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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사진




시베리안개스키와 산책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대학 동아리 후배다. 그녀가 말했다.
"선배님 나온 사진들 중에 아무거나 제게 보내봐요."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한다.
"선배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내 얼굴을? 누가?"
"유정(가명)이가요. 지금 우리 동기들 간만에 만났거든요. 그러니까 잘 나온 사진으로 빨리 보내주세요."
반가운 마음에 한마디 했다.
"원판이 후진데 사진이 어떻게 잘 나오냐? 글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무슨 사진을 보내달래?ㅋㅋㅋㅋ"


유정이라.... 그 옛날, 그녀와 같은 학과이자 같은 동아리 동기였던 영철(가명)이가 그녀를 자신의 지인에게 소개함으로써 썸타게 만들었을 때,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내 동기 남자들 중 몇명은 영철이가 동아리방에 나타날 때마다 그의 엉덩짝을 발로 걷어차며 한마디씩 하곤 했다. "이 씹탱구리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그때마다 사심없는 나는 그의 엉덩이를 매만져주며 위로하곤 했다. "아프지? 멀쩡한 엉덩이는 왜 걷어차고 지랄들이야...근데 너, 엉덩이 볼록한 게 졸라 섹시하게 생겼다.ㅎㅎㅎ"


비록 사심이 없더라도 후지게 나온 사진은 보내기 싫다(이렇게 말하자니 예상되는 반응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몇번을 찍어도 괜찮게 나온 건 없다. 당연하다. 구린 원본에서 쩌는 복사본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

평소 노란 조명 아래의 욕실 거울 이외에는 거울을 잘 보지 않는지라, 사진을 통해 비로소 내 안면의 상태를 확인한다. 아, 졸라 늙었다...
흰머리가 더 늘었다.


나는 거울 따위는 잘 들여다 보지 않는다. 셀카도 거의 찍지 않는다. 만약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거나 셀카를 밥 먹듯이 찍는 처지였다면 그나마 얼마 없는 효심이 조금은 더 생겼을는지도 모른다.

이런 내가 간만에 자세히 거울을 보며 왼쪽 눈이 이상하다는 걸 파악한다. 가뜩이나 크지 않은 눈이 어떤 병력의 후유증으로 더 작아진 건 그렇다 쳐도, 오른쪽 눈에는 없는 이 기다란 눈 밑 주름으로 인해 짝눈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건 대체 어인 일일까? 백내장으로 인한 시력저하로 꽤 자주 눈을 찡그린 결과인 걸까?

(만화책에서 인물 묘사를 할 때에 청년과 중년을 구분짓게 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바로 이 눈 밑 주름의 묘사 여부이다. 중년 아저씨 그림도 눈 밑 선(주름)만 지우면 청년이 된다.)


잠시 주름 제거에 관한 고민을 하다가 곧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이 나이에 주름 하나 없다한들 수지가 따라다닐 것도 아니잖아? 사실 백설공주의 계모 왕비가 아닌 한, 주변 사물들 중에서 자신의 얼굴만큼 잘 안 보게 되는 것도 없다. 작업실 창가에 놓아 둔 유리컵 안에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뿌리가 길게 내린 고구마가 놓여 있는데,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본 횟수와 이 고구마를 바라본 횟수를 비교하자면 아마도 1 : 100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보다 과장하자면, 수지가 <건축학개론>으로 뜨고 난 이후의 세월로 한정하건대 나는 내 얼굴보다는 그녀의 얼굴을 (인터넷이든 TV광고로든) 100배는 더 많이 접한 것 같다는 생각조차 든다.


말하자면 눈 밑 주름에 대한 신경 쓰임은 타자의 시선에 대한 의식인 셈인데(예컨대 수지의 얼굴을 향한 내 관심만큼 내 얼굴에 대한 타자의 관심도 클 것이라는 과대망상적인 착각인 셈인데), 실상 알랭 드 보통의 지적처럼 대부분의 타인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면 더욱이 신경 쓸 일은 없을 테다. 그럼에도 정신적으로 미숙한 나는 두 가지 상이한 반응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 눈 밑 주름이 젊음의 흔적을 최종적으로 지웠어...게다가 짝눈이 더욱 심화되었지. 젠장할...수지야 안녕...'

'이 나이에 주름이 안 생기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짝눈이면 어때? (거울을 안 보는)나 자신과 수지를 포함, 거의 모두가 관심이 없는 일 아닌가. 외려 주름은 삶의 지도와 같은 거다.'

이 오락가락의 반응조차 사라질 때 진정 외모와 정념의 세계로부터 해방이 된 것일 테다.


노화는 늘 KTX를 타고 있고, 수지는 그 속도에 비례해서 멀어져 간다. 그것은 미적인 것에 대한 접촉 가능성에의 체념이자 겉보기의 얄팍함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일는지도.
(Alan parsons project의 노래가 듣고프다. Old & wise.)



결국 역광을 이용하여 얼굴 윤곽을 흐리게 한 사진을 찍었다. 자연광 뽀샵이다. 이 정도면 이런 소리는 안 듣겠지. "어머, 선배 많이 삭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략 : 시선 분산시키기.
이 전략에는 나와는 반대로 안면 대칭이 완벽하고 뭇 처자들의 탄성과 애무(?)를 유발할 정도로 잘 생긴 시베리안개스키가 투입되었다.


몇장의 사진을 찍은 다음 게중에 가장 덜 흉물스럽게 나온 것을 보냈다. 문득 이런 부질없고 찐따 같은 생각이 든다.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얼짱각도니, 역광이니, 노란 조명이니, 전략적 시선 분산이니 하는 따위의 것들이 고려될 필요가 전혀 없는, 다시 말해 세수를 며칠 동안 하지 않은 채 노숙자 행각을 하고 다녀도 왠지 뒷통수에 후광이 비치는 듯한 인물(키아누 리브스 얘기다)로 태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인생이 성적으로 문란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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