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현아 씨만 이런 실수를 하겠냐만….
아직도 나는 한글이 완벽하지 않다. 장문의 글을 쓴 뒤 퇴고를 할 때마다, 오타는 그렇다고 쳐도, 맞춤법이 잘못된 낱말이 얼마나 많이 발견되던지. 사전과 친하게 지낸지 꽤 되었는데도 여전히 이렇다.
며칠 전에는 K 모 씨와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중에 그만 '어의없다'고 쓴 것이 아닌가! 어이없는 일이다.
애당초 그렇게 알고 있었으면 그나마 이해가 될 텐데, 문제는 외부의 이상한 영향 탓에 나도 모르게 이런 틀린 맞춤법의 낱말을 쓰게 될 때가 있다는 거다(그런데 이런 영향은 나만 받는 건 아닌듯 싶다. 체탄 바갓의 소설 <세 얼간이>의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도 '어의가 없다'고 쓰고 있다).
'쵝오'처럼 부러 재밌으라고 그렇게 쓰는 낱말도 있지만, 사실 저도 모르게 잘못 쓰는 말들이 더 많다. 예를 들면, '수지랑 사겨라'하는 따위의 말들. 이제 꼰대(?)의 입장이 되어 젊은 애들에게 글 좀 똑바로 쓰라고 요구하면서도 그들의 말투에 영향을 받는다. 아오시발개빡쳐.
사겨라 (×)
사귀어라 (O)
잘못된 문법인데 대중가요의 가사 때문에 더욱 굳어진 경우도 있다. '잊혀진 계절' 따위가 그렇다. 예전에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겨울비>의 가사 중에 '내게 떠나간, 멀리 떠나간'이라는 부분은 몇번을 들어도 이상하다. 이런 건 시적 형용이라는 쉴드도 못 칠 지경이다. 동요 <고향의 봄>에서, '나의 살던 고향은…'은 문법도 영 이상하지만 '나의'를 '나에'로 발음하고 있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는 '에'가 아닌 '의'로 발음하면서 말이다(물론 노래할 때는 '에'가 더 편하기는 하다). 구어에서의 영향 때문인지, 문어에서조차 '의' 대신 '에'로 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종합하여 응용하면,
'나에 마시던 소주를 들이킨 후 내게 떠나간 미모에 그녀는 이후 곧바로 잊혀졌다.'
잊혀졌다 (×)
잊히었다 (O)
조율이 틀어진 음에 민감한 이가 있는 것처럼 맞춤법이나 문법, 그리고 문맥에 예민한 이들이 있다. 과거에 내가 연애 편지를 보낸 대상 중에 국문과 출신이나 문학 소녀가 없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딴에는 진지하고 시적으로(?) 쓴 것이 맞춤법 일탈로 웃음을 유발하게 되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을 테니까. '너에 얼굴이 간절이 떠오를 때마다 가을비를 맏으며…' 한국어 표기에 능하지 않은 재일이나 재미 한국인이 아닌 한, 이해받기는 좀 어려울 테다.
그래서일까.언제부턴가 이런 재앙을 회피하는 방법을 암묵적으로 공유한 듯싶다.
1. 시적이거나 진지한 것은 오글거리므로 완전히 배제하기.
2. 맞춤법 일탈을 공유하여 일반화하기.
혹자에겐 존나겤 어의없는 말투이겟지만 사기고 있는 지들에겐 쵝오의 조은 말투니 쓰지말라곸 못하겟다.
쉰세대인 나는 이게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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