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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메모

노안 도래

고딩 시절, 수학 시간에 딴 짓 하다 걸려서 벌로 교실 뒷편 벽쪽에 서서 수업을 들었을 때다. 10분 쯤 그러고 있는데 수학 쌤께서 뭔 심술이 나셨는지 칠판에 적힌 수식을 가르키며 "거기 맨 뒤에 서 있는 놈, 이 y의 값이 뭐냐?"고 내게 질문을 던지시는 거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칠판 위의 수식들을 잠시 쳐다본 후에 말했다. "(눈이 나빠서) 글자가 잘 안 보여요…."

 

그러자 쌤께서 좀 앞으로 나와서 보라고 나를 다그치셨다. 나는 교실의 중간 쯤 다가가서 다시 실눈으로 칠판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래도 안 보이는데요…."

그러자 쌤께서 다소 언성을 높이시며 "그럼 이 앞까지 와서 보면 되잖아!"라고 말씀하시는 거다. 나는 할 수 없이 책상의 맨 앞 줄까지 다가간 다음 칠판의 수식들을 잠시 훑어 본 후에 당당하게 대답했다.
"모르겠는데요."
결국 따귀를 맞았다....

 

이젠 구라를 안 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안 보인다고!

 

중년 아저씨들이 웹툰을 안 보는 이유는 그들의 정신적 성숙도 때문이 아니라 단지 노안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아래의 글씨 크기만 되어도 잘 안 보인다.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뭐 어쨌다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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