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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구매욕에 대하여

 

 

대략 16년 전 즈음의 일이다. 길을 가는데 인근 레코드샾에서 외부에 설치한 스피커를 통해 강렬한 음악이 나오는 거다. 그 자리에 서서 그 음악을 끝까지 들었고, 라디오 디제이를 통해 그 노래가 자넷 잭슨의 Black cat이라는 걸 알았다. 곧장 레코드 샆으로 들어가 판매원에게 말했다. "지금 방금 나온 음악, 주세요~~"


내가 듣는 팝/롹 음악의 90%는 소위 'white music'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이다. 블루스를 듣지 아니하는 건 아니지만, 보다 대중적인 힙합 같은 건 거의 안 듣는다. 랩도 별로 안 좋아한다. 다만 RATM처럼 랩을 하는 롹음악은 예외다. 이러니 마이클 잭슨의 음악도 일렉트릭 기타가 제법 비중을 차지하는 음악만 듣는다. Beat it이나 Black or white같은.

 

 

              마이클 잭슨의 <Black or white> 우~~~너무 멋져


 

같은 이유로 자넷 잭슨의 그 음반을 사서 오로지 이 곡 Black cat만 반복해서 들었다(자넷의 보컬도 멋지지만 사실은 버논 레이드의 기타 연주에 홀려 그랬다. 노래 중간중간에 나오는 소위 '오부리'는 '캬~~'소리가 나온다). 돈만 지불하면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는 요즘에 비교하면 한 곡을 듣기 위해 큰 돈을 쓴 셈이다. 이런 음반이 한두 개가 아니다. 오로지 한 곡을 듣기 위해 산 음반들이 부지기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다고 해서 돈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월 수입이 25만 원이었던 시절이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다가 가끔 '오, 이 음악 멋진데? CD를 사야겠다.'고 결심하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대부분 생각으로만 그치고 만다. 결국은 CD는 커녕 mp3도 구입하지 않은채 잊힌다.
유튜브나 연주회를 통해 '오, 이 기타 음악 멋진데? 악보를 사야겠다'하고 생각하지만 그때 뿐이다.



   자넷 잭슨의 <Black cat> 여자한테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박력이 넘친다.
 

 

1990년대 초반, 그러니까 기타 악보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안토니오 라우로의 <El negrito>악보를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하여 다닌 적이 있다. 당시 하남시에 있었던 알마 기타 공방에 라우로의 악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서 사정 얘기를 하여 라우로의 악보와 덤으로 토루 타케미쓰의 기타 편곡 작품들도 얻을 수 있었다. 기대했던 <엘 네그리또>는 없었지만.

뭐든지 구하기가 훨씬 수월해진 작금에도 CD나 악보를 구매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다만 행동에 옮기지는 않는다.

언젠가 동창이었던 한 친구가 드럼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비용이 많이 드는 건 아니니까 학원에 등록하라고 얘기하자, 그가 대답했다. "그러면 좋겠는데....시간이 없네. 회사 마치고 오면 헬쓰장이나 수영장에 가야 하고 주말에는 산악회 회원이랑 산에 가야하거든."
이 친구의 진심, 그러니까 진짜 마음은 아마 이런 것이리라. '드럼을 배우고 싶은데, 사실 그렇게 배우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런 건 내게도 해당되는 얘기일듯 싶다. '저 CD와 악보를 사고 싶지만, 사실 그렇게 사고 싶은 것은 아니다.'


몇차례나 인용한 바 있는 스피노자의 글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본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안, 사실은 그것을 하기 싫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행되지 않는다." 이 말을 조금 비틀면 다음과 같다. "뭔가를 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실행이 되지 않는다면, 사실은 그것들을 사기 싫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돈이 없어서라면 또 모를까.


진짜 정말 진심으로 really 혼또니( ほんとうに) 행하고 싶으면 결국 행한다. 어쩌면 욕망이란 끊임없는 자기기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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