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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메모

'그지' 쌤

효선(가명)이의 작품

 

원주천 다리 아래 움막에서 살고 옷은 의류수거함에서 빼내서 입고 다니며 우유는 편의점에서 유통기한 지난 것을 얻어먹고 다닌다고 얘기한 이후로 (사실 곧이곧대로 믿지도 않으면서) 나를 '그지 선생님' 취급하는 초딩 여학생이 이번에는 상한 바나나를 주워 먹고 탈이 나서 병원에 실려가는 모습을 칠판에 멋지게 남겨주었다. 그림을 보고 나서 내가,


효선(가명)이는 나중에 일러스트나 웹툰작가가 될거야
라고 말했더니,

 

싫어요 왜 선생님이 제 꿈을 정하고 그러세요?
라고 반발하는 게 아닌가. 하여 되묻기를,


"그럼 네 장래 희망이 뭔데?"
"의사 될 거여요."
"의사? 그건 공부를 잘 해야 되잖아?"
"저 공부 잘 해요!"
"잘 한다고! 근데 기타는 왜 이래?"
"기타하고 공부는 별개죠!"
"아니야. 내가 5백 명 정도 레슨해 봐서 아는데 공부 잘 하는 애들이 기타도 잘 해."
"그건 편견이죠!"
"좋아. 네가 20년 후에 의사가 되었다고 치자. 네가 그린 그림처럼 언젠가 병든 내가 의사인 너를 찾아가서 '효선아...오랜만이구나. 콜록콜록...나를 기억하지? 내가 병에 걸려서 너를 찾아왔단다.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움막에 사는 거지라 치료비가 없구나...'라고 말하면 넌 어떻게 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칼에,


"내쫓을거예요."


이 귀여운 초딩이를 어쩐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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