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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마인 부우를 향해




'호문클루스'라는 제목의 일본 만화책이 있다. 뭔 뜻인지 몰랐었는데 약 3년 전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수의대 대학원에 적을 둔 한 후배로부터 그것의 뜻을 전해들었다. 의학에서는 각 신체의 부위를 뇌에서 담당하는 크기의 비율에 맞춰 그림으로 형상화해 놓았는데, 보다시피 입술과 손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가장 크다. 각각 말하고 일하는 데 사용되는 부위이다보니 보다 정교한 뇌의 작용이 요구되기 때문일 거다(아님 말고....).


약 3년 전에 뇌의 혈류 이상으로 인해 이 '거대한' 오른손을 담당하는 신경에 이상이 생겨 완전히 '초기화'되었었다. 발병 직후 회복 한계 시간인 3시간을 그만 훌쩍 넘어 미련하게도 거의 10시간 만에 병원을 찾았으니 신경세포의 사망은 물론 이미 그것의 장례식까지 다 치뤄버린 상황이랄까. 그런 지경이었으니 키보드를 치거나 글씨를 쓰는 동작을 비롯, 결정적으로는 기타줄을 탄현하는 능력 전체가 소멸되어버릴 수밖에.

퇴원한 직후 집에서 기타 연습을 나름 시도해 보는데, 카르카시 기타 교본의 앞쪽에 나오는 그 쉬운 'Andantno' 연습곡조차 연주 불가. 그럴 것이, 신경세포가 완전히 죽어버린 오른손으로 기타를 칠 때의 느낌이 마치 왼손으로 기타줄을 탄현할 때의 어색한 감각 그대로였으니 될 리가 만무했다. 왕초보였던 1983년의 오른손에 비교해 크게 나아 보이지 않았다. 2만 원짜리 합판기타로 코드 3개짜리 <에델바이스>를 '뚱땅'거리던 그 시절 말이다.


'아이, 시발, 시발, 시발.......'하며 멘붕 상태였을 때, 수의학을 전공한 그 후배가 말했다. 한번 죽은 신경은 돌아올 수 없지만, 신기하게도 대신 다른 신경이 연결되니까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재활하라고.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막상 도전해 보니 '꾸준히'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슬램덩크에 맛을 들인 강백호에게 다시 처음부터 드리블만 연습하라고 하면 그가 꾸준히 할까? '원기옥'을 익힌 적이 있는 손오공에게 앞차기부터 다시 수련하라고 하면 그가 열심히 할까? 천재인 그들도 못하는 걸 범인이 어찌...
그래서 연습은 더뎠다. 거기에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지 손가락의 손톱이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자꾸만 1번줄에 걸리는 증세(?)가 있었는데, 가뜩이나 비틀비틀거리며 주행하는 폐차 일보직전의 자동차 같은 연주가 급정거하게 되면....'18'을 한 열여덟 번 외치고 기타를 내던져버렸다(물론 소파 위에). 이런 현상은 대략 1년간 지속되었다. 그동안 외친 '18'은 못해도 18000번은 족히 되고도 남을 거다. 평생 써먹을 '18'을 1년동안 다 써먹었다. 


'꾸준함'과는 거리가 먼, 하지만 좋게 봐주면 나름 '폐업 상태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연습을 3년간 지속했다. 그리고 올해 11월....길이 보인다. 드디어 슬램덩크, 혹은 '원기옥'을 연습할 수 있을 정도는 된 거다. 손가락이 말을 듣기 시작한다. 이게 다 라우로와 빌라 로보스, 그리고 소르 덕분이다. 아니, 공짜로 유튜브에 레슨 동영상을 공개한 무명의 기타리스트들 덕분이다(갓 브레스 유). 문득 <드래곤볼>에서 마인 부우를 퇴치하기 직전, '미스터 사탄'의 절실한 외침이 떠오른다. "지구 사람들아! 손을 들어 기를 모아줘!" 유튜브의 무명 기타리스트들의 기를 나는 분명히 받았다. 그리하여 발병 이전의 상태를 이제 75% 정도 회복한 것 같다. P-m-i-m의 트레몰로만 어느 정도 속도가 나와주면 100% 회복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리라.



기쁜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실망도 든다. '뭐야, 고작해야 내 오른손의 전투력(?)은 겨우 3년짜리 수련만으로도 가능한 수준의 것이었단 말인가.....'  예전에 적을 두었던 기타 학원에 기타를 배우러 찾아온 분들 중에 간혹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선생님, 제가 기타를 거의 삼십 년을 쳤거든요." 실제로 이런 분들의 연주를 들어 보면, 대충 견적(?)이 6개월에서 1년 정도 나온다. 그 정도 시간이면 이를 수 있는 레벨인 거다. 그러니까, 이런 분은 잘 쳐줘 봐야 1년짜리 수련의 결과에 불과한 전투력(?)으로 30년을 그닥 발전도 없이 정체해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나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여 기타 연습을 등한시하는 후배들을 향해 고개를 드는 꼰대 근성. "봐라. 내 오른손의 전투력을 갖추는데는 고작 3년도 안 걸릴지도 모른다(왜냐하면 '꾸준히' 뼈를 깎는 노력을 한 건 아니었으니까, 아마도 '빡쎄게' 수련하면 일년 반만에 그 정도의 전투력은 갖추게 될는지도 모른다). 이게 3년동안 내가 방구석에서 증명한 바다. '대학'이라는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수련을 하면 아마도 일 년도 안 되어서 그 정도 전투력은 갖출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단, 노하우를 알려줄 무천도사 같은 그 누군가가 있다는 전제 하에서). 물론 그 정도 전투력으로는 초사이언은 커녕 기껏해야 악당이었던 시절의 베지터가 데리고 온 똘만이들을 물리칠 정도밖에는 안 되겠지만, 그 정도만 되어도 나름 '자뻑'의 정신을 유지한 채 나름 즐겁게 인생을 보낼 수 있다. 우리가 손오공이나 손오반은 커녕, 트랭크스 주니어 정도도 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해서 미스터 사탄인 채로 지낼 수는 없잖냐.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 보자."


내년의 목표 : 마인 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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