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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나이 먹을수록 빨리 가는 시간

 

 

 

위의 글을 읽다보니 문득 심리학자 다우베 드라이스마의 저서 <나이 먹을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에 소개된 내용이 떠오른다. 다우어는 많은 자서전을 분석한 결과 다음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한 권의 자서전에서 가장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는 시기가 대충 15~25세라는 것. 오래전에 읽은 거라 숫자의 정확성은 장담 못하지만 대충 이 정도 시기다. 이에 반해 나이를 먹을수록 자서전에서 차지하는 분량이 대폭 줄어든다고.

 

나이를 먹으면 인생의 다채로움이 줄어들어 일상의 반복이 타성이 되어버리는 탓일까? 다우어의 저서에서 기억하고 있는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사춘기 시절과 청년 시절은 우리의 '첫'경험들로 가득하다는 거다. '첫경험'을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이나 '오랫동안 깔고 앉아 감각이 없어진, 애인을 대신하던 오른손의 추억'같은 성(性)스러운 것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며 자신이 이유없는 반항아 제임스 딘이나 주윤발이라도 된 양 꼴값을 떨었던 것, 처음으로 당구의 세계에 빠져들어 사각의 실내에 있는 사람의 머리가 당구공으로 보였던 것(그리고 짜장면은 당구장에서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것), 처음으로 클래식기타와 해당 음악에 빠져들어(그것이 '작업'도구로서의 유용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었건, 순수하게 좋아했건 )미친듯이 연습하다가 어느 순간 후배 최X훈의 말마따나 '마음은 야마시타인데 몸은 최X훈'임을 깨닫고는 탄식했던 것, 등등….

 

어디 자서전만 그럴까. 사랑을 주제로 한 대중가요 가사에서 내용의 화자는 대게 젊은이가 아닌가. 뭐, 고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같은 곡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아, 이 얘기는 좀 주제를 벗어난 것 같다.

물론 첫경험은 유년시절이 더 다채로웠겠지만, 방년의 나이, 특히 약관의 나이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기억하는 것은 태초부터 주어진 금기의 감옥에서의 형기를 막 마치고 출소한 제소자의 기대와 설렘이 덧대어진 탓은 아닐는지. 한마디로 알 건 다 알고 할 건 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 것만 같은 시기이기 때문이랄까. 뭐, 아님 말고.


 

 


원래의 얘기로 돌아가자. 방년의 나이를 지나 경험하는 모든 것이 '첫경험'이 될 수 없어 대개가 타성으로 전락하고 마는 시기가 오면 시간은 '후다닭' 지나간다. 비슷한 경험들의 총체인 일상이 비슷한 모습과 느낌으로 켜켜이 포개어지면서 그 쌓인 만큼의 두께를 잃어버리는 거다. 아니, 두께'감'을 상실하는 거다.

물론 이게 나이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위 내용은 다우어가 밝힌 여러 원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어쩌면 누군가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거다. "나이를 먹을수록 삶이 권태로워진다는 얘기인데, 권태를 느낄수록 시간은 더 천천히 흘러야 하는 것 아닌가?"
아마 그럴 거다. 운우지정의 시간보다 감옥 독방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방안에 앉아 멍하니 있는 건 아니다. 직장이든 가사든, 대개 일에 쫒기며 살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일상들이 반복의 연속이라는 거다. 경험상, 일상적인 하루보다는 여행을 하는 하루가 더 길게 느껴진다. 오감이 일상에서 받아들이는 정보보다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다우베의 얘기다.


그러니 장수의 개념도 조금은 바뀌어야하지 않을까.시계의 '객관적 시간(Chronos)'이 아닌, 나만의 유의미한 '주관적 시간(Kairos)'을 늘리는 쪽으로 말이다. 일생을 다람쥐 쳇바퀴 같은 엇비슷한 생활로 채우다가 사망한 100세 노인과 일생을 여행으로만 채우다가 사망한 60세 노인 중 누가 더 일생을 체감적으로 더 길다고 느낄까?
뭐 그렇다고 일생을 여행으로만 채울 수 있는 인간이 몇 %나 될까. 그리고 어떤 작가 말마따나 '필사적으로 갈망한 새로운 것에는 숙명적으로 실망이 내재되어 있다'거나, '변하는 게 많을수록 변하지 않는 것도 많다'는 식의 반론도 가능할진대.
역시 외적인 여행이 여의치 않다면 내면의 여행을 떠나…라고 입은 말하고 싶어하지만, 대뇌는 자기 주제를 잘 알기 때문에 닥치라고 명한다.

 

 


 

족 같은 얘기.
일생을 아무 행위도 안 하고 멍~~~하니 살면, 과연 체감 시간은 느리게 흐를까? 적어도 멍하니 있는 순간 순간은 그렇게 느껴질 거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 죽기 직전에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도 그렇게 느껴질까? 추측하건대 돌이켜 바라보는 그런 과거가 대체로 다채로움의 빛을 상실한 탓에, 두꺼운 분량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 페이지마다 비슷한 내용만 반복되어 결국 적은 양의 정보만 머릿속에 남게 되는 그런 얄팍한 책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 알팍한 책을 보며 "정말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았어..."하고 탄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느낌은 현재가 아닌 이미 지나간 과거를 대상으로 하여 감지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다우베는 이런 언급도 했을 것이다. 날림으로 읽은 탓인지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런 견해는 한갓 시간이라는 차원을 공간적인 그것으로 치환하여 생각하는 데서 발생한 오류일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단색조였건 다채로웠건 어떤 식의 인생이든 일단 돌이켜 생각하면 회상과 망각이 비슷한 비율로 뒤섞여 대체로 비슷한 분량으로 오그라드는 건 아닐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불혹, 혹은 지천명의 나이에 이른 후의 삶이 실팍함으로 가득할 것만 같은, 그리하여 자서전에 써넣어야할 무언가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은 이 운명의 예감. 아니, '운명'이라는 말은 어감상 너무 무겁다. 팔자라고 해야 할까.

자서전은 무슨 얼어죽을 자서전. 불시에 병풍 뒤에서 향 냄새 맡을 가능성이 항존하는 인생. 유서 혹은 묘비명이나 미리 준비해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