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좌충우돌 잡글쓰기

개도둑

 

 

프랜시스 다윈은 자신의 아버지인 찰스 다윈을 회상하며 이렇게 썼다.

 

"다른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마음을 크게 아프게 한 두 가지는 동물과 노예에 대한 가혹한 태도였다. 두 가지에 대한 아버지의 혐오감은 매우 강했고, 이러한 문제들에 경솔한 태도를 나타내거나 감정이 결여되어 있을 때 아버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우리 동네는 개 절도 사건이 유별나게 잦다. 동네의 진도개가 싸그리 사라진 일도 비일비재하다. 나는 이런 개도둑들에 대한 혐오감이 매우 강하고, 개를 훔친 후 보신업계의 식재료로 팔아 넘기는 행태를 보면 분노는 극에 달한다.
모든 이들이 개를 '반려견'으로 키우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이 '식구'처럼 여기며 개와 같이 산다('식구'라는 말이 거슬리면 '반려'라는 말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마치 파트라슈와 동거하는 네로처럼 말이다. 뒤마 피스의 <라 트라비아타(춘희)>에서 착한 여자 마르그리트는 이렇게 말한다.

 

"바보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전에 강아지를 한 마리 기른 적이 있었어요. 그 개는 내가 기침을 할 때마다 슬픈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는 거예요. 그 강아지는 내가 사랑한 단 하나의 존재였어요. 그 개가 죽었을 때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슬피 울었어요. 어머니가 계신 12년간 저는 매만 맞았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그 개처럼 금방 당신이 좋아진 거예요."

 

'개처럼 당신이 좋아진 거'라는 말이 경우에 따라서는 최고의 고백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개를 '개같이'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고백을 하면 어떤 반응을 얻어낼지 예상되고도 남음이 있지만.
이처럼 누구에게는 소중할 수밖에 없는 식구, 혹은 반려의 대상을 물건처럼 절도를 해서 식재료로 팔아넘기는 행위를 일반 절도범의 행위와 동급으로 취급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내 개를 죽였을 때 적용되는 법률이 바로 '재물손괴죄'다. '재물손괴'라니, 참으로 경제 논리가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사회답다. 하긴 '인력자원부'라고, 사람을 자원으로 취급하는 곳에서 뭘 기대하겠냐만.

 

 

 

 

학원에 적을 두었을 때 어떤 50대 학원생 아저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 감기 걸렸을 때 보신탕이 효과가 좋다는 거 아십니까?" 이어서 이런 말을 했다. "그게 왜 그런지 아십니까? 보신탕에 쓰일 개들 중에는 전에 주인이 있었지만 버려진 개들이나 개도둑이 훔친 것들이 아주 많거든요. 원래 주인이 있었던 개들이라 아플 때마다 동물병원에서 항생제 처방을 했다 아닙니까. 그 항생제 때문에 감기에 잘 듣는 겁니다."
의학에 문외한인 나는 이 얘기에 얼마만큼의 의학적 사실이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식재료가 되는 개들의 상당수는 원래 주인이 있는 개들이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약육강식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합리화를 하기 이전에 먼저 식재료가 될 파트라슈를 생각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네로와 아로아를 생각하기를 바란다. 뭐, 개도둑 따위의 '양상군자'축에도 못 끼는 말종들에게는 우이독경일 뿐이겠지만.
그리고 또 한 부류의 말종들…. 훔친 개인줄 빤히 알면서도(왜냐하면 이런 식의 '공급'은 이미 관례가 되어 있으니까) 개도둑들에게 식재료를 공급받는 점주들. 양질의 식감을 위해 나무에 매달아 죽을 때까지 패는 개백정 18놈들.

 

인간의 순간적인 미각의 쾌락을 위해 한 생명에게 극도의 공포와 고통을 가하는 것이 약육강식의 자연 법칙이라는 명분으로 합리화 된다면, 인간의 윤리라는 건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계약 가능한 인간들 사이에서의 사회계약 차원으로 하향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