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공대('軍'大, 工兵학과)에 재학 중이었던 22세 때, 권력의 끗발을 봤다.
어느날인가 송충이가 고작 6마리밖에는 안 되는 어떤 인간이 무궁화를 단 높으신 분 앞에서 들으라는 듯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여기 '총장'은 돈을 무진장 잘 버나 봐. 차가 그냥…어휴."
이 말의 속내는 이거다. '그 월급으로 어떻게 저런 차를 굴리지?'
이 속내의 함의는 이거다. '가욋벌이가 짭짤하면 (나한테)분배 좀 하지 그래?'
그와 비슷한 시기에 타 K대의 '총장'이 내부 고발자에 의해 비리가 적발된 적이 있다. 어느날 때마침 일이 있어 잠깐 들른 XX과 사무실에 무궁화 한 개를 부착한 모자를 쓴 채 '모 과장'이 찾아왔다. 일요일이면 빠짐없이 교회를 가던 그가' XX과'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친절하게)야, 기사 봤지? 니들은 쟤들(옆 동네 K대)처럼 꼰지르고 다니면 안 된다. 알았지?"
교회에서 '이사장'을 보았을 때 그가 주일을 지켰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K대'에 재학하면서 공적인 서류의 70% 이상이 당시 말로 '가라(가짜, 허위)'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엄격해야할 K대가 이 정도라면…세상의 이익 집단들은 어떨까?'
물론 이런 추론은 지양해야할 '일반화의 오류'다. 세상에는 제대로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총장'들이 있다. 어쨌거나 당시에는 정말 그런 의심이 들었다. 어떤 논리적 인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2년 동안 같은 K대 안에서 두 명의 '학우'가 사고사했고(나는 조포를 쏜 기억도 있다), 한 '후배'는 사고로 인한 뇌출혈로 의가사제대를 했다. 전역하는 날, 육군수도통합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아니, 그는 의식불명이었으므로 내가 일방적으로 '봤다'고 말해야 옳다.
이것 이외에 (죽음에 비하면)사소한 사고와 탈영은 너무 잦아서, 당시 우리 'K대'의 구호는 이랬다.
'목표 : 무사고 100일.'
행정을 담담했던 나는 내가 있었던 곳의 '학과장'이 상급기관에서 지급하는 문구 구입을 위한 10만 원 남짓하는 보조금까지 횡령하는 걸 봤다. 이후, 새로 부임한 '학과장'은 아주 정직하고 온정이 있는 사람이었는데(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에게 아침을 먹었느냐고 물었고, 먹었다고 대답하면 "니들, 아침밥 메뉴가 시원찮아서 안 먹는 거 다 안다. 매점에 가서 니들 먹을 것 좀 사와라."고 하며 우리에게 만 원짜리를 건내곤 했다), 그가 우리들에게 그 비용에 대한 사용을 다 일임했을 때 진심 그것이 '예외적인' 행위처럼 느껴졌다.
하루는 상급기관에서의 '음어 시험'이 있었다. 어떤 비밀 암호문을 보고 주어진 문장을 해독하는 시험이다. 그 비밀 암호문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일주일 단위로 바뀌어 상급기관에서 우리 하급기관에게 비문(비밀문서)으로 하달되었는데, 나는 실수로 시험을 치르러 가는 '학과장'에게 지난 주의 것을 건네주고 말았다. 시험 결과는 당연히 0점.
그가 얼굴을 붉히며 돌아온 뒤 내게 한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크지 않은 목소리로)야, 엉뚱한 거 가지고 가서 완전히 개망신 당했다." 구긴 표정을 다시 원래의 선한 표정으로 되돌리며 그가 말을 이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나를 향한 질책의 전부였다.
내가 'K대'에서 본, 두 분의 인격자 가운데 한 분이었다(나머지 한 분은 같은 '강의실'에서 지냈던 '선배'였다).
K대를 졸업한 후, 한 '후배'를 통하여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슬픈 대신 멍했다. 미련하게도 그것이 마치 어떤 소설적 상징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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