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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리뷰

모모세, 여기를 봐

 

 

 

 

반전 있는 이야기.

 

'노보루'라는 이름의 순딩이 대딩이 있다. 벚꽃이 흩날리는 4월, 학교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학생을 짝사랑하기에 이른다. 여학생의 이름은 '모모세'. 접근할 방도가 없어서 고민하던 노보루는 어느날 자신이 적을 둔 동아리의 한 선배가 그녀와 같은 학과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선배의 도움을 받아 모모세와 대면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가끔 만나서 커피나 밥을 사먹는 관계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못한다. 자신감을 잃어 실의에 빠진 노보루는 어느날, 모모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다는 얘기를 친구 타나베에게 듣지만 별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애써 무시한다.

 

세월이 흘러 먼 곳으로 이사를 간 노보루는 어느날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방문에 놀란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여전히 친구와 연인의 경계에서 서성거릴 뿐, 노보루의 바람과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 이상의 진전은 없다. 허망한 재회 이후 또 한 번 관계의 휴지기에 들어가고, 그렇게 세월이 흐른다.

그러던 어느날 모모세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온다. 같이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는 모모세. 그전까지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제안한 적이 없었던 모모세였던지라, 이 제안은 노보루에게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진눈깨비가 간간이 내리는 바닷가에 도착한 노보루와 모모세. 해변가의 카페에서 어느 순간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는 모모세의 모습에 노보루는 당황한다. 이후 그 닭똥의 의미를 알게 된 노보루는 자신의 기대가 저버려진 것을 깨닫고는 실의에 빠진다. 자신이 아닌 다른 곳(놈)을 바라보는 모모세는 사랑을 이룰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자 슬픔을 달래기 위한 여행의 동행인으로 노보루를 택한 것일 뿐이다. 망연자실한 노보루는 귀가길에 Crying in the rain……
 

 

 

<모모세, 여기를 봐>는 동명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작가 나카타 에이이치는 추리 소설 등으로 유명한 오츠 이치의 또 다른 필명이라고 한다. 자백하건대, 구구절절한 위의 스토리는 사실 <모모세, 여기를 봐>의 스토리와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인인 X 모 씨가 예전에 겪었던 일을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빌어 대강의 줄거리로 써 본 거다(아임 쏘리…).

 

영화와 상관도 없는 얘기를 쓴 이유는 위 얘기의 쥔공이 겪은 종류의 아픔을 <모모세, 여기를 봐>의 진짜 쥔공인 노부로와 모모세가 그대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연한 직후의 모모세가 노보루에게 묻는다. "넌 모르지, 내 마음?" '응, 전혀.'하고 대답하는 노보루. 그러나 그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는 자기 아닌 다른 곳(놈)을 바라보기만 하는 모모세를 좋아하는데. 이어서 모모세는 말한다. "언젠가 알면 좋겠다…." 그 '언젠가'가 노보루에게는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모모세는 알 리가 없다.

다른 곳만 바라보는 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들이라면, 다음과 같은 노보루의 대사가 어쩌면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미쳐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연애는."
이렇게 미치거나, 한때 미쳤던 적이 있는 '미친 놈'들에게 이 영화를 강추한다.


 

 

 

 

서머싯 모옴은 단편소설인 <레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날에는 하루만 만나지 않아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했던 이를 지금은 다시 만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야말로 그보다 무서운 비극은 없소." 그리고는 사랑의 비극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랑에 있어 진짜 비극은 무관심입니다."

이런 종류의 비극은 닭똥이 동반될 일이 없다는 점에서 메마른 비극이다. 닭똥을 흘리지 않는 비극이라니, 이건 뭐 비유하자면 폭력이 배제된 액션영화 아닌가. 무관심이라는 비극에는 트라우마가 남지 않는다.

사랑의 진정한 비극은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이를 가망도 없이 계속해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미친 놈(혹은 년)'의 처지가 되는 거다. "모모세! 여기를 봐!"하고 반복해서 외칠 수밖에 없는. 문득 <인형의 꿈>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그댄 먼 곳만 보네요,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


롹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은 에세이집<보통의 존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일 모레면 이제 마흔 살이 된다, 이제는 연애를 할 수 없는 나이가 되는 것이 서글프다,라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연애를 할 수 없거나 가능성이 대폭 줄어드는 나이이기 때문에 더 이상 '미친 놈'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거야 말로 사랑의 희극…아니, 인생의 희극이 아니겠는가.

 

 

사족 :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은 아마도 연애 한계 나이를 마흔으로 설정한 것 같다. 품절녀나 품절남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즉 가능성에의 확률이 왕창 줄어든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본 것 같은데, 이미 결혼한 상태라면 더 할 말이 없다. 마흔이 아니라 삼십이라도.
아, 물론 불ㄹ아니, '초월적 사랑'이라면 가능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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