화의 본질적 기능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영화 작가의 일상적 내적 가치의 탐험을 통해 리얼리티의 집합적 요소를 관찰하고 조망함으로써 현실을 투시하고 이를 진실되게 전달하는 힘이다.....사실을 사실대로 표현해주는 미학적인 원동력에서 영화는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는 '영화 미디엄의 재발견'이라는 글에서 로제 만델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화가 대중 예술이므로 그것이 사회, 문화 현상을 반영한다는 것은 현금에 와서도 진리로 평가된다. 그러나 새 세대의 영화는 단지 이런 소극적인 기능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를 영화에 의해 영향을 받아 그 사회가 진실로 적응하고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경향으로 영화가 선도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영화 창작자로서, 또한 비평가로서 그리고 영화 이론가로서 한국 영화계의 살벌한 검열과 싸우면서 대중소설을 영화화할 수밖에 없었던('바보들의 행진'은 원래 최인호의 소설이다) 하길종은 자조적으로 변한다. 자신을 '피고'라고 판정하며 속박 당하는 현실을 냉소적으로 표현하는 그는, "인간주의로 인간의 편에 서 있지 않은 작품은 일체가 사이비다."라고 선언하였다.

                               -'한국영화 전복의 감독 15인(김 수남 저)' 중에서

 


 

                                       그의 영화 <수절>의 대본. "잘돼간다 이나라!" 대삭(대화삭제).



이런 하길종이었으므로, 표면적 '풍경'으로 암울함에 대한 '기원'을 소극적으로나마 은폐하려고 했던 거다. 결국 15년 전에 내가 이 영화를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건 바로 이러한 맥락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자.

 

...서슬 퍼런 검열에 이리저리 찢기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서글픈 기록이지만, <바보들의 행진>은 1970년대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특수성, 특히 유신 체제라는 정치적 도그마에 대한 역사적 감각 없이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다. "한국영화는 세계 속의 어디쯤 있는가. 아무 곳에도 없다. 싹도 없고 잔해도 없다. 설익은 모방과 지저분한 상흔만이 있다."고 한 하길종 감독의 탄식처럼, 그것은 시대에 좌절한 청년들의 미로 같은 저항이자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한국영화사' 중에서

 

물론 그 어떤 작품이든,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말해져야 한다. 하지만 '작품 그 자체로 말하려는 시도'가 철저하게 봉쇄된 70년대라는 상황에서 그런 잣대를 적용한다는 건 얼마나 맹목적인 일인가. 작품이 수작이니 범작이니 하는 평가는 어쩌면 중요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사전 검열의 서슬 퍼런 난도질이 한 총명한 감독의 작품을 범작 이하로 퇴락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돈을 주는 자의 당당함과 받는 자의 비굴함. 성인 독립 만세여...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학교 근처에서 우연히 운전하고 있는 아버지를 만난 영철은 아버지에게 꾸지람부터 듣는다.

 

아버지 :"(여기서)뭐하고 있니?"

영철 : "서 있습니다."

아버지 : "그건 나도 알고 있다! 도대체 요즘 뭐하고 있는 거야?"

영철 : "고...공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 "쓸데 없는 짓 하려면 짐 싸들고 집으로 돌아와! 그리고 그 머리 좀 깍아라! 그게 뭐냐?"

영철 : "아버진 뭐하고 계십니까?"

아버지 : "(역정 내며)보다시피 너하고 얘기하고 있잖니!"

영철 : "돈 좀 주십시오..."

아버지 : "넌 나를 만나면 딱 한 가지 말 밖에는 할 줄 모르는구나...전번에 준 하숙비는 벌써 다 썼니?"

영철 : "....다 썼습니다..."

아버지 : "시간이 없으니 이만 가겠다. 다시 한 번 말하겠는데, 쓸 데 없는 짓 할 바엔 그냥 집에 들어와! (돈을 건네주며)옛다."

영철 : "감사합니다..."

 

독립하지 못하는 성인 아닌 성인의 비굴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삼십 세가 다가오는 스물아홉의 어느 날인가, 맥주 한 캔 들고 흐르는 한강 너머 무수한 불빛들을 보며 얼마나 자괴감에 빠졌더랬나.

'저 많은 불빛들 중에 왜 이 한 몸 눕힐 수 있는 방 한 칸 없는 걸까?'

무기력한 청춘의 독립만세에의 의지는 그렇게 도시의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사그라지고 있었다.

스테디셀러인 <88만원 세대>의 첫 쳅터 소제목이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작금의 현실은 20대에게도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취직해도 부모님의 집에서 기거하겠다는 젊은이들이 태반인 요즘의 세태를 보건대 3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아 보인다.

 

 

                                         술 마시기 대회. 먹는 거 가지고 장난하면 벌 받는다....
                          이 장면엔 코미디언 故이기동과 원작자인 소설가 최인호가 심사의원으로 나온다.
 
  
   

이어지는 장면은 교내 축제의 과 대항 술 먹기 대회. 과음 후 얼마나 정신이 또렷한가를 기준으로 승자를 정하는데 방식은 사회자가 취한 학생들에게 문제를 내는 것.

"36 곱하기 4는?"

난 이거 맨 정신에도 암산 못한다....30X4는 120이고, 6X4는 24이니까 여기에 좀 전의 120을 더하면....ㅡㅡ;;

이해가 안 가는 건 이런 암산법이 아니라, 이 장면들 사이사이에 삽입된 정지 컷들이다. 도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라든지,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자의 정지 컷들이 그것이다. 뭐, 대충 대비를 주기 위해 그랬다고 치자. 제일 이해가 안 갈 뿐더러 황당하기까지 한 건 바로 다음 컷이다.

                                

 

                                          뜬금없이 웬 반공정신? 검열당국, 참 징하다 징해....


  

 

어느 날, 병태는 영자와 테니스를 치며 놀다가, 반투명의 유리막으로 차단(되지만 은근히 속살이 다 비치는)된 샤워실에서 뜬금없이 "우리 이제 만나지 말자."는 말을 영자로부터 전해 듣는다.

 

영자 : "내 말 들려? 내 말 들리냐구?"

병태 : "그래."

영자 : "우리 이제 만나지 말자."

병태 : "뭐라구?"

영자 : "앞으로 만나지 말자구."

병태 : "아니 왜?"

영자 : "그냥. 앞으로 전화 걸지도 말어. 병태야 비누 좀 줄래?"

병태 : "응. 자, 여기 있다. 아니, 근데 뭐라고 했지? 우리 친구라고 했잖아"

영자 : "어휴, 친구라도 안 돼. 전화 걸지 마."

 

 


                                         이런 곳에서 같이 샤워를 하면서 '친구'란다...허거걱....
 

 

 

응용) 병태와 영자의 <생활의 발견>.

 

영자 : "내 말 들려? 내 말 들리냐구?"

병태 : "그래."

영자 : "우리 이제 만나지 말자."

병태 : "뭐라구?"

영자 : "앞으로 만나지 말자구."

병태 : "아니, 무슨 그런 얘기를 이런 데서 샤워하면서 하니?"

영자 : "지금 장소가 중요해? 앞으로 전화 걸지도 말어. 병태야 비누 좀 줄래?"

 

한편, 영철이는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교수한테 사랑의 매, 아니 따귀를 얻어맞는다.

 

교수 : "이봐, 학생! "

영철 : "네?(고개를 돌리는 순간 따귀 작렬)"

교수 : "어디서 담배를 피워! 이 학교가 무슨 학교인 줄 아나?"

영철 : "......."

교수 : "이 학교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학교야. 그런데 어떻게 여기서 감히 학생이 담배를 피울 수 있나?"

영철 : "............."

교수 : "너 무슨 과야? 이름은 뭐고?"

영철 : "철학과 강영철입니다..."

교수 : "학생이면 학생답게 굴어야지, 뭐야? 뱃지만 달면 학생인가!"

영철 : "하지만..."

교수 : "하지만 뭐?"

영철 : "기독교 정신에 담배를 피우는 게 어긋난다고 하지만 남의 따귀를 때리는 것도 기독교 정신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교수 : "뭐라? 난 교수야. 너희들의 선생이야. 난 너희들의 철 없는 짓들을 가르쳐서 옳은 길로 인도하는 책임이 있어."

영철 : "그렇다면...왼 뺨도 마저 때려 주십시오."

교수 : "뭐라구? 자네 지금 나하고 농담하자는 겐가?"

영철 : "그건 아니고..."

교수 : "억울한가?"

영철 : "글쎄요...."

교수 : "앞으로 주의해!"

 

 

                                          교수로부터 훈육의 따귀를 얻어맞은 후 자빠진 영철.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교수가 학생의 따귀를 때리는 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고등학교만 되도 얘기는 달라진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와 정진은 싸웠다는 이유로 교련 쌤에게 열나게 얻어터진다. 따귀에 발길질에...얼마나 패러독스로 가득한 훈육 현장이냐. 싸움의 정의는 곧 '서로에게 가하는 폭력'이고, 선생이 그들을 훈육하는 이유는 그들이 '폭력'을 서로에게 사용했다는 잘못을 일깨우려는 것일진대, 그 훈육의 방식은 하나도 나을 바 없는 '폭력'이다.

 

잠시 고딩이 때 경험담을 하나 얘기하련다. '곰'이라는 별명의 담탱이가 있었는데, 하루는 무슨 심술이 뻗쳤는지 종례 시간에 학생들에게 "내일 등교는 무조건 오전 7시까지"라고 못 박는 거다...학교가 지정한 등교 시간은 7시 30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날, 생활의 관성에 충실한 나는 그만 7시 20분에 등교하여 지각하고 말았다. 반에서 지각한 아이는 나 이외에 또 한 명이 있었는데 그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창 사이로 스며드는, 기분 좋아야 마땅할 아침에 그 급우와 나는 '비 오는 날 먼지 나듯'맞았다.

 

나는 그렇게 그의 '훈육을 위한 사랑의' 따귀를 받았고 차가운 교실 바닥에 누운 채로 역시 '훈육을 위한 사랑의' 발길질을 당할 뻔 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쌤. 부디 오랫동안 장수하셔서 알타미라 동굴 '벽'화 뺨치는 작품으로 예술적 사명을 다 하시길 바랍니다.

                                         

                                         

                              쌤 같은 쌤 때문에 이런 은혜로운 영화도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바보들의 행진>얘기를 해보자.
 뺨 맞은 후 "스트리킹이다! 한국적 스트리킹이다!"를 외치며 교내를 뛰쳐 나오는 영철. 벗어야 스트리킹이지, 쨔샤...
 

                           옆으로 치워져 있는 바리케이트, 끝없이 이어질듯한 노란 중앙선 위를 달리는 주인공들.
                                              이 영화에서 가장 예술적인 씬이 아닐까?


 

이어지는 컷은 다음과 같다.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조국을 만'들자는 노래 가사를 연상시키는 곳을 뛰며 지나가는 주인공들.

                                          

                                              이 씬에서 연상되는 건 '새마을 운동'. 아님 말구...


 

다음 장면은 밤 하늘 아래에서 구토를 하는 주인공들. 구토의 이유는 뭘까? 과도한 달리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전에 삭제된 필름이 있었던 걸까? 예측되는 삭제 씬은 바로 '일본인과의 결투' 장면. 


                                            

                                                       나도 젊었을 때는 많이 토했더랬다...
     
 

 

그 다음 이어지는 장면은 바다. 인천 바다일까? 극중 대사처럼 고도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고래도? 그렇다면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쥔공 입가의 상처를 보라. 누구한테 쥐어터진 얼굴이다. 
                                                          삭제된 씬이 있다는 증거다.... 

  

이어지는 장면은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을 연상시키는 갈매기의 비상 씬. 병태는 꿈을 이야기 하지만 영철에게 확인되는 건 자학과 도피에의 의지 뿐이다.

 영철 : "우린 참 시시한 대학생이다. 그치?"
 병태 : "걱정하지마. 곧 우리들의 은 곧 이루어질 거야.
 영철 : "과연 그럴까?"
 병태 :  "응. 그렇구말구."
 영철 : "군대나 가고 싶어. 군대...난 재수 없게 불합격이지 뭐니."
 (아마도 신체 검사를 말하는 것 같다.)
 병태 : "난...갈 수 있어. 나도 군대에 가고 싶어."
 영철 : "난 정말 바보, 병신인가봐."
 병태 : "왜?"
 영철 : "이것 봐, 병태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언제 한 번이라도 합격해본 적이 있니? 중학교도 떨어지고, 고등학교도 떨어지고, 군대에는 불합격...거기다가 순자에게는 절교 선언 당했어."
 
확실히 이 장면은 음울하지만, 지금의 감각으로는 다소 과장되어 보인다. 비극적 정조에의 강박이랄까.삭제된 30분 분량의 누락 때문일까? 아니면 시대에 대한 공감의 결여 때문일까? 음울함을 더하는 김상배 작곡의 <날이 갈수록>이 이 대사 이후에 흐른다.

 

                                              바다로 이어진 방파제 위를 걷는 두 주인공들.
 
 

                                               나도 얘네처럼 남자 단 둘이서 바다에 간 적이 있다...썰렁했다....
                     
                           

 

영철 : "고래는 동해 바다에 있지만 내 마음 속에 있기도 해. 지금까지 그걸 몰랐었어. 난 지금부터 그것을 잡으러 갈거야. 난 용기를 보여주겠어. 그렇지 않고는 난 오늘의 날 지탱할 수가 없어......난 이제 떠날거야."

 

시대가 시대인지라, 이런 대사와 억양은 좀 닭살스럽다만...중요한 모티브이기는 하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과는 달리 영태는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 찾아 나선다. 그러나...마음속에 있기만 하고 현실에서는 없는 고래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같이 떠나자는 병태에게 "넌 학교로 가면 돼. 난 갈 데가 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결국 홀로 길 떠나는 영철은 동해 바다를 향해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는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학교로 돌아온 병태.



                                                   동해바다에 도착한 영철.
                                        "동해엔 예쁜 고래가 있어요. 그걸 잡으러 떠날 거예요..."

 
 

이 즈음에 흘러 나오는 송창식 아저씨의 목소리. "술 마시며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
왕년의 만취 후 합창 송 아닌가....
바다를 보며 감격에 젖는 영철. 이제는 고래를 잡으러 바다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결국,

                                 

                                                  고래 잡으러 자전거에 탄 채로 바다에 뛰어든다....
 

 

 

여기서 이 시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듯한 자살 장면은 어떻게 검열의 가위를 피할 수 있었을까? 사실을 말하자면 이 자살 씬은 검열을 피하지 못했다. 화삭(화면삭제) 대상이었던 거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장면은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었을까?

 

원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인호의 인터뷰에 의하면, 상영 당일 하길종과 최인호는 삭제된 필름을 창고에서 몰래 훔쳐내어 극장에서 이어 붙였단다. 최인호의 말에 의하면, 신상옥 감독이 예전에 이런 짓(?)을 했다가, 그의 영화사'신필름'이 없어져 버렸다고.


 


 

 

 

이 장면은 자살일까? 현실적으로는 그렇다. 현실적으로 그렇다니? 그럼 '비현실적'으로는? 자살이 아니다. 피안의 세계로의 도약이다.

어느 쪽이든 카뮈에 경도되었다는 하길종에게는 좀 납득하기 어려운 결말이다. 카뮈는 (그의 소설 '페스트'나 '이방인'에서 묘사하였듯이) 자살은 물론 '현실 너머 저 세상'에의 동경을 거부했으니까. 그렇다면 영철의 이러한 선택은 피상적으로는 자살이지만 내적 형식으로는 카뮈가 긍정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그 나름의 '반항'인 것일까 ?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감독이 다소 죽음을 남용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30여 분의 누락 때문이겠지만)당시엔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추다가' 간혹 자괴감에 젖기도 하는 위태위태한 청춘이기는 해도 그렇게 쉽게 죽음에 굴복한다는 설정은, 70년대의 한국영화들이 자주 그랬듯 비극적 정조에의 또 다른 남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근본에서부터 부조리(허망)할 수밖에 없는 삶'이 야기하는 조울증에의 이유(근원)를 (장발 단속이나 공권력의 권위주의적 태도 같은) 군사독재의 산물들에서 부러 과장해서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지 않은 건 아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군사독재를 합리화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정신분석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영철의 자조적인 태도에서 이미 정신병리학적 징후를 예견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영철의 죽음은 70년대라는 폐쇄적 공간 이전에 이미 구조적으로 결정되어있었다고 말이다. 실존주의자의 눈은 시대상과는 상관없이 이미 세계의 부조리성에 삼켜질 개인의 운명- 존재에의 결락감에 이미 배태되어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볼 지도 모르겠다.

 

이런 견해는 과연 70년대라는 시대 의식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일까? 중재하는 심정에서 얼추 말한다면, 감독이 의도한 무게중심은 정신분석학이나 실존주의에 있는 게 아니라 리얼하게 묘사할 필요가 요청되는, 당시의 암담한 대한민국의 현실이었을 거라는 점이다(하길종의 말에 의하면 이 장면은 4.19 의거의 정신을 짓밟은 박정희를 비판하기 위함이었다고). 억압의 현실을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서 현실에서는 결코 잡을 수 없는 '내 마음속의 고래'와 '바보'의 죽음이 요청된 것이고, 정신분석이나 카뮈-식 실존주의 따위(?)에는 일단 괄호를 칠 필요가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 그보다는 자연적 생존-생계 밖에 달리 고려할 방도가 없는 폭압의 현실 앞에서는 실존이라는 것 자체가 허망한 과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자신의 체험을 실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명랑과 우울이 혼재하는 형식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다지 이질적인 것도 아니다. 지난날의 나는 1년 365일 명랑하기만 했거나 반대로 오로지 우울하기만 했던가? 학창시절의 즐거움과 젊음의 허망감이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생의 곳곳에 수놓아지거나 파편처럼 박히기를 반복하지 않았던가. 마치 점묘화처럼 밝은 점과 어두운 점이 혼재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검은 점들이 흰 점들을 잠식한 듯한....

아니, 오히려 근본적인 허망감을 일회성 오락과 축제, 그리고 술잔치들로 망각하고자 했던 건 아니었을까?

 

                               휴강...무늬만 학생인 나 같은 이에겐 반갑기도하고 가끔 씁쓸하기도 했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입영열차에 탄 병태가 간만에 재회한 영자에게 말한다.

"걱정말라구, 영자야. 3년 후에 보자!"

허걱....3년.....

"병태야, 고개 좀 내밀어."

"뭐라구?"

"고개 좀 내밀라구!"

그러나 차창 밖의 영자의 입은 열차 안의 병태에게 닿지 않는다. 결국 착한 헌병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병태는 영자와 키스하는데 성공한다. 오랫동안 회자되는 장면이라고.

 

 

                                                         헌병 아저씨, 참 오지랖도 넓으셔.....
  
                                    

                                                     영화의 마지막 장면. 떠나는 입영열차...
 

                                    39세의 나이에 요절, 시대에 의해 희생당한 故 하길종 감독의 묘. 

    

자신의 진짜 예술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검열과 상업영화 제작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하길종 감독은, 9년 동안 시나리오를 준비한 <태인전쟁>을 끝내 만들지 못하고 39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하고만다.

 

"나에게 왜 좋은 영화를 못 만드느냐고 묻지는 말아주십시오. 나는, 아니 우리 모두가 이렇게 지탱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니까...."


 

                                                     UCLA에서의 하길종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