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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순간에의 몰입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라는, 아주 인상적인 제목의 소설이 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다음과 같다.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철학자와 늑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의 시간 관념은 우리에게 내려진 저주이다. (중략) 시간을 과거에서 미래로 뻗어 나가는 하나의 일직선으로 경험하는 시간성에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단점 역시 수반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며, 바로 그 때문에 행복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중략) 
늑대는 매 순간을 그 자체의 보람으로 받아들인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 영장류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인간에게 매 순간은 끝없이 유예된다. 매 순간의 의미는 다른 순간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 내용 또한 다른 순간들로부터 회복될 수 없는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시간의 피조물이지만 늑대는 순간의 피조물이다. 우리에게 순간이란 투명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물질을 소유하려 할 때 그 사이로 손을 뻗는 것과 같다. 시간은 투명하게 비치는 것이다. 우리에게 순간은 완전한 현실이 아니다. 순간은 거기에 없는 것이다. 순간이란 과거의 유령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것들의 메아리이며,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대일 뿐이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렇게 썼다. "개에게는 시간이 직선상에서 경과하지 않는다. 시간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계속 지속적인 전진운동을 하지 않는다.(중략)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미래로 도피한다. 그들은 시간의 진로에는 하나의 선이 있어, 이 선을 넘으면 현재의 고통이 중단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테레사는 자기 앞에 그러한 선을 보지 못했다. 오직 뒤돌아 보는 것만이 그녀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의식적인' 과거 뒤돌아 보기가 만성이 된 인간은, 전화번호부 책보다는 약간 재밌는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에 의하면, "그 인간은 시들고 만다." 난해하기는 하지만, 그에 의하면 어느 '순간'의 특정 감각에 오로지 몰두할 경우에 우연히 찾아드는 소위 '무의지적 기억'에 기반해 새로움을 만들어낸다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고.


순간을 잡는 방법을 몇 개 정도는 알 것 같다. 악기 연주를 할 때나 작편곡 행위를 할 때ㅡ구체적으로 어느 프레이즈의 '순간적인' 음에 집중할 때, 또는 작문을 할 때ㅡ구체적으로 특정 낱말이나 문장에 집중할 때 등, 뭔가에 집중하여 소위 'Flow'상태에 머물 때는 평상시의 시간감각에서 이탈한다. 이 순간이 모여 이루어진 더미들에 괴로움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래서 동서양의 현자들은 하나같이 순간에 집중하라고 요구하는 것일 테다. "영혼을 구원하는 길은 모든 감각으로 온전히 지금 듣고 행동하는 것에 몰입하는 것이다(수사 베네딕트 폰 누르지아)" 붓다는 온전히 순간에 몰입하는 것을 깨달음에 이르는 여덟 가지 방법들 중 하나라고 하였단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즉 음악감상, 독서, 대화, 관광 등에도 전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바로 이 순간에 하고 있는 활동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어야 하며, 완전히 몰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울증의 순간에는 이 모든 활력을 잃는다. 뭘 해도 맥빠지는 순간은 정부 관료들의 헛소리처럼 반복해서 찾아든다. 추억이라는 미명의 퇴행적 정서가 나를 망치는 순간은 그때 찾아온다. 그것은 '달콤한 비애감'이 아니라 소태 같이 쓰디쓰다. 그리고 미래에의 불안감이 쓰나미처럼 덮친다. 시간의 직선 위를 우왕좌왕하는 꼴이다. 눈이 바라보는 것과 머릿속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다. 인터넷의 포털 사이트를 무의미하게 뒤지지만 어느 특정 기사를 읽는 도중 욕망은 또다른 기사거리로 향한다. 모든 기타 음악은 단일한 '기타 소리'로 일축되고, 나날들은 하나의 표정으로 겹쳐진다. 삶이 통째로 번아웃 되어버린 듯한, 이른바 '사망에 이르는 병'이다.


순간에의 몰입, 그것만이 인간 영장류를 구원한단다. 그러니 자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기타를 치고 있든가, 혹은 사각큐브를 만지작거리며 몰두할 때 한심하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복에 다가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여겨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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