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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리뷰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나는 두 번을 읽었다. 한 번은 3년 전에 읽었고, 또 한 번은 2014년 4월 16일 이후에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저 가슴이 따뜻해지는 정도의 다소 밋밋한 소설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이 어느 정도 지난 시점에서 다시 읽었을 때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과 중첩되어서인지 너무나 절절히 다가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포일러 주의)


가정주부인 앤은 머잖아 여덟 살이 되는 아들 스코티의 생일을 위해 쇼핑센터에 있는 빵집에서 케이크를 주문한다. 며칠 후 월요일 아침에 케이크를 받으러 잠깐 들르면 될 터였다. 하지만 월요일 오전에 앤은 아들 스코티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너무 놀라서 급히 병원으로 향한다.


중태인 스코티의 병실을 앤과 교대로 지키던 남편 하워드는 몸도 씻고 옷도 갈아입을 겸 잠시 집에 다녀오기로 한다.하워드가 집에 도착한 직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수화기를 들자 “케이크 왜 안 가져가는 거요?”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내가 케이크를 주문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하워드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따진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 이 말을 들은 하워드는 잘못 걸린 전화라고 생각하여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다시 울려오는 전화벨 소리를 뒤로 한 채 집을 나선다.


며칠 후 이번에는 아내 앤이 잠시 집에 들르기로 한다. 집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머릿속에 온통 아들 스코티 생각밖에 없는 앤은 수화기 너머로 자신을 찾는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는 “예! 무슨 일이죠? 제가 와이스 부인이에요. 접니다. 무슨 일인가요? 스코티 얘기인가요? 그런가요?” 라고 다급하게 묻는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남자는 “스코티 맞습니다. 스코티 얘기요. 그래요. 스코티랑 관계가 있죠, 그 문제는. 스코티 일은 잊어 버리셨소?”라고 비아냥거린 후 전화를 끊어 버린다. 남자의 정체를 미처 깨닫지 못한 앤은 의구심을 품은 채 병원으로 향한다.


얼마 후 중태였던 스코티는 사망한다. 하워드와 앤은 집에 돌아오고 슬픔에 빠진다. 이때 또 전화가 걸려온다. 별 말이 없자 앤은 원하는 게 뭐냐고 소리친다. 수화기 너머의 남자가 비로소 말한다. “당신의 스코티 말이요, 당신 때문에 내가 그 애(꺼)를 준비해 놓았소. 스코티를 잊어버렸소?” 앤은 소리친다. “이 못된 새끼야! 네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이 못된 자식아!” 하지만 남자는 덤덤하게 대꾸할 뿐이다. “스코티 말이오. 스코티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린 것 아니오?”라고 말하고는 남자는 전화를 끊는다. 앤은 하워드에게 “그 개자식, 죽여 버릴 거야. 총으로 쏜 뒤에 버둥대는 꼴을 보고야 말 거야.”고 말한다. 그러다가 문득 남자의 정체를 깨닫고는 격분하여 남편과 함께 쇼핑센터로 향한다.


한밤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그들과 대면한 빵집 주인은 “왜들 이러는 거요? 케이크 때문에 그러는 거요? 맞아, 이제야 케이크가 필요해진 모양이군.”하고 빈정거린다. 앤은 “그렇게 똑똑한 머리로 빵집이나 하고 있으니 참 안됐군요.”하며 응수한다. 빵집 주인은 싸우고 싶지 않으니 저 상한 케이크라도 필요하다면 반값만 내고 가져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는 밤중에 일을 해야 하므로 이제 좀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앤은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린다.

“우리 아들은 죽었어요.(…)월요일 아침에 차에 치였어요. 우리는 아이가 죽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봤죠. 물론, 당신이야 그 사실을 알 수 없었겠죠? 빵장수라고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었을 테니까.(…)어쨌든 그 애는 죽었어요. 죽었다고, 이 나쁜 놈아!” 그리고는 흐느끼며 말한다. “너무하잖아, 이건 너무 하잖아.” 남편 하워드는 빵집 주인에게 말한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부끄러운 줄을."

 

 

 


 

내막을 모두 알게 된 빵집 주인은 의자를 내밀며 그들에게 잠시 앉으라고 권한다. 앤은 “당신을 죽이고 싶었어요.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한다. 빵집 주인은 정중하게 사과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소. 내 마음이 어떤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거요. 내 말을 잘 들어요. 나는 빵장수일 뿐이라오. 다른 뭐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소.(중략) 지금은 그저 빵장수일 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무튼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자제분에게 일어난 일은 안됐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런 식으로 행동한 제 자신에게도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내게는 아이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지금 당신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간신히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라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미안하다는 것이오. 용서해 주십시오, 제발.(중략) 내 진심을 받아주고 나를 용서하면 안 되겠소?”


작가 레이먼드 카버는 그 다음을 이렇게 묘사한다. 직접 인용한다.


빵집 안은 따뜻했다. 하워드는 탁자에서 일어나 외투를 벗었다. 그는 앤이 외투를 벗는 것을 도왔다. 빵집 주인은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에서 일어났다.(…)“뭘 좀 드셔야겠습니다.”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갓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롤빵이 여기에 다 있으니.”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러고 나서 빵집 주인은 자신의 살아온 얘기들을 하기 시작한다. 중년의 무력감과 회한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시절을 아이 없이 보낸 것의 외로움에 대해서.
반목을 넘어서 서로에게 공감을 하는 장면을 레이먼드 카버는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묘사한다.

 

“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 주인이 말했다. “뜯어먹기 힘든 빵이지만, 맛은 풍부하다오.” 빵 냄새를 맡은 그들에게 그가 맛을 보게 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더 이상 먹지 못할 정도로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그건 형광등 불빛 아래로 들어오는 햇살 같았다. 그들은 새벽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소설은 끝난다.

 

이 단편을 읽은 후 한동안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광화문에서 단식하던 세월호 유족들 앞에서 조롱하듯 햄버거와 치킨을 쳐묵쳐묵 처먹던 또라이들과 SNS 따위들을 통해 유언비어를 유포하며 유족들을 거듭 짓밟던 이들, "가난한 집 애들이 경주나 갈 것이지 왜 배는 타가지고…"운운하던 기독교 목사, 그리고 가짜 유족으로 쇼를 하고 진상 규명을 한사코 거절하는 박근혜와 그 정부를 그래도 잘한다며 두둔하던 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빵집 주인의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경우에는 타인의 마음에 못을 박는 행위가 된다. 하물며……
앤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 못된 새끼야! 네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이 못된 자식아!”

 

 


 

[광화문에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자 시민이 다가와 끼우고 있던 장갑을 건넸다. 은화 엄마가 딸은 더 추운 곳에 있다며 한사코 거절하자 "이러면 국민들이 더 아파합니다."며 끼워줬다.]

그리고 오늘, 위의 사연을 듣자 다시 레이먼드 카버의 이 단편소설이 생각나며 가슴 한 켠이 시큰해진다. 저 어머니의 슬픔과 억울함이 어디 장갑 한 켤레로 해소될 것이겠는가. 그럼에도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것임에 믿어 마지않는다. 부디 그 어머니에게도 그 장갑이 소설속의 검은 빵처럼 ‘형광등 불빛 아래로 들어오는 햇살’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

세상은 이래야 한다.

 

 

 

 


또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연탄 한 장>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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