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쇠퇴기의 중세만큼 그렇게 죽음에 대한 생각에 큰 강조와 감동을 부여한 시대는 달리 없었다. 그 시대에는 끊임없이 삶 속에서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호소가 메아리 친다."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적어도 문학 속에서만은 사람들이 슬퍼한 것은 특별히 여성의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라는 경건한 훈계와, 젊음을 아낌없이 누리라는 세속적 권고가 서로 거의 뒤섞이는 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이키루>에서 위암에 걸린 주인공의 귀에 들려온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삶은 찰나의 것/소녀여 빨리 사랑에 빠져라/그대의 입술이 아직 붉은색으로 빛날 때/그대의 사랑이 아직 식지 않았을 때/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아무도 모르는 '내일 일'이란 죽음이라는 말일 게다. 일본판 'Memento mori'다. 어느 철학자가 말한 '죽음에의 선구(先驅)' 즉, '죽음을 향해 자각적으로 앞서 달려가라'는 말은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뜻일 게다. 코 앞에 닥친 죽음 앞에서 대체 오늘 마치지 못한 잡무 따위가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러니 부디 네게 본래적인(실존적인) 일을 하라. 뭐, 대충 이런 의미다.
<버킷리스트>에 관한 글을 읽다 보니 문득 든 생각들이다. 저마다의 버킷리스트가 존재한다. 심지어는 100가지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방법에 대한 글도 본 적이 있다.
버킷리스트에 관한 글들 중 기묘한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20대의 버킷리스트>, <30대의 버킷리스트>, <40대의 버킷리스트>등. 한마디로 놀고 자빠졌다.
버킷리스트의 어원은 이렇다.
bucket list :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 'Kick the Bucket' 에서 유래하였다. 중세시대에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를 차 버리는 행위에서 유래되었다.
현재 '버킷리스트'라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의 목록' 정도로 가볍다. '죽기 직전에 차버린 양동이'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리스트들의 실현을 촉구하는 것은 바로 'Memento mori'라는 뜨끔한 경구다. 일주일 후에 당신이 죽는다고 가정했을 때, 도저히 이 일은 하지 않고는 못배기겠다고 판단한, 당신이 의미를 부여한 바로 그 일들을 미루지 말고 하라는 의미다. Right now!
그런데 개나소나 외치는 버킷리스트에는 이러한 절박함이 없이 그저 초등학생의 막연한 '장래희망' 따위로 변질되어 버렸다. '죽기 전에 해야 할'이라는 수식어가 그럴듯하게 붙기는 했지만 실제로 죽음을 선구하지는 않는다. 그것의 결과가 <20대의 버킷리스트>와 <30대의 버킷리스트>, 그리고 <40대의 버킷리스트> 따위들이다. 어떤 이의 목록을 보니 <30대의 버킷리스트>들 중 하나는 전국을 일주하는 거란다. 문득 의구심이 든다. 현재 본인이 20대라면, 왜 그것을 30대에 해야 할 것으로 미루는가? 또 어떤 이의 <40대 버킷리스트> 목록을 보니 '200권의 책 읽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가 지금 현재 30대라면, 30대인 작금에도 하지 않는 행위를 왜 40대에서는 할 거라고 기대하는가? 40세에 도달하기 이전에 발 밑의 양동이를 걷어차게 될 가능성은 전혀 없을 거라는 확신에서 그러는 것은 아닌가?
이런 것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Memento mori', 혹은 '죽음에의 선구'가 완전히 결락된 단순 '장래희망'이다. 죽음 직전의 양동이라는 절박함이 결여된.
'100세 시대'에 '일주일 후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직 젊은 탓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일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러지 않았었나. 동네 노인네들을 보면 그분들은 30년 전에도 노인인 것 같고, 나는 영원히 소년인 줄 알았다. 고(故) 김광석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장수에의 기대나 아직은 젊다는 자각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잊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오늘'을 500년 후에 죽을 것처럼 '비본래적으로' 산다.
2016년 1월의 버킷리스트를 생각해 본다. 요청받은 작업 이외의,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일단 한가지는 찾았다. 1월을 주제로 한 기타곡을 한 곡 작곡하기.
밥이 나올까, 죽이 나올까?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