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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리뷰

노르웨이의 숲

 

 

 

전세계적으로 1000만 부가 넘게 팔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대박 베스트셀러, <노르웨이의 숲>. 한국에서는 <상실의 시대>라는 촌빨 날리는 제목으로 빅히트를 쳤던 작품이다.

20대 시절에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소감은 '역시 대박이 날 만하게 재미있다'는 것과, '오바질 쩐다'는 일종의 양가감정이었더랬다. 후자의 경우, 나로서는 도시 납득할 수 없는 자살과 성애의 남용이 다소 거북하였더랬는데, 특히 소설 말미의, 자그만치 50곡을 암보하여 연주하는 명 기타리스트 레이코 여사와 와타나베의 뜬금없는 동침 씬은 문화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기괴하다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었더랬다. 대체 이 씬의 의미는 대체 뭘까? 아니, 이 씬이 꼭 요구되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러니까 위화감의 정체는 이거다. 스와핑 경력의 호색한, 혹은 색마 와타나베의 사생활과 소설 전반에 흐르는 비극적 정조와의 불협화음. 뭐, 물론 그게 젊은 시절의 일면일 수도 있다만……

 

 

 


이름이 비슷한 무라카미 류는 언젠가 소설의 주제 따위를 딱히 의식하고 쓰는 것은 아니라고 말 한 적이 있다. 작품의 주제를 찾는 건 평론가의 몫이란 얘기다. 좀 다른 얘기이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판이한 평론가의 평론에 대해 작가 박민규는 '누구나 저 꼴리는대로 쓸 권리가 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하루키는 작가로서 <노르웨이의 숲>을 '저 꼴리는대로 썼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런 게 제일 경이롭기는 하다. 저 꼴리는대로 했는데 만인이 좋아한다는 거. 예컨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네버 마인드> 앨범의 상업적 성공이 맘에 안 들어 그 다음 음반인 <인 유테로>는 저 꼴리는대로 곡을 썼다고 한다. 음반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빌보드 차트 1위.
<노르웨이의 숲>이 전세계적으로 초대박을 친 이유는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당한 비판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도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 충족을 위한 글은 쓸 자신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히트를 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

 

트란 안 홍 감독의 영화, <노르웨이의 숲>을 봤다. 네티즌들의 불만은 거개가 '원작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거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참으로 영화감독 노릇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20세기 소년>은 각색이 무의미하게도 원작을 너무 그대로 베꼈다고 비난 받는 걸 보면, 이 세상은 극히 일부의 사람을 제외하곤 거개가 '저 꼴리는대로' 해서 욕을 먹기 마련인가 보다(욕을 바가지로 먹더라도 저 꼴리는대로 살다가 죽을란다. 예컨대 <쥐와 닭의 종말을 위한 소나타, 작품번호 18>이나 <십상시 변주곡>을 쓴다든가…).

 

 

 

 

어떤 평론가는 이 영화를 이와이 슈운지나 고레다 히로카즈가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내 생각에는 이와이 슈운지는 몰라도 고레다 히로카즈라면 이 영화의 연출을 마다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또 트란 안 홍 감독이 딱히 연출을 잘 못했다고 보지도 않는다. 영화라는 대중적 시각 매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성애 씬은 생략하거나 다소 한정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예컨대 원작에서의 구강 성교라든지, 혹은 레이코 여사가 피아노 선생이었던 시절에 어느 여학생에게 성적으로 유혹 당하는 장면 같은 것이 그러한데, 후자의 경우는 아마도 플롯 진행상 반드시 요구되는 설정이 아니라고 판단한 듯 싶다. 나는 오히려 트란 안 홍 감독의 연출력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그렇다고 훌륭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지만) 원작 자체의 무리한 설정에 불만이 많은 편이다. 성애가 과도한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그런 설정이 반드시 필연적인 것이었나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의 숲>은 청춘 시절을 아프게 추억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소설들은 적어도 내겐 이런 식의 애증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아, 그리고 영화음악은 꽤 멋졌다. 그리고 극중 쿄토 어딘가로 설정된 아름다운 숲 역시.

 

 

 

 

※사족 :
영화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에서 아래의 씬은 참으로 인상 깊다. 미도리와 와타나베의 코와 입술의 크기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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