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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별 상관이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오랫만에 가진 졸업회원의 클기 동아리 모임은 다소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현실부적응 몽상가의 삐딱한 시각이었겠지만 당시 모임에서 내가 주로 들었던 대화는 직업, 진급, 아파트 매매가나 전세가, 아파트 청약 등에 관한 것들이었다.

물론 음악이 생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세속적인 이야기 소재가 딱히 나쁜 건 아니다. 다만 그 누구도 기타와 음악에 관련된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좀 더 나중에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말도 들었다.
"아직도 기타 치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이런 말도.
"기타줄이 모두 몇 줄이냐?"
꼭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한동안 졸업회원의 모임에 불참했던 것 같다.

 

 

세월이 좀 더 흐른 후 가진 모임에서 D선배님을 만났다. 그런데 기타를 잊은 대개의 다른 회원들과는 달리 오른손의 손톱을 길게 기르신 것이 아닌가. 궁금해서 "요즘도 기타는 계속 치시나 봐요."하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시는 거다.
"바빠서 도저히 기타를 칠 시간이 없어. 그나마 주말이 되면 무슨 모임이다 뭐다, 애들하고도 놀아줘야지…"
이런 말씀을 덧붙이신다.
"그래도 마음만은 기타와 멀어지지 않으려고 손톱은 계속 기르고 있다."

일 년전에는, 평소에 문자메시지를 전혀 보내지 않는 G선배님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지금 라디오에서 비발디 G장조 협주곡이 나온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아, 밥벌이가 다 뭔지….

 

 

간만에 들어 보자.

대의 만돌린을 위한 협주곡이지만 기타로 연주되는 경우도 많다.

 

 

 

 

한 달전에 친구인 박 모 씨가 골방에 20년동안 처박아 두었던 30호 기타를 가지고 찾아왔다. 젊은 한 때 화장실 변기 위에서까지 기타를 치던, 그리하여 이질적인 배설과 예술을 한순간에 구현한 아방가르드적 인간이었더랬다. 화장실 문 너머로 들려오던 <헨델 '유쾌한 대장간'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얼마나 인분의 향기가 실린 듯 하였던가.
"화장실에서 기타를 치면 잘 울려서 아주 좋다"는 것이 그가 밝힌 이유였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두 가지의 쾌락을 복합적으로 추구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귀와 항문의 쾌감을 동시에 구현한 인류 최초의 인간.

 

하지만 졸업 후에는 생업에 쫓겨서인지, 아니면 주색에 빠져서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결국 그는 손을 놓아 버렸고 기타 음악을 잊었다. "로망스도 잊어 버렸다"거나, "기타 줄이 대체 몇 줄이냐?"는 식의 한탄인지 너스레인지 모를 망언을 가끔 내뱉으며.
그랬던 그가 기타를 들고 음악 세계로의 귀환을 선언했다. 축하의 의미로 다다리오 줄과 튜너를 그에게 선물했다(물론 안 쓰던 것들이라 실은 그에게 '버린' 것이지만.ㅎㅎㅎㅎ).
엊그제 통화할 때는 타레가의 <라그리마>를 다 쳤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리고 같은 동아리 출신인 K 모 씨도 몇 년전부터 제대로 기타에 푹 빠졌다. 어제 찾아간 <우드사운드>에서는 선수(직업 연주가)이시냐는 얘기까지 들었다. 부질없게 이상치를 너무 높게 잡지 않는 한, 노력은 배반을 하지 않는다.

 

 

 

 

과거의 추억에 집착하는 것은 긍정적일 수만은 없겠지만, 과거의 소중한 그 무엇을 유지하거나 되찾는 것은 종요로운 일이다.
부암동의 어느 집 대문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
소년에서 거장으로.

 

소년에서 거장으로 닿지 못해도 좋다. 심미적 쾌락주의자가 될 수만 있다면 설령 복합 쾌감의 변태가 된다 한들 어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